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는 것

내 우울의 이유

by 나인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다. 나는 그때 어렸고, 처음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딛은 사회에서 총알받이로 보내졌다. 그날 나는 죽었고, 이후로 나의 모든 감정들도 서서히 죽어갔다.


무대미술을 하고 싶어 대학원에 갔다. 예술을 한다는 사람이 강의를 했고, 나는 깊이 감명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때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어시스턴트가 되었다. 그리고 첫 번째 공연에서 디자이너의 잘못과 여러 가지가 섞여 공연이 개판이 되기 일보직전이었다. 디자인은 수십 번 바뀌었고, 우리는 모형을 10번도 넘게 고쳤다. 그때 나는 이번 작업을 그만하자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는 우리를 이유로 그만두지 않았다. 그때 내가 그만두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때 알았어야 했다. 그가 진정한 예술가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를 이용하는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25살 대학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본 무대미술은 예술이 아니었다.


나는 캐드를 할 줄 알고, 다른 사람보다 도면을 잘 친다는 이유로 소품팀에서 무대팀으로 옮겨졌다. 나는 우쭐했다. 내가 잘해서 신분이 상승되는 것처럼 느꼈다.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했고, 나를 인정해 주는 누군가를 만난 것 같았다.


회의가 있던 날,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모형을 들고 선생님도 없이 회의에 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거기에 있던 관계자들은 왜 디자이너가 없냐고 어디 갔냐고 나에게 화를 냈고 내가 무대를 설명하는 동안 듣지 않고 계속 자기들끼리 무대디자인을 고쳤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온갖 수치스러운 일들을 당해야 했고, 정작 그 자리에서 그걸 받아야 하는 당시자는 교실에 앉아 그저 지켜만 보았다. 나는 그 일이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영문도 모른 채 총알을 맞은 나는 계단실에서 눈물을 흘렸다. 디자이너가 이런 취급을 왜 받아야 하냐고. 그 인간한테 하소연을 하면서.


그는 그날 그 회의에 갔어야 했다. 어떤 이유라도 우리를 보내면 안 됐었던 상황이었지만, 회피와 도망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그 빈자리에 나를 앉히고, 내가 총알을 맞고 죽어갈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우리를 나를 내몰았다.


나는 그때 흘린 눈물이 나를 쏜 그들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정확하게 안다. 그 눈물은 나를 그곳에 보낸 그자에게 흘리는 배신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도 나는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를 받지 못했다.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나는 이 이야기를 차차 풀어 나갈 것이다.) 나는 그를 가족으로 스승으로 생각했으나 그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나를 가차 없이 내쳤고, 필요하면 잘 구슬려 썼다. 나는 그의 노예였다. 돈을 받지도, 대우를 받지도 못했다. 오로지 질책뿐이었다.


내가 그에게 착취라는 단어를 쓴 그날 그는 말했다. 내가 해준걸 모르는 배은망덕한 아이라고, 너는 초심을 잃었다고.

아니. 나는 초심을 잃은 것이 아니라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나의 권리를 찾은 것뿐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그자의 아래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벗어나지 못한다면 내 후배들은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뿐이었다.


나는 버려진 아이였다. 나를 아껴주고 보해해 줄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굶주리고, 망가져 으르렁거리는 늑대. 그런 늑대의 본래 모습을 알아봐 준 남편이 나를 살렸다. 지금도 나를 살리려고 애쓰고 있다. 나는 지금도 으르렁대고 있다. 아직도 남은 상처들이 아파 울부짖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상처를 어디에서 입었는지 조차 모르고 이젠 괜찮다며 덮어 두었다. 이제는 상처를 살피고 총알을 꺼내야 한다. 내가 총알을 맞았다는 것조차 모르던 그때가 아니기에


이번 이태원 사태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마땅히 보호받아야 했을 그들도 보호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누군가 발견하고 조그만 일찍 꺼내 줬더라면 살았을 생명이 사라졌다. 아니 그전에 그들을 잘 이끌어줄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게 한 명이 아니라 막강한 힘을 가진 국가라는 든든한 부모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사고가 났을 때라도 빠르게 알아차리고 구조를 했다면 어땠을까.


나도 그들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인터뷰에서 그랬다. 어쩌다 보니 그곳에 떠밀렸고, 어쩌다 보니 발이 떠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또 어느새 내가 누워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넘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떠밀려 내가 누워서 숨을 쉴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외쳤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다행히 나는 그곳에서 본능적으로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고, 간신히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 빠져나왔다. 그 사이 크고 작은 일들로 부상을 입었고, 그래서 나는 부상자가 되었다. 그곳에서 사망한 사람들도 여럿 있을 것이다. 마음이 찢기고 부서져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었던 사람들…


나는 피해자다. 나는 피해자이지만 병원에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가족들이 걱정한다. 여기저기 멍이 들고 다리가 부러졌으니까.. 그러다 내가 쓰러졌다. 그제야 병원에 갔다. 약을 먹고 몸이 조금 회복이 되니 그때가 떠오른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이었고, 나를 보호했어야 했던 선생님은 나를 사지로 내몰았다. 세월호에서 사람들은 선실에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믿었다. 나도 선생님을 믿었다.


나라는 국민을 위해 무얼 하는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가. 나는 그런 국가를 아직도 믿는다. 그도 그랬다. 그래도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고…


그를 버려야 한다. 그를 버리고 잘못을 따져 묻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데 사과를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정부가 공식적인 사과를 했다. 자신의 잘못을 알고 사과를 한 것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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