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별이 그리 정했다 』
8월의 태양은 인간이 버텨낼 수 있는 수준의 열기가 아니다. 윤새는 도화지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덩그러니 찍힌 붉은 태양을 쳐다보았다. 밑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조차 모르고 얍삽하게 떠 있기만 한 것이 이제는 그만 끌어내려도 될 것 같았다. 그는 따가운 햇빛을 피해 잠시 나무그늘 밑으로 들어갔다. 보따리를 주섬주섬 풀어 안에 담긴 물통을 따 허겁지겁 입을 가져다 대었으나 버석한 입술을 반겨 주는 건 뜨뜻해진 8월의 물이었다. 몇 모금 못 마시고 나무에 기대어 한숨을 길게 쉬고 있으니 진운이 인력거를 탈탈거리며 끌고 다가왔다.
“힘들지는 않아요? 사진관 앞까지는 제가 끌고 갈게요.”
“됐습니다, 사람 안 탔으니 무겁지도 않고.”
호쾌한 말을 믿어 주기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 코가 신경 쓰였으나 윤새는 내버려 두기로 했다. 4년 전 처음 예광 사진관에 들어온 이후로 진운은 한 번 하기로 한 일은 무조건 본인이 하고야 만다는 요상한 고집을 가지고 있었다. 윤새는 그런 진운 때문에 초반에는 꽤나 애를 먹었었다. 사진관의 조수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촬영에 재사용할 수 있도록 유리원판에 바른 감광제를 잘 벗겨내는 것이다. 유리만 잘 보존한다면 몇 번이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 정교한 작업에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건 당연했다.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은 높으신 분들을 빼면 자신의 한 달치 봉급을 들고 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아주 멀리서 온 사람도 많았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귀한 손님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면 아까워 죽겠다고 혀를 차면서도 가차없이 유리판을 내버려야 하는 것은 당연했다.
가뜩이나 겨우 이윤을 남기는 사진관인데 유리판이 망가질 때마다 갈아치웠다가는 백이면 백의 확률로 파산이었다. 그래서 윤새는 간간히 튀겨오는 침을 견디며 사장의 옆에 서서 감광제를 잘 녹이는 고급 기술과 유리판을 긁지 않고 옮기는 단순 기술을 배웠다. 결코 주인 의식이나 관주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은 아니었다. 윤새에게는 예광 사진관이 잘 되는 것이 여러모로 득이었다. 견디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그의 사진관을 차릴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아주 오래된 성천과의 약속이었다. 조선에서 제일 큰 사진관을 차려 무엇이든 찍겠다는 약속. 이제는 시간이 꽤나 흘러 다짐이 되었지만.
진운은 윤새의 다짐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 번 배워서는 제대로 알 리가 없는 사진술을 어깨 너머로 스윽 보고는 다 배웠으니 도울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한 데서 고집이 셌다. 분명히 헤매고 있는데도 윤새가 옆에 다가가 입이라도 벙긋 하면 처음으로 땅에 닿은 생선처럼 펄떡 튀어올랐다. 함께 일한 지 두 해가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사고를 치는 미래가 아른거려 윤새가 급히 다가가면 “이 정도는 저도 합니다”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사고를 쳤다. 머리가 좋은 건지 다행히 보는 것만으로도 습득이 빨라 파산은 면했지만 윤새는 5년째 되는 지금도 가끔 진운이 불안해 보였다. 차분해 보이면서도 묘하게 조급한 눈빛이라든가 긴 시간 동안 속이야기는커녕 말도 놓지 않는다든가. 그런 애매한 것들이 신경 쓰였다. 그의 눈빛을 진운도 느꼈는지 인력거 손잡이를 꾹 쥔 채 윤새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윤새는 나무에 기대었던 몸을 튕기듯 일으켰다.
“자아, 갑시다. 사장님도 참, 이런 여름에는 제 발로 걸어가시면 좀 좋을까.”
“손님을 맞이할 때도 격식을 차려야 하신다잖아요.”
