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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i 고나희 Dec 12. 2017

낭만적 구조

<<여행의 취향>> 중에서

건축은 인간적인 과정이고, 건축물은 인간적인 결과물이다. 사람이 설계하고 지어, 사람이 살며 생활하게 되는 과정과 공간, 모두 인간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건축물에 관심을 갖는 것 아닐까. 자신이 사는 집, 다른 이가 사는 집에 대한 관심은, 특히 연예인의 집을 찍어 소개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사랑받는 것으로도 증명된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건축학적 포인트는 다르다. 교토 여행에서 나와 동료들의 경우도 그랬다. 동그란 달이 비쳐드는 창, 모래와 자갈만으로 이루어진 하얀 정원, 건물 뒤 대나무 숲 등 우리는 각기 다른 지점에서 감탄하고 흥미를 느꼈다.

나의 경우, 건축학적 관심의 대상은 회랑이었다. 교토에서 몇몇 건축물을 접하며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길고 좁은 복도 같은 공간에 지붕이 씌워져 있는 구조가 독특하다고 느꼈다. 특히 회랑이 가진 개인적이고 낭만적인 정서가 마음에 들었다. 닌나지(仁和寺, 인화사)는 교토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건축물이다. 회랑으로 이어진 사찰이었으니까. 내가 그동안 쉽게 접해온 사찰 구조는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갈 때 신을 신고 가서, 다시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닌나지는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어, 발을 땅에 대지 않고 사찰 안 모든 건물에서 건물로 이동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요리조리 이어진 구조가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회랑과 회랑을 통해 이동할 때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사찰의 풍경도 인상적이었다.

오래된 전각과 연못 등 볼거리가 풍부한 사찰, 고다이지(高台寺). 고다이지 뒤편 언덕에서도 이런 특이한 건축 구조를 접할 수 있었다. 야트막한 언덕 위까지 흔들다리마냥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회랑을 한번 걸어보고 싶었는데, 너무 오래되어 그런지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고다이지 안에는 작은 초가가 있었는데, 너무 작아 굳이 회랑으로 이어줄 필요 없는 초가에도 회랑이 있었다. 회랑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될 작고 아담한 작은 초가집에도 이런 구조가 있는 건, 어떤 필요 보다는 소담한 낭만을 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회랑은 건물 간 이동을 편리하게 하는 것 외에, 건축물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미적으로 정서적으로 매우 개인적이고 낭만적인 의미를 담은 건축학적 장치인 것 같다. 좁고 긴 회랑을 거닐면, 아늑하게 갇힌 듯한 느낌이 든다. 홀로 호젓하게 회랑을 거닐면, 이 공간이 매우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 많은 부분이 목재로 이루어진 사찰에서는 소리의 울림이 많아 방음이 쉽지 않다. 고즈넉한 정취야 더할 바 없이 좋지만, 프라이버시가 보장되거나 개인적 행동과 사유에 편한 장소는 아니지 않을까.


사찰에서 즐기는 제한된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삶이 가능한 공간이 회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홀로 호젓하게 회랑을 거니노라면 고요함과 호젓함을 느낄 수 있다. 더구나 완전히 닫힌 공간이 아닌, 일부분 개방된 공간이기에 시야와 사고의 자유로움을 가질 수 있다. 사색을 즐기기 좋을 수밖에 없다. 회랑의 일부는 건축물 안으로 연결되지만, 일부는 밖으로 이어진 양가적인 속성은 안팎, 즉 사찰 내부와 밖의 풍광을 모두 향유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한 향유에 필연적으로 낭만적 정서와 느낌이 깃드는 건 물론이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고 즐길 수 있다. 사찰을 개인적인 일상의 공간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회랑을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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