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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닝 Dec 12. 2020

Don't Be Evil. (사악해지지 말자)

내가 믿는 바른 가치와 옳은 방법대로 일을 하는 것

지난 10월 개봉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요 근래 몇 안되는 개봉 영화 중 한 줄기 빛 같았다. 작품성이나 화제성을 차치하고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유머를 더해 풀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의 호응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입소문으로 '그거 재밌대'가 통한 영화였다.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은 '삼진그룹'에 다니는 입사8년차 고졸 여직원 친구들이다. 그 중 한명이 우연히 출장에 나갔다가 회사 공장에서 폐수를 흘려보내는 장면을 보게 된다. 문제가 될 만한 사항인지라 윗선에 보고했지만 회사에서는 '별 문제 아니라'며 이내 대수롭지 않은 일로 일단락되는듯 했다. 그런데 회사가 무단 방류한 폐수로 인해 서서히 고통을 겪는 공장 주변 마을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보게 된 주인공. 친구들과 함께 회사가 감추고 있는 것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옳은 일'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늘 그렇든 결과는 해피엔딩.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중에서


1995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사원과 회사의 구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여실히 보여주듯 계급의 최말단에 선 것은 고졸 여사원들. 자본과 권력, 그 모든 것을 가진 회사를 상대로 개인은 너무나도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힘없는 세명이 회사를 상대로 싸우고, 이런저런 갈등을 버텨낸 끝에 '이긴다'라는 줄거리가 아니었다. 직장인으로서 회사원으로서, '옳은 일을 추구하는 자세'란 무엇인가에 대한 점이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보고 자신들의 고용을 내걸고 싸운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옳은 일을 추구하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스물 다섯살의 겨울, 나는 신입사원이 되었다. 여러 번 아르바이트의 경험은 있었지만, 확실히 첫 취업이 주는 위압감은 남달랐다. 신입사원이기에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지식과 경험의 부재는 물론이거니와, 가장 문제였던 것은 회사에 대한 나의 환상이었다.


직장생활 8년차를 달리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누군가 '회사의 본질은 뭐냐'라고 물어보면 두말하지 않고 '가치창출' 이라고 하겠지만 당시엔 달랐다. 회사가 가치창출만 하는 곳이 아니길 바랐다. 회사는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이고, 돈을 벌어야 직원들의(=나의) 월급을 줄 수 있는 곳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길 바랐다. 이익이 많으면 사회적으로 환원도 하고 기부도 하고 나눠주는 '좋은 일도 좀 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같은 것이 컸다. (무슨 종교단체도 아니고..)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긴 논리일 수도 있지만, 당시 내 기준에서는 좋은 일을 하는 회사라면 내가 남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레퍼런스는 있었다. 네이버의 해피빈, 현대자동차의 해피무브처럼 사회공헌 부서가 별도로 있는 큰 대기업들이었다. 


그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회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회사는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할 수 없었고, 때문에 내가 회사에 가졌던 환상은 입사 후 이내 3개월도 안 되어서 금방 사그라들었다. 기대가 있었으니 실망감도 있긴 했지만, 이내 이것이 회사의 현실이라는 걸 알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에 있었다.


반년 정도 일을 배우고 업무가 손에 좀 익고 나니 나도 주체적으로 업무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데이터 운영/분석 업무를 진행했었는데, 그 데이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row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정말 날것의 데이터. 보안 이슈도 있고, 설명의 한계도 있어서 자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데이터의 출처가 내 기준에서 조금 '으음..?' 스러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불법은 절대 아니었다. 사용자의 정보를 몰래 빼온다든가 하는 것은 아니고,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서비스의 특수성때문에 양질의 데이터들이 얻어걸리게 된 상황이었다. 단지 그 데이터들을 활용하는 것이었지만 계속 마음에 찝찝함이 남았다. 이 데이터를 사용하는 게 정말 옳은가. 떳떳한가. 자꾸 도둑처럼 훔쳐 쓰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난 이의제기도, 바꾸려는 노력도 하지 못했다.


결국 2년을 조금 넘은 시점에 이직하게 되었고, 이직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때 겪은 마음의 불편함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마음에 불편함이 남는 일을 한다면, 내 기준에서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회사는 가치창출을 하는 곳이고, 나는 회사에 고용된 사람이고, 회사가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 가치창출이라는 게 정말 옳은 방법으로 되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면 과감히 그만두는 결단을 내릴 수도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당시에는 그만두는 것이 나의 의사표현 중 하나였지만, 지금의 나라면 바꾸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해본 후에 결정을 내려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쪽의 선택이든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님엔 분명하다. 그래서 '옳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기준이 필요했다. 









Don't Be Evil. (사악해지지 말자) 한때 구글의 모토로서 유명한 말이었다. 

이 말은 "나쁜 짓을 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You can make money without doing evil)" 라는 뜻을 담아내고 있다고 한다. 비즈니스를 함에 있어서 부정적인 방법이 아닌, 사용자를 생각하는 서비스를 지향하는 데서 온 말이란다. 지금 구글의 행보가 어떻든 그와는 별개로 나는 이 말을 존중한다. 그리고 이 방향에 깊은 공감을 표하는 바다.


삼진그룹 여직원들의 해피엔딩과는 별개로 내가 맞닥뜨리게 될 현실은 늘 해피엔딩이 아닐 수 있다. 녹록치 않을 수 있다. 그래도 결코 사악해지지 말자는 기준은 포기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회사에서 내가 하는 일에, 내가 담당하는 서비스에 진심을 다해 일하자.

나의 야망이나 내 눈 앞의 돈 때문에 동료를 밟고 올라가거나, 비열한 사람이 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

당장 눈 앞의 이득과 편리를 위해 정말 중요한 유저가치를 포기하지 말자.

정치와 라인이 가득한 회사라도 내가 지향하는 '옳은 일'을 밀고 나갈 수 있는 곳이라면 버텨볼 수도 있다. 바꾸려 노력해볼 수 있다. 그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그땐 과감히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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