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약을 먹으니 느껴지는 감정들

by 나인

약을 먹기 시작했다. 아침에 두 알 저녁에 세알.


약을 먹고 느낀 건 피곤하다는 것. 피곤했다 졸렸다. 잠이 왔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내 안에 꽁꽁 뭉쳐져 있던 감정들이 풀어헤쳐진 느낌. 서로 똘똘 뭉쳐져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없는 기분들이 서로 뒤엉켜 뒹굴고 있던, 그 뭉치들에 불이 붙어 타오르고 있던 내 마음들이 약을 먹자 서로 떨어져 각각의 모양을 드러냈다. 뭉치지 않고 떨어져 불씨가 사라지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을 일도 없다. 세상일이 다 그런 거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라는 말이 마음에도 쓰이는 것 같다. 약간은 다른 의미로..


모든 감정들이 뭉쳐있으니 이것들이 한데 뭉쳐 화라는 감정으로 획일화되었다. 각각 개성이 있는 아이들인데 그걸 화라는 감정으로 뭉뚱그려 표현을 하니… 이게 될 일인가.. 뭉쳤던 화가 흩어지며 죽었다.


신기하게 약을 먹으니 뭉쳐있던 아이들이 풀어헤쳐!! 를 한 듯 흩어져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는 것. 마음이 울렁울렁한데.. 이게 무슨 감정이지? 마음이 아픈데 이게 어떤 감정 때문일까? 속이 왜 쓰라리지.. 이건 뭘까?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채우면서. 마치 우영우 마지막 장면에 영우가 ‘뿌듯함’이라는 감정을 찾아가듯이. 나는 나쁜(실은 나쁜 게 아니지..) 감정들의 실체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렇게 풀어헤쳐진 나의 감정의 이름을 다 찾는 날. 그리고 그 감정의 이유를 알게 되는 날. 약이 없이도. 내 감정들이 똘똘 뭉쳐 무어인지 모르고 불타오르는 것 말고..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나의 상황을 찾는 게 아니라 나의 감정의 이름을 찾는 게 우선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다시 느낀다.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고, 상황을 탓하지 말고.. 찾자. 이 기분이 무엇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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