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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 사회 Part5

한 에세이스트의 기록

by sarihana

제5장. 총성 없는 전쟁


2025년은 전쟁의 시대였다. 다만 그 전쟁은 5인치 스마트폰 화면과 가족의 저녁 식탁에서 벌어졌다.


그해 추석, 큰아버지는 “우리 때는 악착같이 일해서 집도 사고 자식들 대학도 다 보냈어.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쉽게 포기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에 식탁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어머니는 내 팔을 툭 치며 눈치를 줬고, 아버지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티던 사촌 동생은 “저희는 포기한 게 아니라, 시작할 기회조차 없었어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잖아요”라고 맞섰다. 한때 화목했던 가족의 식탁은 '노력 신화'를 믿는 기성세대와 '구조적 절망'을 외치는 청년 세대의 최전선이 되어버렸다. 식탁 위에서는 포크와 접시가 칼날처럼 부딪혔다. 우리는 말보다 소음으로 서로를 겨누고 있었다.


이 전투는 가정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직장 회식 자리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반복되었다. 50대 부장은 "요즘 애들은 회식에 왜 이렇게 비협조적이야?"라고 불만을 터뜨렸고, 20대 후배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개인 시간을 존중받고 싶어서요"라고 답했다. 단순한 회식 문화의 차이가 아니라, 삶의 가치관 전체가 충돌하는 순간이었다.


온라인은 이 갈등의 최대 전장이었다. 기성세대가 주로 사용하는 포털 뉴스 댓글 창에는 "요즘 것들은 이기적이다"라는 글이 주를 이뤘고, 청년 세대의 SNS에서는 "#노오력은개뿔", "#헬조선탈출" 같은 해시태그가 유행했다. 서로를 '꼰대', '틀딱'으로, '답정너', 'MZ충'으로 규정하는 혐오 표현이 넘쳐났다. 각자의 스마트폰 화면에서 울리는 알림음이 폭탄처럼 느껴졌다. 밈(meme)으로 제작된 풍자 이미지는 빠르게 확산되며, 세대 간의 골을 더욱 깊게 팠다.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로, 상대방을 괴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사촌 동생의 한숨은 식탁 위 공기처럼 짓눌렀다. 그의 눈빛에는 포기와 절망이 뒤섞여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어떤 위로도 건넬 수 없었다. 나는 무력했고, 동시에 그 절망의 일부라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는 매일 밤 댓글 창을 스크롤하며, 서로를 괴물로 만드는 단어들 속에서 스스로가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분노는 거대한 혼란과 허무함으로 변해갔다.


이 모든 갈등의 배경에는 무너진 사회 시스템이 있었다. 국민연금 고갈 시점이 2055년으로 공식 발표되자, 정치인들은 '세대 간 고통 분담'이라는 모호한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누구도 구체적인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42.5%에 달하는 통합사회 부양세는 젊은 세대의 노동 가치를,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은 그들의 미래를 빼앗았다. '열심히 일하면 내 집 마련'이라는 기성세대의 성공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고, 그 간극에서 세대 간의 분노가 폭발했다. 노동 시장의 불안정은 안정된 삶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독이었다. 우리는 모두가 각자의 파이가 줄어들 것을 두려워하며 날을 세웠지만, 정작 우리 모두가 탄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했다.


우리가 서로를 적으로 만드는 동안, 진짜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이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이것은 정치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상대로 한 거대한 사기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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