둘은 햇빛이 내리쬐는 경성의 거리를 걸었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길에는 사람이 평소보다 적었다. 걷기에는 버겁지만 채광이 좌지우지하는 사진을 촬영하기에는 딱인 날이다. 윤새는 오늘 촬영을 할 손님은 제법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하며 진운을 앞서 걸었다. 땅만 바라보고 걸어도 눈이 부셔 결국 눈을 감았다. 수없이 걸었던 길을 눈을 가리면 어디까지 걸을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다섯 걸음도 채 떼기 전에 그는 우뚝 멈추어 섰다. 따라오던 진운도 덩달아 멈춰서 미동 없는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세차게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새카만 눈동자에 일순간 푸른빛이 감돌았다.
“돌 조심.”
진운이 당황해서 발밑을 살폈다. 반 걸음 정도 떨어진 위치에 걸려 넘어지기 딱 좋아 보이는 돌이 박혀 있었다. 윤새가 멈추지 않았더라면 진운은 보기 좋게 흙바닥에 나뒹굴었을 것이다. 더 운이 안 좋았다면 인력거도 주인 따라 나뒹굴어 바퀴가 잘못되었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있으면 눈치 채기 힘들 정도로 교묘하게 솟아 있는 돌부리였다. 진운이 발끝으로 돌부리를 툭 치고 다시 앞장서 걸어가는 윤새의 뒤를 따라갔다.
“푸른색?”
“혼자서 뭘 그리 중얼거려요?”
윤새는 어느새 멀찍이 떨어져서 고개를 꺾으며 진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왼쪽만 구겨진 눈썹은 더워 죽겠는데 이렇게까지 질질 끌 일이냐는 의미의 시선이었다. 윤새가 팔을 뻗어 사진관 쪽을 가리켰다.
“사장님 나와 계시네요. 그리 기뻐 보이시지 않으니 얼른 갑시다.”
사장은 사진관 앞을 서성이며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더 시원한 그늘을 찾아 대문 밑을 이리저리 서성이다 진운과 눈이 마주치더니 무어라 말하려 입을 크게 벌렸다 다시 다물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이 축 늘어진 모양새로 어서 오라며 손짓했다. 윤새는 진운을 힐끔 보더니 사장에게 냉큼 달려가 인사했다.
“무어가 이리 늦어. 누구 실어다 주고 돈이라도 벌어왔냐?”
사장이 입을 열자마자 윤새는 기다렸다는 듯 보따리에서 물통을 빼서 내밀었다. 사장은 물병 주둥이에 입을 대자마자 흘러나오는 8월의 물에 인상을 구겼으나 조금은 누그러진 듯했다. 그는 입가를 엄지로 문질러 닦으며 인력거에 올라탔다.
“오늘은 아주 큰 손님이 온단 말이야. 제대로 격식을 차려야 해.”
“누구인지 안 알려 주셨잖아요. 얼마나 귀한 분인지 듣고 좀 긴장을 해야 우리도 격식을 차리지요.”
사장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윤새는 머리에 날아드는 딱밤을 능숙하게 피했다. 사장은 다소 속물적이기는 했으나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사진술을 배우겠다고 무작정 들어온 열일곱의 윤새를 한겨울이라는 이유로 쫓아내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살려달라고 찾아온 아이를 콧물도 얼 정도로 추운 바깥에 내보내는 것은 짐승조차 할 짓이 아니었지만. 충동적인 자선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다섯 해 뒤 겨울날, 윤새가 대문 앞에 쓰러져 있는 진운을 끌고 들어왔을 때도 그는 혀를 차며 이불을 내어 줬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달려들고 보는 사람이 어떻게 그랬던 걸까. 그렇다. 예광 사진관의 사장이야말로 인간군상이 입체적이라는 증거였다.
“김용수라는 갑부가 촬영하러 온다. 옛날에 중추원에서 찬의로 일하던 사람이라고 하던데. 찬의 정도면 아주 높은 거겠지?”
