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계절 Part3

길고양이 레오

by sarihana

제3부: 세상의 파문


지민은 레오와의 일상을 담은 그림들을 '회색 도시의 작은 정원'이라는 제목으로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특별한 기대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상처 입은 한 사람과 작은 고양이가 서로를 보듬는 이야기는, 소리소문없이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의 그림 아래에는 조용한 응원들이 쌓여갔다. '작가님의 그림을 보면, 제 방 창가에도 작은 햇살이 드는 것 같아요.' 어느 날 밤, 그 댓글을 본 지민은 한참 동안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자신의 감옥이라 생각했던 창문이, 누군가에게는 햇살이 드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따뜻하게 다가왔다.


그러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한 여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 혹시 '회색 정원' 작가님 아니세요?" 아래층에 사는 수진이었다. 어색했던 첫 만남 이후, 수진은 종종 고양이 간식을 들고 찾아왔다. 처음에는 문 앞에서 짧은 대화만 나누었지만, 어느 날 수진은 새로 생긴 예쁜 카페가 있다며 지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가 맛있는 케이크 살게요. 레오 자랑 좀 실컷 해주세요." 그 말에 지민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카페의 소음은 불편했지만, 레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수진은 지민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녀는 지민의 닫힌 문을 억지로 열려 하지 않고, 그저 문틈으로 따뜻한 햇살을 조금씩 밀어 넣어주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세상은 따뜻한 면만 보여주지 않았다. 어느 날 관리사무소에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모든 것을 뒤흔들었다. "2807호 맞으시죠? 오피스텔 규정상 반려동물은 키우시면 안 됩니다. 이번 주까지 조치해주세요." 차갑고 기계적인 목소리가 지민의 세상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레오 없는 삶.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하는 잿빛 공간. 상상만으로도 발끝부터 혈관 속 피가 차갑게 식어 내리는 감각이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날 밤, 그녀는 텅 빈 스케치북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다. 그때, 수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지민 씨, 관리실에서 연락받았어요? 저도 예전에 한동안 세상이랑 문 닫고 지낸 적이 있었어요. 그때 우리 집 고양이가 억지로 문을 긁고 울어서 밥이라도 챙겨주려고 일어났던 게 시작이었죠. 지민 씨 마음, 조금은 알 것 같아요. 혼자 끙끙 앓지 말구요, 내일 저랑 다른 집들이랑 같이 얘기해봐요. 네?' 혼자가 아니었다. 지민은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네… 그럴게요. 고마워요.'


다음 날, 지민은 수진과 함께 복도에 섰다. 첫 번째 집의 초인종 앞에 선 그녀의 손이 허공에서 망설였다. 거절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발목을 붙잡았다. 그때 수진이 지민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었다. 그 온기에 용기를 낸 지민이 마침내 초인종을 눌렀다. 문을 연 사람은 무뚝뚝한 표정의 할아버지였다. 지민은 거의 울먹이며 사정을 설명했고, 할아버지는 말없이 서명 용지에 이름을 적어주었다. "나도 강아지 키워봐서 알지." 그 한마디에 꾹 참았던 눈물이 터질 뻔했다.


물론 모든 이가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한 집에서는 문을 열자마다 '규칙은 규칙'이라며 차갑게 문을 닫아버리기도 했다. 쾅, 닫히는 문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고 과거의 상처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재원의 차가운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좀 유난스럽게 굴지 마.'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곁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수진의 온기와, 집에서 혼자 자신을 기다릴 레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다시 한번 옆집의 초인종을 향해 떨리는 손을 뻗었다. 레오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과 곁을 지켜주는 사람의 온기. 그 두 가지가 그녀 안의 잠자던 용기를 깨우고 있었다. 예전의 그녀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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