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턴가
사랑하지 않게 되어서
나를 사랑하는 이도 느끼지 못했다.
추운 날, 일을 끝내고
자취방 보일러를 켜면
열두시까지는 두어시간 남짓
목욕을 하고 담배를 피운 다음에도
한 시간은 편지 쓸 시간이 넉넉해
엉거주춤 펜을 들었다가도
겨울은 이리도 깁니다.. 와
..님 건강하십니까
그 두줄 사이에서
난타전을 벌이다
지쳐 잠든 밤이 수백일..
나의 문장은 언제부턴가
원리금 상환능력과
채권보전의 사유를
설명하기 급급해져서
강건하시기를..
감안하시어 모쪼록 승인을..처럼
법전 끄트머리에 말라붙은
화석으로 돌아갔다.
슬픔이나 남사스런 고독감은
실은 꺼이꺼이 울고픈 마음이
그렇게 하지못해
우회하고, 순화한 모습같은 것이다.
그렇게 한껍질 입은 우회는
유려해도 꺽꺽 울어대는
본질에 미치지 못해서 싱겁다.
슬픔은 원래 꺼이꺼이 울고픈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울 수 없어서,
한껍질의 우회와 순화를 입는다.
그러나 그 우회는
아무리 유려하다 해도
본질에 닿지 못한 채 싱겁고 무력하다.
보고 싶은 당신을 떠올리며
펜을 들 때마다
내 마음은 검열의 바다를 떠도는 부평초가 된다.
결연하게 당신을 향하고 싶지만,
찌질한 일상은 그 결연함과 만나지 못하고,
펜촉은 바다 위에 쓸모없는 파도만 일으킨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저 바다 너머로 건너가지 못한다.
그러니
가장 사랑해주었던 당신도,
결국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이다.
내게도 퇴근 후 한두 시간 동안
당신을 생각했던 시인의 눈빛이 있었노라고,
그 마음조차 옮기지 못한 채로
오늘도 나는,
밤에 지쳐 잠들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겨울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