“‘의’ 자가 들어가면 보통 높던데요.”
윤새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는 인력거 옆을 걸으며 지나치는 노점에서 파는 빙수를 눈여겨보았다. 새로운 맛이 나온 것 같았다.
“잠깐, 멈춰 봐. 저 사람인 것 같다.”
사장이 몸을 일으키더니 사람이 유독 없는 쪽을 가리켰다. 시원한 그늘인데도 행인들이 피하는 그곳에는 인력거 한 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인력거 안에는 양복을 입고 턱을 괸 채 사장 일행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남자가 타고 있었다. 윤새는 갑자기 말이 사라진 사장을 뒤로 하고 인력거에 다가갔다.
“오늘 촬영하는 분 맞습니까? 사진관에서 나왔습니다.”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뜨고 윤새를 보았다. 폄훼하고 가늠하는 눈빛이었다. 윤새는 피하는 대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받아쳤다. 귀한 손님과 조수 사이의 묘한 정적이 신경 쓰였는지 눈치 빠른 사장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이고, 날도 더운데 지금 바로 모시겠습니다. 듣던 대로 풍채가 좋으십니다.”
김용수가 높은 건지 뭔지도 모르는 사장이 그의 풍채를 들어 보았을 리 있나. 윤새는 사장의 철판에 새삼 감탄하며 다시 출발하는 두 인력거의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예광 사진관이라는 팻말이 달린 대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 오셨습니다. 여기가 우리 예광 사진관입니다.”
“생각보다는 작구만. 이리 더운데 사진 촬영이 되나?”
“걱정이걸랑 마십시오. 사진이란 놈이 말이죠, 햇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잘 나온답니다.”
사장이 뭐라도 빨리 해 보라는 듯 윤새를 쳐다보았다. 윤새는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사진관 안으로 뛰어들어가 얼음에 담가 두었던 물병 두 개를 꺼내왔다. 김용수는 인력거에 앉아 진운의 부채질을 받고 있었다. 사장은 윤새가 쥐고 있는 물병을 보더니 뛰어와서 낚아채듯 하나를 가져가더니 김용수에게 건넸다. 그는 감사하다는 말은 없이 벌컥벌컥 마시더니 시원하다고 말했다.
윤새와 진운은 나란히 서서 잠시 대화를 나누겠다며 들어가는 사장과 김용수의 뒷모습을 보았다. 진운은 옷섬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윤새가 차가운 물병을 내밀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대지 않은 채 물을 절반쯤 마시더니 돌려주었다.
“갑부면 얼마나 돈이 많은 걸까요?”
윤새는 진운의 답은 기다리지 않고 할 말을 이어나갔다.
“조선 사람은 절약하지 않아서 돈이 없다던데. 저 사람은 그다지 절약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어디에서 가져왔겠죠. 돈이 원래 그런 거니까.”
“가져왔다.......”
윤새는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운은 더 말을 얹지 않았다. 둘 사이에는 퍼덕거리는 부채질 소리만이 남았다.
“시작하자!”
사장이 박수를 짝짝 치며 마당으로 걸어나왔다. 얼굴이 핀 것을 보니 초장부터 높은 값을 부르고 거기에다 값을 더 불였는데도 거절당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뒤로 뒷짐을 지고 느릿하게 걸어나오고 있는 김용수는 사진관을 구석구석 살피고 있었다.
“햇빛 많을 때 어서 촬영해야 한다. 우리 사진관이 경관이 꽤 좋습니다. 여기, 이 기와 문양이 아주 고급집니다. 등지고 배경으로 촬영하시면 기품이 흘러넘칠 겁니다.”
윤새는 옷매무새를 다듬고 모자를 벗었다 다시 쓰는 김용수를 보며 애쓴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하루에 백 번 찍을 수 있다면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평소와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까.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어 큰 차이도 없는 모자의 유무에 대해 고민하는 걸까.
