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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언 Feb 05. 2022

초록 아보카도의 맛

어쩌다 호치민 마담 #6

호치민에 오기 전까지 아보카도에 대한 기억은 백화점 수입 식료품 코너에서나 판매하는 껍질이 울퉁불퉁하고 거무스름한 타원형 과일이었다. 어떻게 먹는지도 몰라서 바구니에 담을 생각조차 못했던 생경했던 과일 아보카도는 호치민에 살면서 나의 최애가 되었다. 좋은 과일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것은 호치민에서 사는 큰 장점이었다. 물론 맛있는 과일이 많다고 덮어 놓고 먹다 보니 체중이 느는 건 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 와중에 아보카도는 건강과 체중감량에 도움이 되는 착한 슈퍼푸드라고 하니, 예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박이 아니라 아보카도입니다

처음 만난 길쭉한 아보카도(Long Neck Avocado)

베트남에는 주키니 호박처럼 생긴 아보카도가 있다. 베트남산 제철 과일을 종종 보내주던 직원 T가 정체불명의 과일을 보내주었다. 남편에게 무슨 과일이냐고 물어봤지만, 모른다고 했다. 워낙 과일을 좋아하는 나니까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고 T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받아왔나 보다. 이 과일의 정체는 뭘까? 뭔지를 알아야 깎아먹든 구워 먹든 할 것 아닌가. 결국 이 과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마트로 향했다. 나는 종종 마트에 베트남어를  공부하러 갔었는데, 판매대에 붙어있는 베트남어로 된 제품명을 구글 번역기를 돌려 영어 표현을 알아냈었다. 다행히 마트 과일 선반에는 이 과일이 있었고, 그렇게 알아낸 이 과일의 이름은 Trái Bơ(짜이 버), 아보카도였다. 처음 보는 주키니 호박모양의 아보카도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공유했더니 인친들이 난리가 났다.

“이렇게 생긴 아보카도는 처음 봐, 애호박이 아니라 아보카도라고?”


나도 처음에 생김새만 보고 아보카도가 맞는지 의심했었다. 찾아보니 이 아보카도는 Long neck avocado(긴 목 아보카도)라는 품종으로 중남미 지역과 베트남에서 나온다고 한다.  



아보카도가 커피를 만났을 때

과일의 정체를 알았으니 어떻게 먹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T는 실온에서 이틀 정도 후숙 시킨 후 깎아서 과일 먹듯이 먹으면 된다고 했다. 이틀 정도 지나니 딱딱했던 아보카도는 조금 말랑해졌다. 아보카도 먹는 법을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그나마 쉬워 보이는 커피믹스를 활용한 아보카도 커피 만들기 레시피를 발견해 도전해봤다.


[커피믹스 아보카도 커피] 재료는 블랙커피믹스 1개, 바나나 반개, 아보카도 한 개, 우유 200ml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잘 익은 아보카도를 골라 껍질을 벗기고, 나머지 재료와 얼음을 넣고 갈았더니 맛있는 아보카도 커피가 되었다. 바나나의 단맛 덕분에 따로 설탕을 넣지 않았는데도 적당히 달콤했고, 아보카도는 부드럽고 고소했다. 바나나와 아보카도 덕분에 적당한 포만감도 느낄 수 있어 한 끼 식사대용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아보카도 스무디와 짜다(아이스티)


[길거리표 아보카도 스무디] 커피믹스 아보카도 커피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아보카도 탐색에 돌입했다. 더 이상 아보카도는 내게 낯선 과일이 아니기에 좀 더 친해지고 싶어졌다. 베트남어 학원에 가는 길 모퉁이에는 작은 과일 스무디 가게가 있었는데, 처음으로 아보카도 스무디를 주문해 보았다. 가격은 단 돈 4만 동(2,000원 상당)이었는데, 스무디를 만드는 동안 자리를 잡고 앉으면 짜다(아이스티)까지 무료로 줬다. 그야말로 2천 원의 행복이었다. 알고 보니 아보카도 스무디는 망고 스무디만큼이나 베트남 여행객들에게 알려진 음료였다.  고소한 맛에 꾸덕한 식감까지 곁들인 건강한 맛에 반한 나는 그 후로 한국에서 친구들이 놀러 오면 아보카도 스무디나 아보카도 커피를 추천하게 되었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아보카도가 통째로 들어간 꾸덕꾸덕한 식감의 스무디를 한국에서 먹기는 힘들 것 같았다. 다만 대부분의 스무디처럼 아보카도 스무디도 연유를 많이 넣고 만든다. 달지 않은 아보카도 스무디를 원한다면 잇등(it duong, less sugar)이나 콤등(khong duong, no sugar)을 잊지 말고 말해야 한다.


