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ri 고나희 Dec 15. 2019

취향의 시대, 풍요로운 일상을 위하여

동작구 평생학습관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릴레이 특강

취존(취향존중), 취존사회, 취존시대, 취향저격 , 취향공동체 등 '취향'과 연관된 이들 어휘와 개념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요즘이다. 하지만 겨우 몇 년 전만 해도 '취향'이란 말은 분명 새롭고 낯선 말이었고, 쉬이 인지하고 인식하던 대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어느새 고작 몇 년 안에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와 일반화된 쓰임을 갖는 '취향'에 관하여 동작구 평생학습관에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12월 첫째 주 수요일,  오전 10시 강의. 이른 아침 햇살이 도서관에 비쳐들고 있었다. 10시 강의이니 회사 출근시각 9시보다 1시간이나 늦은데도 이 시간에 아침 피로를 쫓고 강의 들으러 오시는 수강생들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무의식중에 일어나 준비하고 일터에 나가는 것과 강제성 없이 굳이 걸음 하는 것은 다를 테니까.               

내가 강의한 <취향의 시대, 풍요로운 일상을 위하여> 강의는 동작구 평생학습관 릴레이 특강의 하나로, 릴레이 특강의 주제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이다. 릴레이 특강의 주제나 나의 강의 주제나 정말 마음에 와닿았다. 강의 관련 홍보물들이 놓인 탁자를 지나서

안으로 들어가니 쉬기에도 조 모임 등의 소규모 모임을 갖기에도 좋은 공간이 나왔다.

이 공간에는 곳곳에 가렌더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 가렌더에는 평범한 공감을 조금은 특별하게 힘이 있는 것 같다. 가렌더 덕분인지 아침햇살 때문인지, 레드 포인트가 있어서인지 발랄하고 밝은 분위기의 도서관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한 테이블 앞에 도서출판 더블엔의 대표인 송현옥 편집장님이 먼저 와계셨는데, <취향의 시대, 풍요로운 일상을 위하여> 강의는 내 책 《여행의 취향》과 《독서의취향》을 보신 정수연 평생교육사님이 기획한 강의였던 때문에 송 편집장님도 와주신 것.


한창 바쁜 연말연초인데 일찍 오셔서 따끈한 커피 사주시고, 주무관님 옆에서 강의 안내 도와주시고, 강의하는 사진을 담아줘서 참 감사했다. 늘 나는 내 책을 출간한 출판사와 책임편집자님 복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다시  새삼스레 느꼈다.


사실 책임편집자(한 책을 책임지는 담당 기획편집자((북에디터))에게는 늘 새로운 책이 다가온다. 한 책을 맡았었다고 해서 그 책을 내내 신경 쓸 수는 없다. 현재 출판사에서 한 에디터가 얼마나 많은 업무와 많은 책을 다루는지를 안다면 그게 얼마나 타당하기까지 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에디터는 맡은 책이 출간되면 한두 달은 그 책을 위해 어쩌면 그 책을 쓴 작가보다도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고 그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된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그 책은 그 에디터가 맡은 유일한 책도 아니고 그에게는 다른 기획과 편집, 출간 업무가 남아있다. 어느 시기를 지나면 그 책은 에디터에게 잊힌다. 잊어야 하기도 한다. 그래야 다음 책을 작업할 수 있고, 자신 일을 쭉 이어갈 수 있다.


이런 과정과 사실을 아는 나는 송 편집장님께 더더욱 고마움을 느꼈다. 그가 내 책의 책임편집자로서 내 책들을 잊어주지 않아서 여전히 관심과 애정을 쏟아줘서, 그로 인해 출간한지 시간이 꽤 지난 작가의 강의에까지 와줘서, 그리고 마치 당연하다는 듯 그가 맡지 않아도 되는 업무들을 수행해줘서.   

송 편집장님과 강의와 책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까지는 없었다. 이미 강의자료를 도서관 측에 보내긴 했지만 자료에 업데이트가 있어 그걸 주무관님께 전달하고,  수강생들에게 나눠줄 종이와 펜을 준비해주길 부탁하고, 강의 관련 서명할 것도 있었다. 바쁜 내가 서명하는 모습을 담아준 송 편집장님.

그리고 강의가 시작됐다. 이른 오전 시간 강의인데도 강의실을 꽉 채워주신 40~50명의 수강생분들께 감사하다.

취향이란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내게 취향은 너무도 중요했고 앞으로도 중요할 것이다.


