땀에 절어 타 죽을 거 같지만 뛰다 걷다 한다
난 땀이 많지 않은 편이다. 어지간한 운동을 해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정도. 가장 중요한 머리도 젖지 않아서 바로 샤워하지 않고 급한 일정을 먼저 처리해 온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그렇지만 홍콩의 습함과 뜨거운 열기는 무시하려야 무시할 수가 없다. 24시간 돌아가는 제습기를 몇 분이라도 끄면 금세 습도가 100이 되는 곳. 5월 정도부터 10월까지 30도 언저리의 기온은 일상이다. 그래서 집 밖에 나가면 습식 사우나같이 축축한 건 기본이고 집 근처 마트만 다녀와도 등줄기에서 여러 방향으로 땀이 줄줄 흐른다.
날씨가 내 기분과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깨달은 언젠가부터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그날의 날씨를 앱으로 체크한다. 비가 오는지, 태풍이 오는지, 습도는 어떤지. 늘 캘리포니아의 습하지 않은 뽀송한 날씨를 그리워했고, 한국의 봄과 가을, 런던의 여름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달쯤 아이를 배웅하고 아파트 로비를 나서는데 더운 날씨에 몸이 자연히 녹아드는 느낌이 들었다. 끈적임과 후덥지근함이 원래 몸에 붙어있었던 것처럼 불쾌하지 않게. 더운 차량 안에 10시간쯤 방치된 새콤달콤처럼, 종이 껍질에 녹아 붙어있는 캐러멜처럼 내 몸이 이 무더위와 일체가 된 기분. 심지어 약간 나른하기도 했다. 뛰기도 전에 더위를 먹었나 순간 의심했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폐활량이 너무도 적어서, 그리고 전혀 늘릴 의지가 없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장거리 달리기는 아예 도전도 안 한 채 반장 찬스로 친구들 기록만 쟀다. 목구멍에서 피 냄새가 나고 찢어질 것 같은 공포에 시달렸다. 또래 친구들은 다 1200m를 다 뛰는데 나만 왜 죽을 것 같은지 무서웠다. 그리고 기립성 저혈압으로 실제로 뛰다가 쓰러지기도 했다. 코로 숨을 쉬지 않고 입을 벌리고 뛰어서 피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저 뛰는 걸 거부해 왔다. 같은 이유로 유소년 수영선수 시절 배영을 택했다. 숨이 가쁜 느낌이 너무너무 싫어서.
그런 내가 자발적으로 30도가 넘는 더위에 뜨거운 공기를 폐에 집어넣으며 뛰고 걷는다. Zone2 속도로 뛰는 게 좋다는데 난 슬로 조깅을 해도 금세 Zone 4-5를 찍는다. 목구멍을 사수하려고 입을 고집스럽게 앙다물고 콧구멍을 벌름댄다. 그래서 조금 할 만해진 지도 모르겠다. 멈추고 싶을 때 1분 정도 더 뛰고 멈춘다. 뛰는 게 숙제는 아니니까. 그런데 게으른 러닝도 조금씩은 느는지 1분이 자꾸만 늘어나서 스스로 놀라웠다. 왜 더 뛰어지는 거야 무섭게. 집을 나선 지 10분만 되어도 땀이 머리끝부터 종아리 뒤까지 줄줄 흐른다. 이게 소변인지 땀인지 궁둥이가 바지에 축축하게 철썩 달라붙고, 모자 속 머리카락이 땀으로 절어 정수리의 퀴퀴한 냄새가 찝찝하게 예상된다. 그렇지만 이전처럼 이 기분이 싫지만은 않다. 타 죽을 것만 같은 햇살 아래서 스페인 황소처럼 습기를 콧구멍 가득 들이마시며 무거운 내 몸을 처절하게 앞으로 밀고 끌고 나가는 느낌.
땀으로 절은 몸이 살아있다고 느껴졌다. 밖으로 나가 산책이나 러닝을 하면 누군가는 잡생각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유년기 기억까지 다 끄집어낼 정도로 생각이 더 많아진다. 그건 그것대로 좋다. 이런 순간 저런 순간이 있었지 하며 지금 길 위의 내가 스스로 대견해진다. 에너지 넘치던 어린 시절에도 하지 못했던 것들을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나 자신. 운동하려 애쓰는 나 자신. 햇볕과 더위에 잘 익어가고 있구나.
땀 흘린 나에 대한 작은 보상으로 오랜만에 동네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 카운터에 즐비한 빵과 스콘들을 외면하고 공복도 지켜본다. 집에 가는 길에 얼그레이 티 사서 스콘 만들어 먹어야지.
어제 친한 언니에게 매일 손 일기를 쓰겠다 다짐했다.
그리고 블로그도 방치하지 않고 기록하겠다고 딸에게 이야기했다. 블로그가 뭐야?라고 묻기에 나중에 읽어볼 지금의 엄마,라고 답했다. 기록의 힘을 믿는다. 식사 명상을 시작하게 되면 그것도 기록해 봐야지.
오늘도 건강하고 단단하게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