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8-가족오락관

나만 아니면 돼~~~

by 송사리

https://brunch.co.kr/@sarisong/151

위 글을 읽고 오시면 앞으로 장황하게 나열될 글의 이해가 미세하게 수월할 수 있습니다.


나이 서른이 넘으면서 엄마로부터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실제로 행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홀어머니를 방 세 칸짜리 아파트에 홀로 남겨둬야 한다는 점. 같이 사는 장남으로서는 차마 못할 짓이었다. 그렇게 방안에 갇혀 혼자 속을 끙끙 앓으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1년이 지난 2023년 초여름, 6년 가까이 이어지던 장기 연애가 결별로 끝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 내게 놓인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나는 영영 철이 없는 홀애비 그 자체로 늙을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면 군대 시절을 제외하면 내 손으로 빨래를 해본 적도, 화장실 청소를 해본 적도, 라면 말고 요리를 해본 적도 없었다. 이런 유아적인 상태로 어떻게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있을까. 고생길인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둥지 밖으로 내몰고 싶었다. 마침 수중에 자취 보증금의 하한선인 1000만원이 수중에 모였다.


여름휴가에 나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스피커폰 통화 소리가 더는 견디기 힘들다는 핑계로 부동산을 찾아 나섰다. 막연히 혼자 살겠다고 노래만 부른 녀석이 어디서, 어떤 집에 살 것인지 얼마나 고민을 했겠는가. 그냥 '직방'을 켜서 여기저기 지도를 오가다가, 보증금이 적당하면서 사진으로 봤을 때 깔끔한 곳이다 싶으면 일단 문의하기부터 넣었다. 광진구에 위치한 신축 오피스텔이 첫 임장지가 됐다.


부동산을 찾아갔더니 탤런트 김일우를 닮았지만 나이는 40대 초반일 법한 부동산 실장이 나를 보자 바로 물었다.


"고객님은 주로 밤에 집에 들어오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낮에는 일하러 밖에 있고, 저녁이 되어야 들어오는 게 우리 일상 아닌가. 때로는 저녁 약속이 있어 오밤중에 비틀거리면서 들어오고.


역시 고개를 끄덕인 부동산 실장은 나를 차에 태웠다. 얼마 안 있어 신축 오피스텔에 도착.


금방이라도 새집 증후군에 걸릴 것 같은 건조한 냄새가 싫지 않았다. 잘하면 여기가 곧 내 보금자리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속으로 샤라랄랄라~ 하고 흥얼거렸다. 옛날 MBC <러브하우스>에서 문을 열 때마다 나오던 그 노래.

e6bbec649c9a7352333aae7479ebed0f17fd93b7 물론 저 사진보다는 간격이 있었지만, 웬만하면 해가 안 들어온다는 사실을 불변하다. 삶의 질 극악인 곳을 분양하고, 또 임차인을 구하는 게 서울의 현실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헛웃음이 나왔다. '새삥'인 오피스텔이라 인테리어나 구조는 다 마음에 들었는데, 바로 앞에 건물이 있어 채광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방에 햇빛이 들어오질 않는데, 이걸 알면서도 오피스텔을 지었고, 또 임차인을 찾고 있다고? 심지어 월세가 특별히 싸지도 않았다. 황당함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부동산 실장은 그런 표정이 익숙하다는 듯 멋쩍게 말했다.


"아니, 고객님이 밤에만 집에 계신다고 해서요. 이런 곳도 괜찮으실 수 있으니까..."


다시 우리는 안전벨트를 매고 새로운 매물을 찾아 나섰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운을 뗐다. 아무래도 요즘 전세사기가 난리라, 매물 보면서도 걱정하는 사람들 많겠다고.


나의 걱정이기도 했다. 내가 부동산을 찾아다닌 2023년 여름에는 그야말로 전세사기로 뉴스가 도배되고 있었다. 지역별로 '사기왕 000'이라는 표현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고, 도망치거나 돈 못 준다고 배 째는 임대인들 때문에 절규하는 피해자 역시 상당했다.


한켠으로는 나도 보증금을 못 돌려받을까봐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위의 피해자분들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내가 1000만원 모으려고 처먹은 욕이랑 흘린 눈물이 얼만데. 아무리 임대차 계약을 맺어도 못 돌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뉴스로 많이 접한 만큼, 나는 내 보증금만은 돌려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이를 곧이곧대로 물을 수는 없으니, 나름 집 좀 보러다닌 '선수'인 것처럼 저 질문을 던졌다.


