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여정
삶이 고단할수록 바다가 생각났다.
거기에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간절히 묻고 싶었다. 그러나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면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바다는 모든 것을 압도하며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삶의 고단함 따위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만다. 강원도 낙산사에 간 적이 있다. 처음으로 혼자 장거리 운전을 해 겨우 도착한 곳이었다. 어린 딸도 챙기느라, 가는 동안 얼마나 긴장했던지 목과 어깨가 다 뻣뻣했다. 바닷가 옆 절벽에 자리한 홍련암 가는 길목 돌계단에 ‘길에서 길을 묻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히며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 이미 나는 저 길 위에 서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더는 길을 물을 필요는 없었다.
“길은 단지 하나이며, 여러 길 중 하나일 뿐이지만 다른 길들과는 다른 고유한 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삶에 산재한 인위적인 외로움은 사라질 것이다. 길은 각자 본연의 본성 안에서 드러난다.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면 작업> 로버트 A. 존슨, 동연
하지만 좀 외로웠다.
그러나 외롭다는 생각은 외부에서 조작된 가짜 감정일지 모른다. 환경이나 상황에서 길을 찾아보려는 착각과 오해가 만든, 고유한 길을 찾지 못한 상태의 감정. 진짜 외로움의 실체는 나의 근원에서 분리되었다는 자각일 것이다. 내면에 참자기(self)를 찾아가는 그 길 위에서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 외로움이다. 절대 고독이다.
“우리의 사랑을 이끌어 내는 것은 불완전함이다. 연민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동료 의식으로 변화시킨다. 세상에 기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비판이 아닌 사랑과 자비심이다. ..누군가에 실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 자신 역시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다. 그리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면의 욕망이나 두려움을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측은지심을 갖는 것이다.”
<블리스로 가는 길> 조셉 캠벨 지음, 아니마
나에 대한 과도한 연민이 외로움이고 우울이었다.
내가 너무 불쌍하고 그래서 외롭다는 가공된 감정이 나를 잠식하는 상태. 그 연민을 바깥으로 돌려 타인에게로 향할 때, 나와 나의 사이도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타인과의 관계도 시작될지 모른다. 타인에 대한 과도한 연민도 경계해야 한다. 타인을 마냥 불쌍한 상태로 만들어 자신을 좀 더 나은 위치로 만들려는 오만함은 아닐지. 그저 서로의 불완전함에 대한 자각과 공감 정도가 적절하다.
“일찍이 기원전 8세기에 찬도갸 우빠니샤드는 그 중심 사상을 따뜨 뜨밤 아시 Tat tvam asi 즉 ‘그대가 바로 그것이다’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했다. ..‘그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우리 자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는 ‘나’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내면에서 신을 발견해야 한다.”
<블리스로 가는 길> 조셉 캠벨 지음, 아니마
‘그대가 바로 그것이다’라는 말이 참 좋았다.
이것을 캠벨은 ‘지복을 따르는 삶’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떠한 상황에도 자신의 삶과 행동에 나름의 가치를 지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 길은 참 자아, 나 자신을 찾는 여정이다. 겉으로 보이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내가 아닌 어떤 한계나 제한도 없는 상태. 내면 깊이 숨겨져 있는 보물을 찾으러 떠나는 길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항상 용기다. 이 길은 또한 분석심리학자 융이 말한 개성화(individuation)의 과정이다. 밤마다 꿈이 찾아오는 목적이며 각자 내면의 신을 만나 몸과 마음의 전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이 여정은 수많은 영웅신화의 기본 플롯(plot)이기도 하다.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 자신만이 유일한 영웅이다. 결국 영웅의 여정을 따르는 길이 나를 찾는 길이 된다. 홀로 가야 하기에 영웅은 외롭다. 그러나 언제나 그를 도와주는 조력자와 내면의 신이 있다. 그 조력자가 나에게 글과 그림이고, 주옥같은 책들, 함께 공부하는 작가들과 도반들이다.
'내 이름은 윤이에요' 라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그림책 중 하나다. 절판되어 구하는데 애를 좀 먹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절판된 게 많다. 확실히 내 취향은 대중적이지 않은 가 보다.
책에는 미국으로 이민 간 윤이가 낯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게 될 때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윤이가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쓰고 말한 장면에서 난 만세를 불렀다. 윤이가 용기를 낼 때까지, 비난하지 않고 지켜봐 준 부모와 선생님, 친구들이 고마워 눈물이 다 났다.
윤이는 다름 아닌 나의 이름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 실존적인 질문이다. 영웅의 여정도 그런 것이다. 자신의 이름이 윤이 이든, yoon 이든 상관없이 윤이는 윤이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와 소년이고, 빗살무늬 고래고 빨간 머리 아줌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