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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홍 Aug 19. 2018

홈(home), 2018

준호의 home sweet home.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영화를 재밌게 봤다.
포스터 전면에 ‘우리들 제작진의 또 하나의 선물’이라는 문구에 당연히 동일 감독의 작품인 줄 알았지만, 지금 말하려는 ‘홈(home)’은제작진이 같고 김종우 각본 감독의 작품.

대체적으로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어른이 되어 하고 싶은 말을 아이의 입을 통해 내놓는다.
감독의 의도인지 제작자의 의도인지 아마도 감독의 의도이고, 제작자는 그런 의도를 가진 영화들을 만드는 것이겠지만 (물론 이 의도만으로 모든걸 설명하기엔 너무 단편적이지만) 의도적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막내에게 관중의 마음을 흔들 막중한 책임을 넘겨주고 있다.
두 영화 모두 막내는 흔히 대중적으로 생각하는 ‘아이’의 모습을 모두 갖추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영화의 흐름에 결정적인 대사를 하게함으로써 관중의 벽을 허물고, 어른의 입을 통해 나왔다면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를 대사를 내뱉게 하고 아이니까 그럴수도 있지라며 관대함을 요구하지만, 불현듯 마음에 얹히듯 죄책감을 피할 수 없다.

준호는 이 영화의 중심인물이고, 결손 가정의 첫째로 나온다.
너무나 알 것 같은 이 설정의 준호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인물이다.
요즘 청소년 범죄를 보면 더 이상 미성년이라고 해서 범죄가 미숙하게 이뤄지거나, 미성숙한 태도에서 벌어지는 실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엄연히 공동체 사회가 있고, 그 모델은 부모에게서 나오고 있음을.
준호는 어쩔 수 없이 철이 들어있고, 자기 주장을 못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도 순종적이다. 영화에서 이 부분을 설명해주는 장면으로 바쁜 엄마는 가족을 위해 준호가 차려놓은 밥상에 앉지도 못하고 출근 준비를 하며 ‘싸우지 말아라, 엄마 학교 갈 시간도 없다.’라며 나름의 자신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자식을 돌보며 경고성의 말을 하지만 이미 어제 친구들에게 맞아 터진 입을 다물고 넌지시 용돈을 달라고 말할 뿐이다. 떼도 쓰지 않는다.
그렇게 아이들은 등교, 엄마는 출근을 하며 차를 끌고 온 어떤 아주머니에게 일방적으로 모욕을 당하는 엄마의 모습을 우연히 보며 차근차근 약자의 역할을 익혔을것이다.

영화에서 인물 관계도는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
등교길에 봤던 아주머니와 엄마는 같은 차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나고 둘 다 의식 불명의 상태로 병원에 눕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준호는 동생(성호)과 떨어져 살게 된다.
여기서 등장한 ‘아저씨’는 성호의 짐을 챙기고, 왜 같이 가지 않냐 보채는 성호의 물음에 갈곳 잃은 준호의 눈동자와 코를 막고 현관 밖에서 기다리던 지영이. 모두가 떠난 자리의 준호의 뒷모습.

호전되지 않는 두 어머니의 상태에 병원에서는 아저씨에게 실질적 보호자이지만, 어른의 눈에는 단지 어린아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 준호와 성호 그리고 지영이를 묶어 아이들은 데리고 오지 않는것이 좋겠다고 말을 한다.

혼자 남겨진 준호는 여기 저기 외로움을 흘리며 모두에게 기대고 싶어하지만 누구도 어깨를 내어줄 여유가 없고, 쓸쓸히 라면을 끓여먹다 찾아온 동생의 모습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는 표정. 함께 잠든 사이 성호를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아저씨를 앞에 두고 성호는 준호에게 같이 가자 떼쓰지만, 자신의 입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준호는 등을 보이고, 아저씨는 결국 준호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함께 살게된 너무나도 아늑한 집. 아저씨가 악역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영화 보는 내내 가슴을 쓸었다. 약자들이 모여사는 이 집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따뜻하다. 그냥 그렇게 살게 뒀으면 참 좋겠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엄마의 부고와 이모의 등장으로 준호는 다시 지영이가 코를 막던 냄새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엄마의 부고로 이제는 진짜 혼자가 된 준호는 시설에 들어가야하는 상황.
돌아 돌아 다시 찾아간 아저씨의 도움으로 준호는 약자들의 집으로 돌아가지만, 아슬아슬하게 돌아가는 행복한 일상은 자꾸만 준호를 밀어낸다.

자꾸만 아이와 어른의 역할을 나누는 장면들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알려주려 하는것 같다. 영화 안에서 꼬맹이라고 불리던 준호에게 형이나 되서 그래도 되냐고 소리치던 이모의 날선 음성에 준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약자의 입장으로 준호를 거두고 싶었던 아저씨에게도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것이 있고,
그렇게 버려진 준호는 왜 자신이 버림받아야 했다고 생각했을까. 그 이유를 콕 찝어서 설명해줄 사람은 누구이며, 준호가 한계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들은 합당한 이유였을까.

영화 내내 입을 꾹 다물고 그저 잡고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 달아날까 소극적인 태도로 임했던 준호는 처음으로 아저씨 등 뒤에 대고 강력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준호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바랐던건 단지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이어야하고, 어른이어야하는 애매한 위치의 친구들. 그리고 소위 ‘어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보여줘야 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는 영화였다.
아직도 처절하게 무너지며 상실감에 휘청이는 준호의 모습이 어쩔 줄 모르게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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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ATO 제작의 영화이다.
생각보다 평론가 평점이 낮아서 놀랐다. 속 시원히 결말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일까, 행복하지 않은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나는 이런 영화들이 조금 더 주목받고 관심 받았으면 좋겠다.
찾아보니 #겟나인 #아토특별전 이라고 8월 동안 한국 독립 영화 제작사 특집으로 메가박스에서 기획상영하는 이벤트가 있는것 같아서 올려본다. 지금 포스팅한 홈은 8/21일 상영이라 관심이 간다면 챙겨보는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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