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블랙홀 같은 검은 웅덩이

마음의 힘

왜 내가 암에 걸렸을까. 

암의 치료보다 사실 그게 더 궁금했다. 주치의는 명확한 대답을 해줄 수 없다고 그랬다. 너무 많은 삶의 원인과 환경적 원인이 있어서라며. 어쨌든 어떻게 살았느냐의 문제였다. 심신상관 의학에서 말하는 질병의 원리는 꿈의 원리와 아주 비슷했다. 무의식이 올려주는 반복된 메시지를 알아채지 못했을 때, 꿈은 악몽의 형태로 다가온다. 


“꿈 이론에서 악몽이란, ‘지금 여기에 네 본성에 어긋나는 게 있어. 뭔가를 시급하게 바꾸어야 하니 제발 깨어나서 이 상황을 좀 볼래?”라는 메시지다. 의식은 급박하게 경각심을 촉구할 때 악몽의 형태를 취한다. 따라서 악몽은 괴로움을 주려는 게 아니라 시급함을 알려주는 신호다. 꿈이 최선을 다해 현재의 위기를 알리고 상황을 개선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악몽을 ’ 무의식이 보내는 전기 자극‘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꿈이 표현하는 상황에서 ’ 깨어나게 ‘ 하기 위해 충격을 가하는 것이다.”

<나의 꿈 사용법> 고혜경 지음, 한겨레출판 


“병은 인간이 의식 속에서 더 이상 정상적이지 않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인간의 상태다. 이렇게 내면의 균형을 잃어버리는 것은 몸을 통해 증상으로 나타난다. 증상은 인간, 즉 영혼을 가진 존재인 우리가 병들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영혼 속의 세력들이 균형을 잃었다는 사실을 신호로 알려준다.

병의 목적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우리를 완전하게(치유되게) 해주는 것이다. ..증상은 우리가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 중 아직 빠져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증상의 상징적 표현을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의 모든 상징적 표현은 심신상관적이며, 이것은 이 상징적 표현이 몸과 영혼의 상관관계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음과 질병의 관계는 무엇인가> 뤼디거 달케, 토르발트 데트레프센 지음, 한언   

  

과로, 스트레스, 유전적 원인, 환경적 원인 등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암의 원인이다.

하지만 어느 것도 속 시원한 해답이 되지 못했다. 난 심신상관적으로 질병을 바라본 글을 읽고 나서야 내게 찾아온 병을 이해했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질병이었다. 내면의 근원인 영혼이 질병의 형태로, 몸을 매개로 나에게 위기 경보를 보낸 것이다. 수많은 질병 중 암은 그중에서도 레벨이 높은 경보에 속한다.      


어느 해 겨울이었어. 할아버지는 너무 늙어 병이 들고 말았지.  <할아버지와 소년>

“암세포는 지금까지 자신의 모든 활동을 자신이 속한 신체 기관, 따라서 그 생명체 전체를 위해 바쳤던 그런 세포다. 그래서 그 생명체가 가장 잘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이 세포는 자신의 신조를 바꾸고, 공동으로 가지고 있던 자기 정체성을 버린다. ..암세포는 지금까지의 고유한 장기 기능 관련 활동을 중단하고 자기 자신의 번식을 우선으로 내세운다. 이 세포는 이제 더 이상 다세포 생명체의 일원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사적으로 그 이전 단계에 놓인 단세포 생물로서의 생존 방식으로 돌아간다. ..

이때 이 세포는 모든 형태상의 경계를 무시하고(침윤 浸潤), 도처에 자기 자신의 거점을 구축한다(전이 轉移가 이루어짐). 암세포는 자신의 활동과 더불어 탈퇴했던 세포 집단을 자신의 영양 섭취를 위한 숙주로 이용한다. ..이렇게 매우 왕성한 암세포의 번식은 암세포가 자신의 배양소로 삼아버린 인간을 말 그대로 ‘다 먹어 치운’ 후에야 비로소 중단된다.”

<마음과 질병의 관계는 무엇인가> 뤼디거 달케, 토르발트 데트레프센 지음, 한언   

  

암은 왜 스스로 공생을 멈추고 독자생존을 선택했을까.    

 

문득 sf 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외계 생명체가 떠올랐다. 그것처럼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를 잘 묘사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스스로는 번식할 수 없어서 반드시 인간 숙주의 몸을 빌려야 하는 에일리언이 딱 암세포였다. 방대한 우주에서 한 인간이 에일리언을 만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혹 전체 우주의 조화가 깨진 상태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면의 위기 경보를 무시하고 괴물을 무기로 사용하겠다는 인간의 욕망을 앞세운 결과는 아니었을까. 그렇게 암세포도 몸과 마음의 조화가, 의식의 전체성이 깨져 흔들리고 불안한 상태를 견디다 못해 독립을 선포한 것이다.      


