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같은 미용실을 다니시나요?
앞머리가 코에 닿을 정도로 자랐습니다. 장발족으로 오해받을 지경이 되어 머리를 자르기로 했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미용실이 이 날따라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칼바람 부는 날씨에 굴복해서 단골 미용실 대신 집에서 가까운 가게로 옮긴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까요?
이틀 후 새해부터는 프레쉬하고 새롭게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전에 다니던 미용실보다는 커트 요금이 5천 원 비싸지만, 탈모 클리닉을 받거나 헤어 제품을 사라는 은근한 강요만 받지 않는다면 다녀볼 만할 것 같았습니다.
한겨울 쌩쌩 부는 바람을 사방에서 맞은 몰골로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드드득" "아!" "죄송합니다." 미용실 실장님이 외투를 받아주시다가 손에 정전기가 오른 모양입니다.
피차 생전 처음 보는 디자이너와 손님이다 보니 '어떻게 해드릴까요?'라는 질문이 빠질 수 없습니다. 머리가 너무 길어서 조금 정리하러 왔다고 대답했습니다. 단골 미용실이었다면 "지난달처럼 정리해주세요." 한 마디만 하고 눈을 감고 있으면 될 텐데요.
어쩐지 이번에도 보통이 아닌 선생님께 걸린 것 같습니다.
선생님) "어떤 거 같으세요 솔직히?"
저) "예? 뭐가요?"
선생님) "손님이 보셨을 때… 지금 머리가 얼마나 마음에 드시나요?"
'글쎄요…. 보시기에 제 머리가 어떤가요?'라고 겨우 되물었습니다. 분명히 한겨울 거지꼴로 가게에 들어온 제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질문을 던진 것이겠지요. 전에 다니던 미용실이 어딘지 묻는 걸로 보아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어릴 때부터 빽빽하지 못한 앞머리 숱이 콤플렉스입니다. 이마가 예쁜 편이 아니라 앞머리를 내린 스타일을 고수하는데요. 부족한 숱을 커버하기 위해 윗 머리를 무겁게 자르거나 펌을 해서 볼륨을 주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일부러 머리를 기르거나 파마로 단점을 가리려 하기보다 오히려 짧은 머리가 어울릴 수 있다고요.
"얼마나 짧게요…?" 과거에 숏컷을 했을 때마다 잘 어울린다는 칭찬보다 '왜 그랬냐.'는 추궁을 듣곤 했던 저에겐 위험한 제안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선생님만큼 짧게 머리를 자른다면 신정 연휴에 삼일 정도 더 붙여서 칩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가 깔끔한 느낌을 줄 수 있도록 조금만 머리를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더 짧은 헤어스타일은 다음 달에 다시 상담해보기로 했지요. 사실 저는 수십 년 동안 머리카락을 잘라왔음에도 저에게 어떤 스타일이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30대 중반쯤 되면 머리든 옷이든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립하는 줄 알았는데요.
매번 똑같은 선택을 내리는 데에 싫증이 나서 과감히 단골 미용실을 바꿉니다.(단골 선생님께 다른 스타일을 상담하는 덜 과격한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유지했던 스타일을 과감히 바꿔보자는 제안엔 겁을 먹기도 합니다.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잘 알지 못하기에 지금 머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타인의 평가에 깜짝 놀라서 휘청입니다.
이런 속담이 있죠.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아인슈타인의 말이라고 잘못 알려진 출처 미상의 문장이라고 합니다.)
새해에는 현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행동력과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에 못지않게 지금 내가 괜찮은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할 수 있는 뚜렷한 주관을 갖고 싶습니다. 용기 내서 바꾼 현실에 만족할 수 있도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