진운이 사진관에서 사진기를 들쳐업고 나왔다. 새카만 상자를 등에 딱 붙이고 어기적거리며 걸어오는 게 꼭 거북이 등딱지 같아 윤새는 조금 웃었다. 그가 발을 땅바닥 이곳저곳에 대어 보며 장비를 세울 만한 곳을 찾는 동안 윤새는 검은 천을 높이 들어올린 뒤 암실에 빛이 단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도록 잘 덮었다. 사장이 김용수의 자세를 잡아 주는 동안 사진을 찍는 암실은 오로지 윤새의 것이었다. 윤새는 암실 속에 고개만 넣고 서랍에 담긴 약물들과 잘 정리되어 있는 유리판을 관찰했다. 이 사진관에 잘만 붙어 있으면 언젠가 윤새도 이 안에서 직접 사진을 찍고 인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있는 윤새의 뒷덜미를 누군가 뒤로 잡아끌었다. 윤새와 눈이 마주친 사장은 어서 뒤로 빠지라는 의미로 손가락 하나를 까딱였다.
암실 바깥으로 나와 보니 햇빛이 아까보다 훨씬 따가웠다. 김용수는 턱을 살짝 쳐들고 짝다리를 짚은 채 시선은 오른쪽 위로 두는 전형적인 자세를 고른 모양이었다. 가장 실패가 없어 그리 준수하지 않은 손님들에게 사장이 무조건으로 추천하는 자세였다. 김용수는 그 사실을 절대 모르겠지만. 암실에서 사장의 팔 한 개가 나오더니 선휘에게 또 손짓했다. 윤새는 그늘에 앉아서 먼산을 보고 있는 진운을 흘깃 본 뒤 별수없이 빳빳하게 서 있는 김용수에게 향했다. 코앞까지 다가가고 나서야 김용수의 눈동자가 데룩 구르더니 윤새를 향했다.
“사장님께서 촬영 시작한다고 말씀하시면 5분 동안 그대로 계셔야 합니다. 날이 덥지만 햇빛이 밝으니 좋은 사진이 나올 겁니다.”
“그렇게나 오래 서 있어야 한다고?”
“사진값 하셔야지요.”
윤새는 자기도 모르게 툭 뱉고 아차 싶어 위를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심기가 거슬린 눈빛이 그를 향해 내리꽂히고 있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사진 대금이 한 달치 봉급이거든요.”
윤새가 재빨리 덧붙였다.
“그래? 절약하면 금방 한 장 찍겠구나.”
“자아, 촬영 시작합니다.”
윤새는 냉큼 그늘로 달려가 벽에 기대었다. 진운은 그새를 못 참고 안으로 들어갔는지 온데간데없었다. 온전한 혼자의 시간이었다. 윤새는 모든 게 참 가볍고 빠르게도 지나간다고 생각했다. 김용수가 길다고 생각했던 그 5분은 윤새에게는 찰나에 불가할 것이고, 어떤 생명체에게는 평생일 것이다. 윤새는 지금 스물여섯이다. 스물여섯이면 절반 정도 온 것인가? 인생이 긴지 짧은지 알 수 없었다. 태평하고 불안한 여름날이다.
그래서 윤새는 사진이 좋았다. 흘러가는 삶이 답답할 때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흐른다는 게 거짓말 같았다. 사진 속에 담긴 사람들과 풍경이 십 년도 안 되어서 전부 변하리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사진은 독한 약과 같았다. 순간에 취해 원하지 않는 변화를 잠시나마 잊어버리게 해 주는 탁월한 효능이 있는, 너무 비싸서 남한테밖에 지어 줄 수 없는 약. 그래도 그런 사진이 윤새는 좋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윤새야, 얼른 냉수 가져다 드려라.”
윤새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사진관 안으로 뛰어갔다. 뒤에서 미리미리 꺼내 놓지 그랬냐고 타박하는 사장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윤새는 얼마 남지 않은 냉수 물병과 손수건을 가지고 나오며 안을 휘 둘러보았다. 진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서 가져다 드려. 굼뱅이도 아니고 왜 그리 느리냐.”
