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기획자인가, 프로덕트 매니저인가
4개월 전 즈음 우연한 기회와 상황이 맞아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이직한 곳은 전 직장보다는 훨씬 규모는 작지만, 한창 성장하는 서비스 그리고 조직을 갖추느라 분주한 곳이었다. 성장의 흐름에 나를 맡겨보고 싶었고 프로세스가 없는 곳이더라도 버티고 적응하며 업무를 하는 나를 발견하고 싶은 도전의 측면도 있었다. 어찌됐건 그런 이유들은 차치하고 팩트만 보자면, 소위 IT대기업에서 다소 작은 회사로 이직을 한 거다.
이곳에서 나는 PM (Product Manager)이 되었다. PM, 프로덕트매니저에 대해서 찾아보면 여러 정의들이 다양하다. 소위 전통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지칭하던 서비스 기획자와 비슷하게 정의하는 곳도 있고 실리콘밸리의 여러 기업들에서 수행하는 업의 측면에서 제품 관리자로서 접근하기도 한다. 하는 일에 대한 정의는 둘째치고 한국에서의 서비스 기획자의 역할이 PM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추세라는 말들도 웅성웅성 들려온다. 그 중에 무엇이 정답이었을까?
잘 모른다는 건 내게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조차도 PM이 뭔지 잘 몰랐다. 입사 전까지만 해도 어차피 난 기획자니까, 하던 일을 쭉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로드맵도 그리고, 서비스 기획도 하고, 일정도 짜고.. 그렇게 다양한 부서의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업무를 해나가는 포지션으로 이해하고 들어왔다. 그랬으니 실은 들어와서도 하는 일은 비슷했다. 다만 동일 포지션이더라도 그 책임과 권한의 범위는 조직의 문화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PM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건 작년 말 즈음부터였다. 특별히 어떤 엄청난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었다. (이직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큰 이벤트이므로) 조직의 변화에 대해 스스로가 적응해나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과 그 범위에 대해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 고찰하는 것부터 시작된 것 같다. 이 말인 즉슨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말과 동의어이고 그 말은 곧 기준이 뭔지 모른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래서 이 일에 대한 기준이 필요했다. 브런치에 발행된 글들과, 각종 아티클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기획자 커뮤니티의 글들도 섭렵해 보았다. 탈잉과 같은 곳에서 강의도 찾아보고 여러 방면으로 신입 때처럼 이곳저곳을 뒤져본 것 같다. 그 중 가장 도움이 되었던 건 제품의 사전과도 같다는 ‘인스파이어드’책. (이건 다 읽으면 따로 독후감도 적을 생각 ㅎㅎ)
그렇게 해서 나 스스로가 찾아낸 대답은, 아래와 같다.
1. 서비스 기획자와 프로덕트 매니저는 다르다. 굳이 업무로만 따지자면 그 둘의 교집합이 있을 수 있고, 유사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로서 그 둘은 다르다.
2. 기획자는 하나의 서비스 (제품) 을 기획하고, 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기도 하지만 (+조직에 따라 일정관리나 운영, 큐에이에도 참여) 프로젝트의 단위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데에 특화, 집중된 포지션이라고 생각한다.
3. 하지만 프로덕트 매니저는 프로덕트에 한해서는 미니 CEO여야 한다. 권한과 책임 측면에서.
4. 이들의 업무 동기나 의사결정은 프로덕트의 비전을 바라보아야 한다. 단순히 제품의 기능 구현이나 출시에서 더 나아가 시장과 비즈니스까지 아울러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관점에서 프로덕트의 로드맵도 그릴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5. 프로덕트를 만들고자 함께하는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인성도 필요하다.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해 함께 하는 사람들 -디자이너,개발,데이터,QA,마케팅,사업-은 전문가 집단이다. 전문가 집단에서 군림하는 강력한 리더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이들의 전문성을 인정하되 큰 그림을 보며 걸어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프로젝트와 기능 단위의 제품을 보며 일해왔던 방식이 너무 공고했기에, 관점을 틀어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업을 바라보는 프레임 자체를 뒤흔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하지만 일단 PM이, 프로덕트 매니저가 어떤 일을 해야하는거에 대한 정의를 내린 것만으로도 나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
스스로 내린 정의이기에 틀릴 수 있고, 언제든 바뀔 수 있음도 인정하며, 계속 공부하고 쌓다보면 더 좋은 길로 갈 수 있지 않을까 다짐해 본다.
더 좋은- 훌륭한- 용기있는- PM으로 성장해나가는 나를 기대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