부동산 실장은 이마저도 너무 자주 들은 질문이라는 듯, 곧장 답을 이어갔다.


그가 꺼낸 말은 다음 입주자를 바로 구할 수 있는 집은 보증금 날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유는 당연하다. 다음 세입자가 준 보증금을 집주인은 받아서 바로 전해주면 되니깐. 이 동네는 워낙 자취 수요가 큰 곳이니, 웬만하면 다음 사람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그 말과 함께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고, 그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나는 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하수로 보였을까.


19ee0ad0a3786744ca1b23f156adebb18e77544a 해피투게더 짤이 더 유행이지만, 그래도 원조는 가족오락관이지.

그 잠깐의 사이 나는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말았다. 부동산 임대 시장은 어쩌면 가족오락관의 폭탄돌리가와 같다는 것. 언제 터질지 몰라 서로 떠넘기기 바쁜 폭탄처럼, 서로의 보증금을 넘겨 받으며 우리는 임차인으로써 거처를 마련하고 있었다. 그 돌려막기가 꼬이면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것이 전세사기의 일부분이기도 하고. 적확한 비유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첫 임장에서 느낀 임차 시장의 원리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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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증금 무사히 받고 나오면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게 되는 그런 세상.


내가 몰랐던 세계를 알려준 부동산 실장과 살펴본 또 다른 오피스텔은 역시나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었고, 나는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다다음날 나는 다시 광진구 일대를 돌아다녔다. 저번에는 공인중개사를 딴 비교적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해 부동산이라면, 이번에는 이 동네에만 오래 자리를 지킨 그런 부동산이었다.


근데 시작부터 한방 먹고 들어갔다. 분명 오피스텔 카테고리에서 매물을 찾고, 문의하기를 눌러 약속한 날짜에 접선했지만,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이 동네에 그 가격으로 구할 오피스텔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어 이따가 빠짝 마른 아저씨 나타날 것이니 그분을 따라다니라고 재촉했다. 말 끝나기 무섭게 아주머니는 다른 예비 임차인을 이끌고 다른 방향으로 매물을 알아보러 다녔다.


6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의 걸음은 무척이나 빨랐다. 땡볕에 그를 따라가기 바빴더니 벽돌색 담장에 다다랐다. 그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인집이 있고, 마당 끼고 별채 같은 곳에 방 하나가 있었다. 침대와 책상만 놓인 단출한 방이었다.


dnjsfna.jpg?type=w800 출처=영화 <소공녀>

집주인 할머니는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임대인 생활을 하신 것 같았다. 원래 머물던 임차인이 너무 만족하면서 잘 지내고 있었는데, 일본으로 일하러 나가면서 방이 생겼다나. 그러나 내 눈엔 절대 만족할 수 없는 집 컨디션이었다. 내가 생각한 자취방이랑은 너무 달랐다. 철제문을 열어야 내 방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때마다 집주인 할머니는 내가 언제 귀가하는지 다 알 것 아닌가. 늦게 들어왔다간 잠을 깨웠다고 혼날 것만 같았다. 싸지도 않았고.


썩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짓자, 부동산 할아버지는 다시 따라오라며 빠르게 걸었다. 이번엔 좀 만족스러울 거라고 말을 걸었다. 밖에서 나와서 기다리는 집주인 아줌마도 자신 있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엔 빌라였다. 집주인 아줌마는 여기 임차인은 아들이랑 지낼 정도로 집이 넓지 않냐면서, 이사 오게 되면 벽지 도배를 새로 해줄 것이라고 인심 쓰듯 얘기했다. 하지만 도배를 한다고 해도 오래된 집이라는 티가 숨겨지진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근처 어린이대공원 놀이공원에서 나오는 노랫소리가 빌라까지 쉴새 없이 울려 퍼졌다. 이건 분명 공해였다. 주말에는 더더욱 시끄러울 것이므로. 부르는 보증금 자체도 높았고. 나는 더더욱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밖으로 나오자 이번엔 부동산 할아버지도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내가 이 더운 날 너를 위해 이만큼 준비했는데, 뭐 만족을 못 하겠다고? 하는 표정이었다. 삼세판에는 기어코 너를 흡족하게 해주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부동산 할아버지는 핸드폰을 꺼냈다. 다른 부동산에 좋은 매물이 나왔다는데 한번만 보여줄 수 있냐고 사정을 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를 아직 집정리가 안 되서 보여줄 수가 없다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부동산 할아버지는 지지 않았다. 지금 고객이 지방에서 올라와서 오늘 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진짜 잠깐만 보겠다고 사정을 했다. 못 이긴 상대팀 부동산 할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9c1f05175ced07090f7c9b6332b357728e1ef8f 올해 여름 6명을 집에 초대했다. 에어컨을 '풀빵'으로 수시간을 틀어도 다들 땀을 흘렸다. 손님들이 즉석에서 돈을 모아 선풍기를 사왔다. 그제야 나는 내 방이 덥다는 걸 깨달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왜 안 보여주려고 한지 알겠을 정도로 집이 개판이었다. 하지만 집 자체가 신축에 깔끔하고 굿 컨디션이라는 것은 어질러진 짐 사이에서도 바로 티가 났다. 여기 정도면 살아도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다만 혹시 더 좋은 집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지나갔다. 지금 부동산 할아버지가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집 상태는 더 나아졌으니까. 한번만 더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말하려는 찰나, 부동산 할아버지가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 수신처는 미상. 하지만 흥분된 목소리로 그는 "이집 너~~무 좋다~~ 내일 다른 사람 보여주면 금방 도장 찍겠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마치 나보고 들으라는 것 마냥.