마음과 몸을 돌보지 않은 채 살아왔다는 게 몸으로 나타난 것이 질병이며, 암은 그중 제일 센 놈이다.  

    

암이 오기 전 위장병에 시달렸다. 자주 체했고 타는 듯한 속 쓰림과 간헐적으로 왼쪽 아랫배에 송곳으로 쑤시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중 아랫배 통증이 가장 힘들었다. 항경련제를 맞아야 멈추는 이 증상은 뚜렷한 원인도 없었다. 병원에 입원까지 해 검사한 대장내시경도 이상 없고, 식이요법에도 차도가 없자 의사는 항우울제를 처방해주었다.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나중에는 딱딱한 고형의 음식물을 소화시킬 수 없는 상태까지 되었다. 아무리 조금 먹어도 소화가 전혀 되지 않았고, 헛배가 불러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위장병 환자는 어떠한 갈등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갈등이 없었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한다. 그의 위는 다시 죽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감정과 공격 성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즉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기본 태도는 따라서 결국에는 위궤양과 종양을 발생시킨다. ..

설사에서 우리는 불안과 관련된 문제점들이 있다는 암시를 받는다. ..이때 우리는 많은 수분을 잃어버린다. 수분은 불안을 일으키는(편협한) 자아의 경계를 넓히고, 그렇게 해서 불안을 극복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유연성을 나타내는 상징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훨씬 앞에서 불안에는 항상 편협함과 집착이 연관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불안을 치료하는 법은 항상 놓아주고, 넓혀주고, 유연해지고, 허용해주는 것이다.” 

<마음과 질병의 관계는 무엇인가> 뤼디거 달케, 토르발트 데트레프센 지음, 한언  


      야옹이와 삽사리는 서로 마음이 상했어요. 바로 잃어버린 구슬 탓이에요.                <그날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어썸키즈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의 복통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침마다 이유 없이 배가 아팠다. 얼굴마저 노랗게 변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날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는 곳에 데리고 갔다. 이른 아침마다 그곳에 가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치료를 받았다. 마취도 없이 손바닥 아래 두툼한 곳을 날카로운 칼로 째고 하얀 비지 같은 것을 끄집어냈다. 그게 복통의 원인이라 그랬다.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터무니없다. 

왜 병원 말고, 그런 곳에 데려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배는 낫지 않고 점점 더 아팠다. 어느 날, 난 배가 아프지 않다고, 이제 다 나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곳에 계속 가는 게 배 아픈 것보다 더 무서웠다. 강산이 35년이 훌쩍 지나고 그 복통이 다시 찾아왔다. 예전보다 더 강력하고 고통스럽게 진화되어 있었다. 더는 거짓으로 위장할 수조차 없었다. 

그때는 유치원이란 것도 몰랐으니 학교는 아이가 처음으로 만나는 공식적인 사회였다. 그곳은 낯선 환경과 사람들, 규칙들, 시험이 있는 곳이다. 난 모든 것이 어렵고 불편했다. 적응하려면 남들보다 두 세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도, 기다려 주지도 않았다. 복통은 바로 그 이유였다. 

    

나는 왜 갈등을 견디지 못하는 걸까.    

  

집을 떠나 학교에 가고 사회에 나오며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여러 일을 겪으며 수많은 내적, 외적 갈등을 겪어왔다. 살면서 당연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 같은 거였다. 하지만 갈등은 언제나 마음에 불편함을 가져오고, 그걸 잘 견디지 못했다. 밖으로 괜찮은 척 하느라 마음의 에너지를 다 써 버리고, 그 빈자리에 익숙한 죄책감과 자기 비난, 수치심 같은 게 올라왔다. 


익숙한 느낌이 내 심장을 조여오기 시작했어. 두려웠어. 또다시 난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었어. 그리곤 아주 깊은 어둠 속으로  끝없이... <빗살무늬 고래>


나는 갈등을 유연하게 처리할 만한 마음의 힘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결국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았다. 필요 이상으로 힘들어진 마음에 검은 웅덩이가 생겨났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처럼 강력하게 마음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무기력해지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위장병은 퇴행의 상징과 같았다. 삶의 안전지대가 없을 때 하는 행동이 바로 퇴행이다. 보호자로부터 정당한 보살핌과 지지를 받아야 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 어떤 안전장치가 중년의 시기에 다시 요구되었다.   

어느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야. 사방이 새까만 먹물로 순식간에 물들어 왔어. 난 또, 혼자였어.   <빗살무늬 고래>


                                                                                                                                             


이전 06화 입고 나갈 옷이 없는 페르소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