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
꿈으로, 깊은 무의식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래야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깨어 있을 때 ‘해결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삶의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꿈을 선명하게 기억할 때가 있다. 꿈을 기억했다는 것은 그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증거라고 보면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꿈이 꿈꾼 이의 건강과 온전성에 이바지하기 위해 온다는 데 매번 감동한다. 꿈은 깨어 있을 때의 사건들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의식하게끔 일깨워 준다.
그 결과 이들은 실제로도 점점 더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알아차리게 된다. ..몸과 꿈이 하나이고, 둘은 같이 모든 기억을 저장하고 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기억을 하건 하지 않건 간에. ..실제로 정서적인 통증이 ‘육체화’ 되어서 (정서적인 억압과 부인을 거두어) 건강과 온전함을 회복하는 길을 잃어버리거나 잊지 않게 한다. ”
<사람이 날아다니고 물이 거꾸로 흐르는 곳> 제레미 테일러, 동연
여러 꿈 중에서도 수영하는 꿈과 물탱크 안에 잠기는 꿈이 선명했다.
불안과 관련된 수분은 처음에 무의식의 바다로 비유되는, 물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무의식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러다 몸이 모두 잠길 만큼, 몸에 수분이 필요함을 알려주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마음과 몸은 바로 연결되어 있기에 수분이 모두 빠져나간 증상이 몸에 나타난 것이다. 말랑말랑했던 대장이 바싹 굳어 경련을 일으켰고, 위장은 아예 움직임을 멈추었다. 마음에서 소화되지 않는 감정들은 출구를 찾아, 열기가 되어 위로만 솟구쳤다. 눈이 충혈되고, 얼굴이 달아오르고 건조해지며 가려웠다. 군데군데 머리카락도 빠졌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 마음은 오랜 불안과 두려움으로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성취는 남성적 성취의 장과 연결되어 있다. 경주마처럼 결승선을 향해 앞만 보고 미친 듯 달려야 했다. 목표만이 중요했다. 자연히 남성성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며 여성성 같은 건 집에 두고 나와야 했다. 자연스럽게 내 안에 성스러운 여신 자리를 남신이 차지해버렸다. 그래서 꿈에 물이 자꾸만 등장한 거였다. 물은 생명을 잉태하고 자라게 하는 우주적 어머니 여신의 상징이다.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관계를 맺으며 회복시킬 힘이 필요했다. 잃어버린 여신을 되찾으라는 의미였다.
이 모든 게 다 연결되어 있었다. 마음과 몸의 순환이 꽉 막힌 상태로. 한두 잔의 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수준이기에 머리끝까지 물에 잠겨야만 했다. 꿈은 그렇게 나를 구하기 위해 밤마다 간절히 sos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좀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철들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행복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항상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안고 서성거려야 했다. 속으로는 항상, ‘좀 즐겁고 싶어’ ‘좀 자유롭고 싶어’ 하고 중얼거렸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무엇을 해도, 직장을 다니든, 사직서를 던지든, 집에 있든, 밖에 있든, 내 몸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불안감이 따라다녔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나는 모든 게 귀찮아져 버렸고 ‘될 대로 되라지 뭐!’하고 소리쳐 버렸다.”
<숨어 있기 좋은 방> 신이현 장편소설, 도서출판 살림
하루키와 더불어 내 책장을 오래 지켜주었던 책이다.
누렇게 변색되어 얼룩진 책을 아주 오랜만에 열어보았다. 여전히 거기에 내가 살고 있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스스로 존재가 불안한 상태이기에 난 늘 어떤 것을 증명해야 했다.
자연스레 일 중독자가 되어 성과주의에 매몰되었다. 경제적인 압박까지 더해진 게 가장 최악이었다. 너무 많은 부담과 책임을 스스로 짊어진 채 하루도 편히 쉴 수 없었다. 화실을 하며 아이를 낳았고, 쉬는 날 없이 지방을 다니며 상업 조각을 하고 벽화도 그렸다. 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기분을 종종 느꼈지만, 그냥 참고 견뎠다.
그러다 그림책에서 나를 다시 만났다.
삶에 지쳐 굳어있던 내 마음을 흔들어 숨길을 틔워주었다. 기회가 찾아와 수개월 잠 못 자며 만든 첫 그림책이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세상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앞으로 죽 함께 가자던 편집자는 그 뒤로 연락이 없었다. 여러 권의 책을 낸 다른 출판사는 처음에 약속한 조건을 하나도 지켜주지 않았다. 제대로 된 인세도 받지 못하다 결국 그 출판사는 문을 닫았다.
여러가지 이유로 소중한 그림을 매절로 넘기고 참 많이 후회했다. 하지만 그 시절 그림을 판 돈으로 밥을 먹고 딸아이도 키웠으니 잘한 거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좌절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공모전에 도전했으며 출판사에 투고했다.