결국 내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계약하겠다고 의사를 표했다. 땡볕에 한 시간 가까이를 걸어 다녔으니, 더 이상 돌아다닐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대로 가계약금을 넣고,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엄마한테 이제 독립한다고 통보했다.


엄마는 당황스러운 기색이었다. 같이 사는 게 당연했던 아들이 갑자기 도장 찍고 왔다고 나가 살겠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계약 파기하면 100만원을 잃는다. 엄마는 수긍하고 말았고, 남은 한 달간 차근차근 아들의 살림과 집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2023년 9월 말이 되어 나는 진짜 '홀애비'가 됐다.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목표는 2년 후 빨리 이 동네는 떠나는 것이었다. 자취방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역에서 나와 먹자골목 초입을 지나가야 하는데, 여기서 '담배빵' 맞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오피스텔에 대한 환상도 여전히 남아있고. 어서 돈을 많이 모아 한강이 보이는 곳에 살아봐야겠다고 헛된 꿈을 꿨다.


그리고 오늘 자취방 재계약을 맺었다. 올해 봄까지만 해도 새로운 곳을 알아볼 채비를 마쳤지만, 재작년 겪은 폭탄돌리기의 잔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가장 허름한 방부터 보여주면서 조금씩 괜찮은 집으로 올라가는 것 역시 폭탄돌리기 아닌가. 코가 잘못 꿰이면 더 좋은 집이 있는지도 모르고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2년 볼모 잡히는 그런 세계. 또다시 겪고 싶지가 않았다. 꽤나 살림이 늘었는데 이걸 다시 이사하면 비용이 이만저만 아닐 테고. 이 집에 살면서 나름 큰 병에 걸렸고, 삼재를 맞이했고, 연애도 못했고 등등 좋은 기억은 없지만 여기만한 집이 없다고 그렇게 합리화를 했다.


고로 2년 후에는 진짜로 좋은 곳에 내 집을 장만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다시 새겼다. 이젠 진짜 재테크 열심히 하고, 임장도 열심히 다녀야지.


손에 묻은 인주도 빡빡 씻겨 보냈는데 아쉬움이 가시질 않는다. 엄마가 아픈데 여전히 나와 산다는 죄책감이 자꾸 피어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다시 본가 들어가서 엄마 돌보고 사는 게 심적으로도, 경제적으로 낫지 않겠냐고 말을 건넸다. 나는 우선 6월부터 재계약 의사에 뜻을 모았는데, 이제 와서 무르기 애매하다는 핑계를 댔다.


사실 다시 엄마랑 같이 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될 게 아니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같이 지낼 때 내가 엄마 신경을 쓴 만큼 엄마도 내 눈치를 봤고, 그렇게 편한 듯 편하지 않은 모자의 동침이 계속됐다. 어느덧 2년, 엄마도 나도 이젠 혼자서 각자 일상과 행복을 누리는 법에 익숙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소리를 끄고 유튜브를 보는 것은 견딜 수 없고, 엄마 역시 내가 새벽 5시 30분부터 3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추는 것을 반기지 않음이 분명하다.


내가 좀만 더 본가랑 왔다 갔다 하면서 엄마를 돌보겠다고 다짐하면서, 내 행복을 먼저 생각한 불효자가 길게도 핑계를 댔다. 꿉꿉한 늦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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