윤새는 사장의 말을 무시하고 혹시 진운이 나왔나 싶어 마당을 훑으며 김용수에게 물병을 내밀었다.
“인화는 아주 오래 걸립니다. 댁에 들어가 쉬고 계시면 내일 중으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김용수는 꿀떡꿀떡 물을 마시고 병을 비우더니 못마땅한 얼굴로 끄응 소리를 내었다. 윤새는 그가 말을 덧붙이기 전에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는 헛기침하며 목덜미와 이마를 닦았다. 사장은 이동식 암실 안에 들어가 인화를 하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달각거리는 소리와 용액 따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 손님 가십니다.”
“아이고, 사진이 햇빛을 보면 안 되는데.”
사장의 목소리가 암실 안에서 웅웅거리며 울렸다.
“사진은 아주 잘 나오고 있습니다. 내일 댁에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늦으면 안 되네.”
“예,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윤새는 인력거를 타고 떠나가는 김용수의 등에 대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점이 되어 사라질 정도로 김용수가 멀어질 즈음에야 사장은 암실에서 나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욕을 중얼거렸다.
“윤새야, 네가 잠시 보고 있어라. 들어가 그늘에서 잠시 쉬어야겠다.”
“네, 사장님. 그런데 어떻게 나오시려고 그래요? 안에 햇빛 들어가면 안 되잖아요.”
“뚜껑 잘 덮어 뒀다. 너도 들어갈 때 조심하고.”
“어디까지 볼까요?”
“중요한 손님이니까 세척까지만 확인하고 불러라. 건조는 내가 시킬게, 알았지? 아이고, 허리야. 값 높게 부르길 잘했네.......”
윤새는 암실 안에 들어가 약품 속에 얌전히 잠겨 있는 유리판을 들여다 보았다. 순조로워 보였다. 이 유리판이 건조되면 이제 필름의 역할을 하여 김용수의 사진을 종이에 인화할 수 있을 것이다. 꺼내어 확인해 보고 싶었으나 혹여나 유리가 잘못될까 손도 대지 못했다. 대신 서랍장 안에 잘 정리되어 있는 약품들에 붙은 라벨을 만지작거렸다. 찍으면 그만인 줄 알았던 사진이 이렇게나 많은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은 사진관에서 일하는 사람들밖에 모를 것이다. 언젠가 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도록 도울 것이다. 그때 암실 바깥에서 진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이 잠시 오랍니다.”
“사장님이요?”
“긴히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윤새는 천천히 유리판 위에 덮개를 올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는 불안감이 치고 올라오는 걸 조심해야 한다. 빠르게 불안해지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속절없어진다.
“저한테는 세척 전까지 확인하라고 하셨는데요. 암실 계속 열면 사진도 잘 안 나옵니다. 이거 중요한 사진인데.”
윤새는 조금 기다리다 진운의 대답이 없자 덧붙였다.
“바로 오라고 하신 게 맞나요?”
이번에도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답답해진 윤새가 나중에 가겠다고 말하려던 순간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진운의 숨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려 줄게요. 암막 천 가지고 왔습니다.”
평소에도 성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생소한 진운의 모습에 윤새는 겹으로 당황스러웠다. 늘 데면데면한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나는 것 또한 어색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다.
“사진관 운영 관한 이야기라고 하셨어요. 윤새 씨에게는 중요한 사안 아닙니까.”
“지금 나갈게요. 제대로 가렸죠?”
