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좋은 날의 연속

약은 잊지 말고 하루에 한 번.

by 나인

약을 처방받고, 먹지 않고 있었다. 이 무슨 미련한 짓인가. 남편이 어느 날 점점 화가 심해지는 것 같아. 힘들면 약을 먹어. 라고 말했을 때 깜짝 놀랐다. 나 자신이 그렇게 화를 내고 있으면서도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 너무 오래되어 무감각해진 것이다.


다음날 아침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다. 산부인과에서 처방해준 pms약이었다. 그날 아침이 지나고 퇴근 후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데 왠지 다른 때와 달랐다. 평소 같았으면 데리러 가기 20분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아이들을 만나는 게 두렵고, 어린이집에서 5분밖에 안 걸리는 집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갈 생각에 진땀이 났을 텐데 웬일로 너무나 마음이 평온했다. 천천히 걸어 어린이집에 도착했고, 나는 두려움 없이 (약간의 긴장은 있었다) 벨을 누르고, 아이를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맞이 할 수 있었다. 물론 평소에도 웃는 모습이지만 마스크에 가린 입꼬리의 각도가 억지로 웃을 때랑 매우 차이가 남을 그때 알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느끼고 있었겠구나.


첫째가 타고 오는 유치원 버스 하차 장소까지 가는데 또 안아달라고 난리다. 안아주면 여기로 가라 저기로 가라 짜증이 한가득이다. 어?? 근데 화가 안난다. 원래대로 라면 이때쯤 00야!! 그만!! 이라고 소리쳤어야 했는데 아이를 어떻게 꼬셔서 하차하는 곳까지 갈지 머리가 팽팽 돈다. 그리고 그 일이 사실은 조금 귀찮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일임에도 한 점의 귀찮음 없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유치원 버스가 도착하고, 첫째가 내렸다. 역시!! 내리자마자 선생님이 가시지 마자 짜증이다. 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화를 내던 내가. 아이를 보면서 웃는다. 짜증 내는 모습이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다. 둘을 잘 달래서 집까지 오는 데 성공하고, 나는 내 자신이 너무나 뿌듯했다.


그 후에도 엄청나게 폭발하는 일은 없었다. 남편이 오면 웃어줄 수 있었고, 택시 아저씨가 길을 잘못 들어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다. 첫째가 길바닥에 누워 뒹굴어도 둘째가 숟가락을 집어던져도, 소리를 지르며 한 시간 넘게 생떼를 써도, 나의 화는 폭발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너무 신기하고 신나서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남편도 덩달아 신이 났다.


며칠이 지나도록 마음이 평온하니 세상이 아름답고 아이가 예쁜 게 보인다. 남편이랑 정말 오래간만에 한잔을 하는데 남편이 그런다. 드디어 술을 안 마셔도 될 것 같다고. 내 증상이 심해지면 남편은 항상 맥주나 칵테일을 한잔 하고 잤는데 고민이 없으니 이제는 술 안 마셔도 될 것 같다는 말이었다.


아침에 한알.


이 한알이 지금의 나를 살리고 있다.

우울증에 약을 먹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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