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선 Sep 08. 2022

아프지만 일할 수 있다는 것

포기할 수 없는 이름

 살면서 누구나 그렇듯 여러 이름들이 생긴다.

 가족, 친구, 혹은 그냥 아는 사람-그런 관계들이 붙이는 이름부터 각종 책임과 위치들까지. 나도 많은 이름으로 불렸고 그 중 여전히 가끔 불리는 것들과 이제는 지나간 이름들도 있다.


 지금이 어쩌면 가장 적은 이름을 가진 때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이대리로 불린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집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에서 가족보다 오래 보는 사람들에게 불리는 이름이다.

 정말 바쁜 날에는 누가 ‘대리님. 바쁘세요?’하고 메시지만 보내도 한숨이 나온다.

 내가 가진 이름 중 가장 재미없는 이름. 그래도 가질 수 있어 참 감사한 이름이다.




 병원 시계에 익숙해진 몸이 해 뜰 때면 눈이 떠져서 하루 종일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만 보고 약만 챙겨 먹던 때에 생각했다. 앞으로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을까. 배려받을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그런 고민도 잊혀질 만큼 회복되어 간단한 업무지만 직장생활도 하다가 한참 이직을 준비하던 때였다. 한 회사의 입사 면접에서 ‘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좀 당황하고 말았다. 병원에 가야 하는 일이 늘어나던 때라서 숨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수술을 받기는 했는데 이제는 괜찮습니다. 하고 대답해봤다.

 불합격이었다. 왠지 그 대답이 원인인 것 같았다.

 그래서 이후의 면접에서는 항상 ‘건강합니다.’라고만 했다.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니. 그래도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괜찮은 조건으로 이직할 수 있었다.


 그저 사랑니를 뽑거나 작은 용종이 발견되었을 때 조차  동네 병원의 의사들은 나에게 어떤 치료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항상 ‘담당의에게 확인 먼저 받고 오세요.’ 아니면 ‘진료받는 병원에 가서 그쪽 진료과랑 협진 받으세요.’라고 말한다.

 그렇게 서울 병원 방문이 너무 잦아질 때는 연차를 쓸 때마다 각종 핑계를 만들어낸다.


 바빠서 무리를 하거나 피로가 쌓이면 머리가 온통 시큰거리며 당겨오고 두통과 어지러움에 시달린다. 내가 계속 이렇게 일할 수 있을지 불안이 찾아오는 때도 있다.

 적당히 문제 없는 사람처럼 보이며 일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좀 귀찮고 구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만 죽이던 때보다는 낫다.


 여전히 누가 '이대리'하고 부르고 내가 내 일을 다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감사한 일이다. 나이에 맞게 세상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많은 것이 감사한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의 중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