취향은 마음의 방향이다. 내 마음이 가는 곳과 것이 곧 취향이다. 나는 내 삶에 그리고 나라는 사람에 정말 많이 만족하는데(내가 만약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가 나와 꼭 닮기를 나와 같은 삶을 살기를 바랄 정도로) 그건 내 삶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즉 일반적인 사회의 기준이나 척도에서 '우와 대단하다~'라고 여겨질만 해서가 아니라, 언제나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기준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이 어느 방향인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지는지 알려면 내 마음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그 방향이 뚜렷하고 분명하고 확실하진 않을 수 있지만 분명한 건 '있다'라는 것이다.


물론 내 맘에 귀 기울이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그게 어려운 건 여유가 없어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에게 시간과 돈의 여유를 펑펑 누리지 못하는데 내 마음까지 돌아볼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마음에, 더 정확하게는 내게 자신에게 관심을 두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 마음과 나를 돌보지 못하는 것은 생각보다 크고 깊은 상처를 만들 수 있다. 그 상처는 어쩌면 나와 남의 눈에 쉬이 띄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곪고 커져 삶을,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 문득 허탈하거나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라고 여기거나 아무런 목표와 희망이 없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것은 큰 상처가 된다.


마음의 방향을 따르지 못하거나 안 하는 사람과 그 삶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알리고 싶을 뿐이다. 취향을 알고 그것을 따르는 삶이란 얼마나 쉽게 행복할 수 있는 것인지, 얼마나 만족도가 높을 수 있는 것인지. 취향이란 내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어쩌면 나의 존재 자체를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강의 때, 아빠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한 건 강의를 수강하시는 분들의 연령대가 높았고 경험 상 연령대가 높을수록 취향이 무엇인지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앞으로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수강생의 수가 많아서였다(강의 도중 또는 강의 후에 하는 질문에 근거해서).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저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건가 싶었다.


올해 대학원에 합격한 아빤 내년 3월 입학을 앞두고 있다. 아빠 때보다 지금 대학원에 입학하는 데 여러 조건과 준비가 필요하다. 그 조건과 준비 앞에 아빠는 힘들어했고 때론 좌절했다. 엄마가 굳이 그래야 하냐고 하셨지만 굳이 그렇게 노력하셨다. 아빠 나이에 접해보지도 못했던 토익을 공부했고 매일 도서관에 가셨다.


법대에 가고 싶어 간 게 아니었고, 사학을 전공하고 싶었다는 말이 그 정도로 강한 진심일 줄은 몰랐다. 지난 세월에 대한 흔한 후회, 가벼운 회상이라 여겼는데 한 사람을 한 사람의 삶을 너무도 깊게 오해했다. 내 또래의 청년의 눈빛, 어리고 순수하고 행복한, 밝은 눈빛으로 아빠의 눈이 반짝였다. 마음의 방향대로 사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모두의 눈이 밝고 행복한 빛으로 반짝이길 바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나를 돌아본다는 게 상투적인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기도 마침이니, 이 김에 나의 마음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 내 마음에 귀 기울여 보는 게 어떨까. 이제껏 찾지 못했고 어쩌면 없다고 생각했던 걸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 발견과 이어지는 바가 행복하고 밝을 것임을 분명히 예감한다.

강의에는 또 다른 출판사에서도 참석했는데, 하나의책 출판사 원하나 대표님이었다. 일찌감치 나의 작업과 그 결과에 관심 가져주던 원 대표님이 이번에는 강의에까지  오신 것.  원하나 대표님은 유유 출판사에서  《독서모임 꾸리는 법》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마침 강의에서도 독서모임 관련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 관련 질문도 있어 예로 들었다.


나는 취향(이야기), 취미(독서모임, 여행), 전공(인문학), 직업(작가, 에디터)이 이어지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나의 취미 중 가장 큰 부분은 여행과 독서모임이 차지하고 있다.  취향, 취미, 전공, 직업이 이어지는 일관적인 삶이 지금의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일관됨은 나의 판단이기도 하고 너무나 당연하게 이게 답은 아니다. 여러 방향의 취향을 지닐 수도 있고, 취향이 취미나 전공, 직업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취향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때로 나와 취향은 같지만 취미(취향은 마음의 방향, 취미는 취향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행하는 것)는 다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취향이 마음의 큰 흐름인데 반해 취미는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  취향이란 것 자체가 변할 수도 있다. 나라는 존재가 불변하지 않는데 내 마음의 방향이 변하지 않을 리 없다. 이러한 취향의 변화는 취향의 확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 어떤 취향이든 다른 이에게 피해와 상처를 조금도 주지 않는 한에서 존중받아 마땅하고 소중하다.


작가의 이전글 가을 자락을 잡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