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빵집 (확장판) - 외전 VII

빵이 전하는 위로

by sarihana

외전 VII. 정수: 택배기사의 정류장


1. 문밖의 남자

2025년 9월 22일, 월요일. 정수의 하루는 새벽 6시 45분, 차가운 스캐너의 기계음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의 시간은 분과 초로 쪼개져 배차 앱의 모니터 위를 흘렀다. 그는 도시의 혈관을 흐르는 익명의 혈액 같은 존재였다. 수많은 사람의 삶의 문턱까지 가 닿았지만, 정작 그의 삶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늘의 첫 배송지는 신축 아파트였다. 문이 열리자 달콤한 분유 냄새와 함께 아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잠시, 자신이 가져본 적 없는 평화로운 풍경을 엿보았다. 다음 배송지인 낡은 빌라에서는 부부의 격렬한 다툼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서둘러 물건을 내려놓고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왔다. 또 다른 문은 아주 조금만 열렸다. 젊은 여자의 손이 뱀처럼 튀어나와 상자를 낚아채고는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는 그녀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다.

그는 수백 개의 이야기 바로 앞에 서 있었지만, 언제나 그 이야기의 바깥에 있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풍경들은 그의 고독을 더욱 짙게 만들 뿐이었다.


2. 문이 열리던 순간

그에게 '시간의 빵집'은 처음에는 그저 수많은 배송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난겨울, 노부인 은옥이 그에게 묵직하고 따뜻한 식빵 한 덩이를 건네주었던 그날,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의 손에 남은 것은 희미한 잉크 자국의 서명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온기였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십 년 넘게 굳게 닫아두었던 그의 마음의 문이, 그 온기 앞에서 속절없이 열렸다.

그날 이후, 빵집은 그의 비밀스러운 '정류장'이 되었다.

그는 배송 경로를 짤 때, 일부러 가장 힘든 시간대에 빵집 앞을 지나도록 동선을 짰다. 배달이 폭주하는 오후 2시, 무거운 생수병을 나르고 난 뒤의 오후 5시. 그는 트럭을 빵집 앞에 잠시 세우고 시동을 껐다. 그리고 가장 먼저, 허리춤의 스캐너 전원을 내렸다. '삑-삑-' 울리던 기계음이 멈추면, 비로소 세상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빵집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그저 창문 너머로, 소리 없는 영화를 보듯 그 안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반죽을 치대는 민서의 리드미컬한 움직임, 도면을 두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준서와 지연, 조용히 기타를 연주하는 서연의 모습.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알지 못했지만, 그들 사이에 흐르는 보이지 않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차가운 트럭 운전석까지 전해져 오는 빵 냄새는, 하루 종일 맡았던 먼지와 매연 냄새를 잠시나마 씻어주었다. 그것은 쉼 없이 달려야 하는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5분짜리 휴식이었다.


3. 세상의 모든 비가 내리던 날

어느 늦여름,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배송은 늦어졌고, 고객들의 항의는 빗발쳤다. 흠뻑 젖은 상자는 힘없이 찢어졌고, 젖은 신발은 발에 납덩이처럼 달라붙었다. 그는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거의 탈진 상태였다.

마지막 배송을 마친 그는 거의 울 것 같은 심정으로, 습관처럼 빵집 앞에 트럭을 세웠다. 그는 와이퍼조차 끈 채, 빗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앞 유리를 통해 희미한 빵집의 불빛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저 온기가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그때, 누군가 그의 트럭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또 다른 항의일 거라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커다란 우산을 든 민서의 얼굴이 들어왔다.

"오늘 많이 힘드셨죠? 비 피했다 가세요. 따뜻한 빵이랑 수프 준비해 놨어요."

그녀는 그의 지친 하루를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정수는 처음으로 트럭에서 내려, 민서가 씌워주는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빵집 문이 열리며 울리는 '딸랑' 하는 종소리는, 마치 그의 고단한 삶의 정류장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그는 더 이상 문밖의 택배기사가 아니었다. 그는 젖은 어깨를 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 수프를 먹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는 그날 있었던 억울한 일들을 서툴게 털어놓았다.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아무도 그를 판단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정수는 뜨거운 수프를 한 숟갈 떠먹었다. 온기가 목구멍을 타고, 위장을 지나,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쉼 없이 달려야 했던 그의 고단한 삶에, 처음으로 따뜻한 종착역이 생긴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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