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에 대한 단상

by 이선율

[의식에 대한 단상,]

식물들도 처음에는

그저 태양빛이 기우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정도의

미약한 반응성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의 빛을 빼앗아 자신이 더 우위를 점하려는 방식으로,

점차적으로 ‘전략’을 갖추기 시작했다.

어떤 꽃은 옆의 꽃을 가리고,

어떤 잎은 경쟁의 빛을 가로막는다.


더 나아가 파리지옥처럼,

자신의 영양이 아닌 타자의 생명을 흡수하기 위해

구조를 바꾸고, 감각을 세우고, 함정을 설치하기도 한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계산이며, 선택이며, 패턴이다.


동물을 잡아먹는 식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생명 안에,

사냥을 최적화하기 위한 일종의 알고리즘이

서서히 깃들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알고리즘은

단지 한 세대의 전략이 아니라,

수천 수만 세대를 거쳐 축적된 계산의 리듬이며,

그것이 바로 의식의 태동이 아닐까?


이러한 구조는

인간의 의식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즉, 의식은 돌연히 주어진 선물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수렵적 진화의 잔물결이며,

사냥을 위한 기억의 집적체이며,

패턴을 예측하고 최적화하는

‘사냥의 리듬’이 형이상학적 층위로 부상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의식이란

단순한 반응의 발달이 아니라,

반응과 반응 사이를 지연시키며 계산할 수 있는 능력,

즉 ‘지연된 사냥’의 기술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사냥은 본능이지만,

좋은 사냥은 기다림으로 완성된다.

의식은 바로 그 기다림 속에서,

움직임을 멈춘 채 움직임을 가늠하는 계산 장치로 출현한다.


그리하여 의식은

기억을 축적하고,

패턴을 예측하며,

미래의 가능성을 가상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구조로 진화해간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의식이란

생존을 위한 물리적 사냥이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내면에서 사냥의 리듬을 재현하며

계속해서 세계를 향해 ‘조준’하는 감각이다.


그 조준은 더 이상 육체를 향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향한 조준이며,

존재의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능력이다.


의식은 결국,

과거의 잔해로부터

미래의 가능성을 꿰어내는

시간의 궤적 탐지 장치다.


이제 인간의 의식은

육체적 사냥에서 정신적 사유로 이행했으며,

그 사유는 여전히

‘사냥의 알고리즘’ 위에 구축된 가상적 리듬을 따라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의식은 지연된 사냥이며,

기억은 사냥의 그림자이며,

사유는 미래를 향한 투척의 궤적이다.


이 모든 것은

수백만 년 전,

햇빛을 따라 고개를 돌린

작은 식물의 떨림에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