아직 내 안에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번번이 공모전에 낙방하고 수많은 출판사에 거절당했다. ‘죄송하지만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 맞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을 반복해서 들었다. 마치 다들 미리 입이라도 맞춘 것 같았다. 그들의 평가가 나를 재단했고, 비평이 비난이 되었으며 자존감이 곧두박질했다. 운도, 실력도 없는 작가라 자책하며 괴로워했다.
한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스스로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어 연필도 들기 전에 두려움이 밀려왔고, 부정적인 생각에 함몰되었다. 그 시간 이런저런 책들을 보며 거기서 위안을 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언젠가 나도 또 다른 나일지 모를 누군가에게 그런 위로이고 싶었다. 하지만 누가 나 같은 무명작가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관심이나 가질까. 부질없는 짓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앞으로 달려가던 마음의 에너지가 한순간에 푹 가라앉았다. 또, 견뎌야 했다. 거절과 패배의 순간들을 견디며 노를 저어 이 캄캄한 바다를 건너가야 했다. 이것만이 지금의 유일한 나의 항해술이다.
“자살 여행을 떠났던 내가 수면제를 강물에 버리고 서울로 올라갔던 것도 따지고 보면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밤새 여우재를 넘어 할아버지 댁에 다다랐을 때, 할아버지는 쇠스랑으로 밭을 일구고 계셨다. 아침 햇살을 받아 가며 밭을 일구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대했을 때의 가슴 벅차게 차오르던 감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구슬땀을 쏟으며 노동을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쇠스랑을 움켜쥐고 땅을 일구는 할아버지의 두 손에 사람이 살아가는 근원적인 힘이 실려 있음을 깨닫는 순간 나 자신이, 스스로를 비루하게 여긴 나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
나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한 시절을 다 견디고 툭 툭, 떨어지는 감들, 떨어져서 터져버린 감의 그 연한 속살이라니, 험한 세월을 견뎌낸 감들의 하나같이 연하디 연한, 태어나던 그 순간 같은 속살이라니.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울어 버리고 말았다...여전히 세상을 믿지 못하는 내 가슴속에 그래도 세상엔 많은 아름다움이 있다는 믿음을 세우고 싶었다.
나는 거친 빰에 새로운 생명의 태동을 느끼며,‘희망은 오늘을 열심히 사는 데 있다.’ 속엣말로 읊조렸다.”
<하늘에 뜬 집> 김한수 장편소설, 실천문학사
살면서 두 번 강렬하게 죽고 싶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패로 끝나고 다시 살아 돌아왔지만, 내 일부분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음을 알았다. 잿빛 강물 위, 까마득한 다리 난간에 위태로이 서 있던 그 애에게 여러 번 말했다.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다 지나간 일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난 그 애를 계속 벌주고 싶은지 모른다. 깊은 용서는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하다.
다시 집에 와 방에 틀어박혀 소설책만 보았다. 그 시절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가 소설이었다. 소설 속 인물이 친구이자 가족이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고 그중 김한수의 책을 각별히 좋아했다. 김이현의 소설에서 절망 속에 매몰된 한 존재를 보았다면, 김한수의 ‘나’는 그 절망을 통과한 후의 내 모습 같았다. 내가 꿈꾸는 ‘나’였다.
여전히 삶은 힘들지만 그래도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야 오늘을 또 살 수 있다. 병원에 있을 때 제주도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프기 전, 지역재단에 기금을 받아 독립출판한 책을 보냈던 독립서점이었다. 그림책을 너무 잘 보았다며 정식 입고를 부탁했다. 난 암환자 부부상담을 받으며 탈진할 만큼, 눈물콧물을 다 쏟고 나오던 길이었다. 이제 더는 몸이 견뎌내지 못할 테니, 고단한 무명작가로서의 삶을 이제 그만 내려놓아야 할 때인가 싶었다. 모든 게 다 허무했고 절망스러웠다.
난 휴대폰에 대고 연신 고맙다는 말만 계속했다.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아픈 나 대신 바람을 가르고 날아, 푸른 제주도 땅 어느 서점에 가 있을 나의 그림책이 한없이 대견하고 기특했다. 책에 담긴 내 마음이 누군가에게 가 닿는 순간이었다.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감정이 순식간에 고양되었다. 가장 절망스러울 때 그 건너편에 희망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그게 삶의 균형추였다.
지금 내 곁에는 나만 바라보고 있는 곰돌이가 있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자라준 딸도 있고, 나를 항상 응원해주는 남편도 있다. 초고 수준의 이 글을 기꺼이 읽고 마음을 다해 피드백해주며 용기를 준 글 벗들도 있다. 그러니 나는 이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