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에세이스트의 기록
아이러니하게도, 2025년은 모든 경고등이 가장 밝게 켜졌던 시기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경고음을 먼 나라의 재난 방송처럼 흘려들었다.
그해 겨울, 뉴스에서 합계출산율 0.68명을 발표했다. 인류 역사상 어떤 나라도 도달해보지 못한 경이적인 수치였다. 나는 ‘정말 심각하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 감상은 10초를 넘기지 못했다. 내 머릿속은 온통 다음 날 있을 대기업 인적성 시험 걱정으로 가득했다. 옆자리 친구는 말했다. “나라 망하는 것보다 내 통장 잔고 바닥나는 게 더 무섭다, 야.”
그것이 2025년의 진실이었다. 우리는 몰랐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청년 실업률 급등, 주택시장 붕괴 예측, 기후 변화로 인한 대규모 홍수와 태풍 뉴스. 수많은 전문가와 시민 단체들이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 경고했다. 경고음은 사이렌처럼 울렸지만, 우리는 귀를 막고 이어폰을 꽂았다. 뉴스 속 붉은 숫자는 불타는 도시처럼 느껴졌지만, 손끝에는 무감각만 남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경고를 각자도생이라는 가장 손쉬운 탈출구로 외면했고, 그렇게 문제의 공범이 되어갔다. 친구의 실직 소식은 ‘그에게 닥친 불운’일 뿐이었고, 불가능한 주거 비용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우리는 거대한 위기 앞에서 각자의 삶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사회 전체의 병폐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2050년의 나는 이제 깨닫는다. 2025년의 그 요란했던 소음은 사회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침몰 직전의 배에서 터져 나온 마지막 비명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를 논했지만, 정작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던지지 않았다.
우리는 무엇을 외면했고, 무엇을 놓쳤는가? 다음 세대에게 행복을 약속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삶을 짓누르는 거대한 구조적 불안을 외면했다. 당장의 내 주머니와 안위만을 걱정하며, 그들의 미래를 담보로 삼았다. 우리는 정말로 다음 세대가 기꺼이 아이를 낳아 뿌리내리고 싶은 사회를 만들고 있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2050년의 텅 빈 도시와 침묵이 대신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당장의 불안과 이기심 속에서 스스로 걷어찼다.
2055년 겨울. 서울.
나는 더 이상 남해안의 작은 섬을 꿈꾸지 않는다. 나의 자리는 결국 이 잿빛 도시의 한구석이었다. 나는 이제 공식적인 직업도, 사회 보장 번호도 없는 도시의 유령으로 살아간다. 구로의 낡은 공단 지역, 더 이상 가동되지 않는 공장의 텅 빈 사택 한편에서 나는 나의 기록을 이어간다. 완성된 글은 암호화된 데이터 조각이 되어, 도시의 낡은 공공 와이파이망을 타고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로 보내질 뿐이다.
나는 내 글을 읽는 독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아주 가끔, 익명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기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날에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답장이 왔다. 그럴 때면 나는 이 거대한 무덤 같은 도시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기억을 품고, 같은 절망을 느끼는 또 다른 영혼이 존재함을 확인한다.
얼마 전에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는 시스템이 삭제한 2020년대의 ‘불안’에 대한 나의 글을 읽었다고 했다. 그는 물었다. “정말로 그때는,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나요?”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오랫동안 답장을 쓰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찾은 희망의 전부다. 거대한 연대나 혁명이 아니다. 다음 세대의 한 청년이 던진, 순수한 질문 하나. 과거의 실패를 기록하고 전하는 나의 행위가, 누군가의 마음에 아주 작은 균열을 만들고 있다는 희미한 증거. 우리는 거대한 불꽃이 되지 못했지만, 나는 어둠 속에서 성냥을 긋는 마지막 사람이 되기로 했다.
나는 낡은 노트북을 덮었다. 이 낡은 기계가 가진 것은 거대한 역사를 바꿀 힘이 아니었다. 다만 침묵 속에서 외면당했던 비명들을 붙잡아두고, 사라지는 기억들을 보존하려는 나의 작은 몸부림이었다. 이 기록이 훗날 한 조각의 증언이라도 될 수 있다면. 잿빛 도시의 스카이라인 너머로 차가운 겨울 해가 지고 있다. 창문 너머 맞은편 낡은 아파트 단지, 수많은 창들 중 유독 하나의 창에서만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어쩌면 저 불빛 아래에서, 누군가 나의 기록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증오의 시대를 기록했을 뿐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며 과거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침묵했던 나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찾은 답은 그 청년이 외쳤던 한마디, '지긋지긋해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이제 나의 기록은, 이 도시의 먼지처럼 떠돌다 어느 날 누군가의 창가에 내려앉아, 새로운 질문의 씨앗이 될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나의 기록이 당신의 손에 닿았다면, 이제 당신의 침묵이 끝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