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 길에서 만난 이혼 - Part12

깨진 조각의 무게

by sarihana

12장. 새로운 길 위에서


등산 동호회에서 혜진은 민우라는 남자를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아내와 사별한 그는, 동네 어귀에서 작고 오래된 책방을 운영했다. 그들은 산을 오르며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가파른 길에서는 서로의 등 뒤에서 묵묵히 발을 맞추었고, 정상에 올라서는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며 땀을 식혔지만, 그 침묵이 조금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서로의 상처를 섣불리 묻지 않고, 그저 존재 자체로 존중해주는 어른스러운 거리감이었다.


어느 날 하산하는 길, 민우가 배낭에서 작은 책 한 권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들꽃 시집이었다. 지난주 등산길에서, 그녀가 바위틈에 핀 이름 모를 보라색 들꽃을 한참이나 쪼그려 앉아 들여다보던 것을 기억한 것이다. "아마 이 책에 그 꽃 이름이 있을 겁니다." 그의 무심한 듯 다정한 말에, 혜진은 책을 받아들며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낯선 사람의 따뜻함 앞에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이혼한 여자'나 '아이들 엄마'가 아닌, 그저 '들꽃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봐주는 시선. 그 작고 소박한 온기는 그녀의 얼어붙었던 마음에 희미한 빛줄기를 비추는 듯했다.


그날 저녁, 혜진은 집으로 돌아와 한참을 망설였다. 이대로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은 안전했지만,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얼마 전 화실에서 정성껏 만든, 비뚤어진 찻잔 두 개를 신문지로 조심스럽게 포장해 들고 나섰다. 민우의 책방은 종이 냄새와 은은한 나무 향으로 가득했다. 책방의 부드러운 조명 아래, 책을 정리하던 민우는 그녀를 보고 따뜻하게 웃었다.


“어서 오세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표정이 밝네요.”


혜진은 조금 떨리는 손으로 포장된 찻잔을 건네며 말했다. “이건… 시집에 대한 제 답례예요. 얼마 전에 처음으로 만든 제 첫 작품이에요. 완벽하진 않지만, 저한테는 아주 소중해요.”


민우는 찻잔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고는, 그 비뚤어진 모양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일본에서는 깨진 조각들을 옻으로 붙이고 금으로 칠해서 그릇을 복원하는 것을 ‘킨츠기’라고 부른다죠. 상처를 부끄럽게 숨기는 게 아니라, 그 흉터의 역사까지 금으로 메워서 세상에 하나뿐인 무늬로, 더 아름답게 만드는 기술이라고요. 이 찻잔도 꼭 그런 것 같네요.”


혜진은 그의 말에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불완전함과 상처 속에서 실패가 아닌,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날 그들은 늦은 시간까지 책방 한쪽에 마련된 작은 테이블에 앉아, 그녀가 만든 찻잔으로 차를 마셨다. 그리고 각자의 ‘깨진 조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별의 아픔으로 텅 비어버린 시간, 이혼의 상처로 얼룩진 밤들. 그러나 그 대화는 조금도 슬프거나 무겁지 않았다. 서로의 굽이진 길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동정하지 않고, 그저 존중하고 이해하는, 깊고 따뜻한 시간이었다. 혜진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새로운 길 위에서,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이해해주는 동반자를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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