[콩까페 아보카도 커피] 모퉁이 스무디 가게 옆 큰길에 콩 카페(Cong Ca Phe) 7군점이 생겼다. 콩카페는 코코넛 커피가 유명한데, 아보카도 철에는 아보카도 스무디도 잘 팔렸다. 아보카도 스무디는 메뉴에 있는 음료지만 아보카도가 비쌀 때는 솔드 아웃되었다며 팔지 않았다. 그냥 아보카도 스무디도 맛있지만, 주문할 때 커피 샷을 추가해달라고 하면 아보카도 커피가 된다. 아보카도 커피는 콩까페 정식 메뉴는 아닌데, 이 방법은 꽤 유용했다. 운동 다니는 피트니스센터 1층에 있는 카페에는 아보카도 스무디는 있지만, 아보카도 커피는 메뉴에 없었다. 카페 버(Ca Phe Bo, 아보카도 커피)가 있냐고 물어봤더니 아보카도 스무디에 커피 샷을 추가해주었다. 이 방법을 그대로 콩카페에서 써먹었더니 먹혔다. 게다가 샷 추가 비용은 무료였다. 그리하여 콩카페에서도 나의 최애는 코코넛 커피가 아니라 아보카도 커피가 되었다. 아무 때나 먹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더 소중했다.



초록 아보카도 어떻게 할까

호치민에는 약국이나 카페에서도 종종 과일이나 채소를 파는데, 회사 근처 자주 가는 카페에서 아보카도를 쌓아 놓고 팔고 있었다. 보통은 길쭉한 아보카도를 팔지만, 10월 전후로 동그란 아보카도도 판다. 주인아주머니께 가격을 물어보니 1kg에 6만 동이라고 했다. 씨알이 커서 1kg를 샀더니 아보카도 3개를 담아주셨다. 많이 사면 후숙 시키다가 썩혀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보통 먹을 만큼만 1kg 정도만 산다. 베트남 친구 H가 학교 앞 카페에서 주인이 아보카도 농장을 가지고 있어 좋은 아보카도를 1kg에 3만 원에 판다고 했다. 그 소식을 뒤늦게 듣고 갔을 때는 아보카도 시즌이 끝났다. 발품을 파는 만큼,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건 어디에서도 통하는 진리였다.

잘 익은 아보카도는 겉은 말랑하고 속은 노랗고 부드럽다

호치민에서 마트나 시장에서 파는 아보카도는 대부분 익지 않은 초록 아보카도다. 갈색빛이 비치고 말랑말랑한 아보카도를 골라 사면 바로 먹기 좋지만, 대부분은 초록 아보카도라 후숙을 시킨 후 먹어야 했다. 게다가 베트남 아보카도는 익어도 확연한 검은색으로 바뀌지 않아서 색깔이 아니라 만져보고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후숙 과일이 어려운 건 깜빡하는 순간 썩어 버리기 때문일 거다. 호치민에서는 초록 바나나, 초록 망고, 초록 아보카도 천지라 후숙 해서 먹어야만 했는데, 입성 초반에는 후숙 하는 방법을 잘 몰라서 썩혀버리기 일쑤였다.


당장 먹지 않을 아보카도는 잘게 잘라서 냉동 보관해둔다

아보카도를 후숙 시키는 방법에는 냉장고 위에 올려두기, 포일에 싸 두기, 사과와 함께 두기, 쌀독에 넣어두기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신문지로 싸서 두는 게 제일 편했다. 한국에 온 지금도 신문지로 싸서 실온에 두고 수시로 상태를 체크하며 후숙 시키고 있다. 후숙을 지연시키려면 냉장고에 넣어두는 게 좋다고 해서, 아보카도가 말랑해지면 냉장고에 넣어두고, 당장에 먹지 않을 것 같으면 잘라서 냉동실에 보관한다. 우유랑 갈아먹으면 훌륭한 스무디가 된다.

가끔 인스타그램으로 타인의 삶을 엿보다 보면 딱딱한 아보카도를 그냥 먹는 사진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예전 <냉장고를 부탁해> 프로그램에서 발견한 팁인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서 강제 후숙 시키는 방법을 권한다. 덜 익어서 딱딱한 아보카도를 씨를 제거한 후 랩에 싸서 1-2분 정도 돌리면 말랑하게 익는다고 한다. 물론 전자레인지를 이용한 강제 후숙은 풍미가 훨씬 떨어진다고 하니,  웬만하면 시간을 두고 자연적으로 후숙 시키면 좋겠다.



