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횡단을 하며 쓰레기를 주운 사람을 보았다
오늘, 최저 몸무게를 찍었고, 컨디션도 좋았다. 새로 산 운동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나는 확실히 변화한 실루엣을 느꼈다. 거리를 걸을 때마다 몸이 가볍고, 어깨가 조금 더 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문득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20대 여성에게 감탄하듯 눈길을 주고 있었다. 순간, 내가 과거에 혐오하던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나이 든 남자들이 젊은 여자들을 향해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내던 장면. 나는 그걸 보며 '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감각이 등골을 탔다. 분명 나는 화이트헤드를 읽고, 나가르주나를 사유하며, 시간과 존재에 대해 깊이 있는 글을 쓰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루 컨디션이 좋다는 이유로, 내 안의 본능은 거리에서 방향을 틀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위선인가? 아이러니인가?
나는 이 경험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무단횡단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고 다시 길을 건너는 사람"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도 동시에 뭔가를 수습하고 있는, 선과 악이 아닌 두 개의 리듬이 동시에 교차하는 장면. 인간이란 결국 그런 존재가 아닐까?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깨달음'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하지만 내가 최근 사유하고 있는 '움직이는 공'의 철학으로 보자면, 깨달음이란 결코 도달점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천변만화하는 흐름 속에 머무르는 기술에 가깝다. 멈추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공이 아니다. 깨달음도 고정되는 순간 또 하나의 형상, 또 하나의 무명이 된다.
그러니까 진짜 감응자는 깨달았다 말하지 않는다. 그는 그 위태로운 깨달음마저도 흔들리며 통과한다. 공 속에 머무르기 위해, 그는 계속해서 자신을 해체하고, 반응하고, 중심을 조율한다. 깨달음은 자아가 피운 형상이 아니라, 자아를 해체하며 흐름 속으로 다시 사라지는 리듬이다.
그리고 나는, 그 짧은 순간, 거리에서 감정과 본능 사이에서 흔들리던 그 나 자신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진실한 모습임을 느꼈다.
멈춘 깨달음은 감응의 인과에 사로잡힌다. 움직이는 공 위에 머무는 존재만이, 스스로를 다시 흐름으로 되돌린다.
그렇게, 나는 오늘 또 한 번 내 안의 균열을 감지했고, 그것이 나를 다시 공의 중심으로 이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