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 5만 원 내고 스테이크 썰다가 온 썰
‘남은 줄 생각도 없는데 청첩장 달라고 아쉬운 소리 하는 사람 VS 호텔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 5만 원 내는 사람’ 둘 중에 누가 더 진상인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찐따력을 자랑하는 두 사람이 전부 나다. 노보텔 엠배서더 호텔 예식장 앞에서 신랑에게 어색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지하철 논현역에서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온 티를 내며. 잡상인처럼 서성이다 식장에 들어갔다. 홀에는 자리마다 이름표가 놓인 원형 테이블들이 있었다. 내 이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서있을 공간 따위는 없는 신성한 장소였다. 감염병을 예방해야 하니까. 밥이나 먹고 갈 생각으로 식당에 가서 식권을 내밀었다, 여기는 뷔페라고 돌아가란다. ‘아, 창피해라.’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옆으로 더 가면 피로연장이 따로 있단다. 이번에는 이름표가 놓이지 않은 자유석 원형 테이블들이 있었다. 운 좋게도 구석에 한 조각 빼먹은 피자처럼 자리가 비어있었다. 애초에 혼자가 익숙한 나는 뛰어난 침투력으로 스무스하게 자리에 가서 앉았다. 식전 빵으로 시작해서 전복 들깨죽, 해파리냉채와 새우 애피타이저, 소스를 곁들인 스테이크를 먹을 때쯤에야 깨달았다. 지금 나는 호텔 결혼식에 와있다는 사실을. 경험상 호텔 결혼식 축의금은 10만 원부터 시작인데. 케이크에 커피까지 꾸역꾸역 먹는 건 민폐이지 않은가.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다. 마지막 커피까지 호로록 마시고 피로연장을 후다닥 빠져나왔다.
어째서 5만 원 밖에 준비하지 않았는가. 이틀 전, 회사 동기가 초점 없는 눈으로 일하는 내게 다가와서 후배 결혼식 이야기를 꺼냈다. 카카오 머니 오만 원을 대신 전해달라며 건네주었다. 습관적으로 ATM기에서 10만 원을 5만 원씩 인출했다. 미리 준비한 축의금 봉투 2장에 5만 원씩 나눠 담아 네임 펜으로 이름도 꾹꾹 눌러써놓았다. 아마도 동기는 결혼식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닌가.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처음엔 토요일 결혼식이라고 하루 일찍 잘못 알려주었다. 이제 생각해보니 장소가 호텔인 것도 몰랐던 것 아닐까. 결과적으로 두 명 합쳐 축의금 10만 원을 내고 식사는 1인분만 먹었으니 괜찮을지도.
회사 경조사 게시판에는 ‘진심으로 축하해줄 분들만 모십니다.’라는 식의 글이 적혀 있었던 게 기억난다. 어째서 나에게는 청첩장을 주지 않았을까. 진심으로 축하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가. 다른 팀인 후배가 부서장님들께 청첩장을 돌리고 다녀가자마자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냉정히 말해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바로 옆자리 동료였는데. 혹시 요즘은 인간관계를 이런 식으로 손절하는 건가? 급기야 옆구리 찔러 절 받기로 세상 구차하게 왜 나는 안 줬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조금 지나자 경황이 없어서 카드를 충분히 안 가져왔다는 후배의 답이 왔다. 이틀 뒤에 미니 초콜릿 두 개를 올린 청첩장을 부끄러운 손으로 받았다.
이렇게 해서 굳이 초대하지도 않았지만, 그걸 또 구태여 초대해달라고 졸라서 5만 원을 내고 호텔 밥을 먹은 사람의 흑역사가 탄생했다. 얀센 백신을 맞고 겨우 몸 상태가 좋아진 일요일. 두고두고 욕먹는 선배가 되고 싶지 않고서야 가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막상 와보니 진심으로 축하해줄 사람을 초대한다고 밝힌 후배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인 결혼식 날, 데면데면한 인간은 사양한다는 주의. 결혼식장을 가면 꼭 보이는 부류. 구석에서 자신들만의 동창회를 여는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꼈던 나도 공감하는 바다. 진심의 크기가 친구들에 비할 수 없는 ‘축의금 딜리버리’인 주제에 인간관계에 과욕을 부린 게 아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