내 맘대로 아보카도 활용법

아보카도는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도 맛이지만, 영양적인 측면에서도 완벽한 식품이다. 건강을 위해 혹은 다이어트를 위해 아보카도를 섭취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냥 먹어도 맛있는 아보카도지만, 부드러운 식감에 고소한 맛이 있지만 단짠이 더 해지면 훨씬 풍미가 좋아진다.


1. 꿀과 라임즙을 뿌려 먹기

생으로 먹는 아보카도도 맛있지만, 꿀과 라임즙까지 뿌려 먹으면 풍미가 더 해진다. 또는 갖가지 채소들과 함께 발사믹 소스를 뿌려서 샐러드로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


2. 명란젓갈 + 김에 싸 먹기

아보카도를 쉽게 먹는 방법 중 하나다. 명란젓갈이 없으면 치즈를 얹어서 김에 싸 먹는데, 크리미 한 아보카도의 식당이 꾸덕한 치즈의 맛과 잘 어울려서 남편이 와인 안주로 좋아하는 메뉴다.


3. 빵에 얹어 먹기(발라 먹기) + 크림치즈

아보카도의 베트남어로 짜이 버(Trái Bơ) 또는 버()로 불리는 데 짜이는 과일, 버는 버터를 의미한다. 직역하자면 과일 버터란 뜻이다. 잘 익은 아보카도는 버터 칼에도 잘 뭉개질 정도로 부드럽다. 우리 아이들은 아보카도를 얇게 저며서 빵에 올려주면 버터처럼 쓱쓱 뭉갠 후 치즈를 올려 먹는다. 짭조름한 치즈와 고소한 아보카도는 궁합이 좋다. 토스트나 베이글 위에 올려 먹으면 정말 맛있다.

아보카도 토스트와 아보카도 베이글, 아보카도는 크림치즈와 궁합이 좋다

4. 아보카도 커피 만들기

아보카도 커피를 만드는 레시피는 인터넷에 찾아봐도 잘 나온다. 아보카도 스무디를 만들고, 거기에 진한 커피를 추가하는 방법이 가장 일반적이다. 커피는 원하는 대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넣을 수도 있고, 커피믹스를 진하게 타서 넣을 수도 있다. 또는 아보카도와 커피를 같이 블렌더로 갈아먹는 방법도 있다. 아보카도 스무디에 커피 샷을 추가하는 경우 커피가 잘 섞이지 않아 순간 쓴맛이 올라올 수 있으니 잘 저어 먹는 것이 좋다. 하지만 커피 맛을 먼저 느끼고, 그 후에 아보카도가 섞인 맛을 느끼고 싶다면 굳이 섞지 않아도 괜찮다. 내 마음대로가 포인트다. :-)


5. 과카몰리 소스 만들기

멕시코 소스의 일종인 과콰몰리를 베트남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이 길어질수록, 학교는 어떻게든 학생들을 수업에 참여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한다. 그중 하나가 선생님이 만드는 방법을 동영상으로 알려주면, 아이들은 집에서 엄마와 함께 만들고 그 결과물을 씨소클래스(SeeSaw Class,  교과과정 공유 디지털 플랫폼)에 코멘트와 함께 업로드해야 한다.  다진 양파, 껍질을 까고 다진 토마토, 으깬 아보카도에 소금 한 꼬집, 잘게 다진 고수잎, 라임즙을 취향대로 넣고 잘 섞으면 완성된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조수가 되어 꼬마 셰프를 물심양면으로 서포트해야 했다. 지금도 아보카도만 보면 과카몰리 만들고 싶다고 하는 걸 보면 결과물은 만족할만하다. 마지막으로 나초칩이나 토르티야 칩에 과콰몰리를 올려 먹는 사진을 찍으면 숙제가 끝난다. 과콰몰리 소스는 아이 입맛에도 잘 맞았는지 그 후에도 아보카도만 보면 과콰몰리 만들까라고 말한다.  


6. 아보카도 덮밥

 앞서 말했듯이 아보카도는 짠맛과 궁합이 잘 맞는다. 아보카도에 간장만 추가해도 밥 비벼 먹고 싶어 진다고 하더니, 아보카도에 낫또, 양념장, 김가루, 계란 프라이, 양상추, 양념장까지 얹어서 비벼 먹으니 그야말로 영양가 충분한 한 끼 식사가 되었다. 제대로 된 아침상을 차려줄 시간이 없을 때 종종 사용했던 메뉴다.








다행히 한국에 돌아온 지금 호치민만큼은 아니지만 꽤 저렴한 가격에 남미산 아보카도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하마터면 아보카도 때문에 호치민이 그리울 뻔했다.       

10개 12,500원에 산 페루산 아보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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