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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홍 Dec 20. 2018

말모이, 2019

‘문명 강대국은 모두 자국의 문자를 사용한다’


보고싶은 영화였는데, 기분이 좋게도 조금 일찍 시사회로 말모이를 보게되었다.

사실 일제강점시기를 그린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일방적으로 당해야하는 모습을 가감없이 봐야하는 것도 힘들고,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여주는 비열한 모습을 담는것도, 또 일본인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는것도 나에겐 참 어렵다.

일단 말모이는 1940년대 경성을 살아가고 있던 우리 민족의 삶을 배경으로 한다. 고유언어를 가지고 있던 우리에게 일본을 섬기는것이 마땅한 도리라 가르치며 언어를 말살시키려하고, 그 속에서도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조선어학회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담았다.  2017년 택시운전사로 이름을 알린 엄유나 감독의 작품이고 배급은 롯데엔터테인먼트다(?)

이야기는 그저 아들의 월사금을 내기 위해 어떤일도 마다않고 뛰어드는 까막눈의 김판수(유해진)와 조선어학회의 대장으로 우리말 사전의 원고를 필사적으로 지켜야하는 류정환(윤계상)이 중심으로 돌아간다.
확실히 상업영화라 그런지 13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재밌는 요소를 잘 살려냈고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끝까지 봤다.
시대배경과 영화의 소재만 말해도 사실 내용은 뻔하다. 조금의 반전도 없이 누구나 예상가능한 내용이고, 영화속에서도 모든것이 전부 설명해준다. 그래서 딱히 스포랄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시시함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가 아닌가 싶다.

‘문명 강대국은 모두 자국의 문자를 사용한다’ - 주시경 선생

말모이는 ‘말을 모으다’는 뜻으로, 주시경 선생의 정신을 이어 받아 조선어학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조선 팔도의 사투리를 모두 모으는 일을 한다. 그 사투리들을 모아 함께 표준어를 정해 우리말 대 사전을 편찬하기 위한 조직이다. 이 작업은 장장 13년이라는 세월동안 지속되었다.

일본은 우리에게 민족성을 말살하기 위해 언어를 빼앗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조선인들에게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모든 학교에선 조선어를 읽고 쓰는 것을 금지하고, 발견되면 가차없이 심한 욕설과 매질을 당한다. 겁에 질린 학생들은 자신의 동생에게 처음부터 일본어를 가르치고, 결국 전쟁의 총받이로 길러진다.

이 영화에서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있었던 사건들을 정렬시켜놓은것이 가장 주된 내용이긴 하지만 내가 가장 인상깊게 봤던것은 바로 김판수라는 인물이었다.
김판수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까막눈인데, 류정환과 티격대격 하면서도 글을 배우는 재미, 읽는 재미를 알아가며 우리말을 지켜야한다는 사명감으로 중요한 임무를 맡은 역할인데,

떠듬떠듬 글을 읽어내려가던 김판수가 서점에 쪼그리고 앉아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읽느라 울고 불며 밤을 꼬박 새다 류정환의 “왜요, 김첨지가 불쌍해요?”라는 질문에 머쓱해 하던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김판수가 글을 읽는 즐거움을 느낀것 뿐 아니라, 처음 글도 모르는 사람을 데려왔다며 역정을 내던 류정환이 이젠 문맥까지 알아차릴정도로 글을 배운 김판수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이 전달됐다.

언어라는것이 얼마나 파급력이 큰 것인가. 조선시대에는 해례본을 지키기 위해, 강점기에는 사전을 만들기 위해. 내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말하고, 읽고 있는 한글은 무수한 희생으로 지금까지 남아있고, 사용되고있는것이다. 실제로도 전 세계 200여 국가 중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20개 국가밖에 없다.
또한 나라를 지키기 위한 독립투사뿐 아니라 우리의 고유 언어 ‘한글’을 지키기 위한 독립투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고유의 언어와 문자를 가졌다는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소중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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