윤새는 천천히 암실에서 나왔다. 한여름 낮인데도 밤 같았다. 진운이 까만 암막 천을 넓게 펼쳐 막고 서 있었다. 윤새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곧바로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윤새는 고맙다는 말과 다녀오겠다는 말 중 하나를 고르려 했으나 말할 시점을 놓쳤다. 진운은 윤새가 암실에서 나오자마자 암실에 빛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천으로 가리며 암실에 들어갔다. 윤새는 바깥에 서서 검은 천이 꾸물거리다 평평하게 펴지는 것을 보았다. 그래도 9년을 보내며 서로 아주 몰랐던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윤새는 사진관 안에 들어가 어딘가에 늘어져 있을 사장을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장은 그의 예상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얼음을 씹어먹고 있었다. 바람이 잘 들어와 사진관 1층에서 가장 시원한 명당 자리였다. 윤새는 눈을 감고 있는 사장 옆에 쭈그려 앉아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사장님, 저 부르셨다면서 이렇게 주무시면 어떡해요. 왜요, 우리 사진관 망해요? 누가 외상 붙여 놓고 대금이라도 떼어갔어요?”
사장은 한쪽 눈만 뜨고 윤새를 쳐다보았다.
“예끼, 덥다고 이렇게 바로 오면 어째.”
“예? 사장님이 긴히 할 말이 있으시다면서요.”
“금시초문이다, 이 녀석아. 어서 가서 다시 일해라. 어디서 잔머리를 굴리고 있어.”
윤새는 벙찐 표정으로 사진관에서 나왔다. 화가 난다기보다는 바보 된 기분이었다. 방금까지 아주 낯간지러운 생각들을 하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일에 동요할 필요는 없었다. 진운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면 빠르게 해결될 일이었다. 윤새는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윤새가 본 장면들은 단언컨대 그가 없는 상상력까지 박박 긁어모아도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진운이 검은 상자를 품에 안고 암실을 나올 것이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볼 수는 없으나 윤새는 9년 동안 이 사진관에서 일했으니 그 안에 들어 있을 만한 건 급히 건조시킨 유리판 필름뿐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다. 진운은 평온히 윤새와 눈을 마주칠 것이다. 그가 그 순간 마주하는 윤새의 눈은 푸를 것이다.
윤새는 급히 암실로 달려갔다. 진운은 아직 암실 안이다.
진운이 검은 상자를 품에 안고 암실에서 나왔다. 느릿하게 걸어나오는 모습은 도둑질보다는 심부름을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왼쪽 팔에 상자를 끼고 평온히 윤새와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말했다.
“푸른색이 맞네요.”
윤새는 일절 망설임 없이 진운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달리는 데 능한 발은 빠르게 흙바닥 위를 달렸다. 진운 또한 기다렸다는 듯 자세를 잡았으나 윤새의 목적지는 그가 아니었다. 윤새는 대문 앞을 막아섰다. 상자 안의 유리판이 목적이라면 무모하게 담을 넘지는 못할 것이다. 둘은 잠시 정적 속에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리고 진운이 윤새를 향해 돌진했다. 그는 달려오며 이동식 암막실을 발로 걷어찼다. 암막실이 넘어는 소리와 약품이 깨지는 소리가 사진관에 울려퍼졌다. 진운은 그 난리를 피워 놓고도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윤새는 진운과 충돌할 찰나에 옆으로 몸을 피해 나동그라졌다. 부딪혀서라도 잡고 싶었으나 진운이 들고 있는 사진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사진관은 제대로 끝장이었다. 진운은 쾅 소리가 나도록 대문을 열어젖히고 광장 쪽으로 달렸다. 윤새는 이를 악물고 그의 뒤통수에 시선을 꽂은 채 전속력으로 달렸다. 광장으로 들어가 인파에 섞여도 문제없었다. 윤새는 달리는 일에 아주 능했다. 옷자락만 보여도 끝까지 쫓을 수 있었다. 윤새는 진운을 따라 빠르게 모퉁이를 돌았다.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주변에 난데없이 흰 연기가 덮였다. 윤새는 연기인가 싶어 콜록거렸지만 목구멍이 막힌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공기가 젖어 있는 느낌이었다. 가던 방향으로 달려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빠르게 연기 바깥으로 달려나와 시야가 말끔해졌을 때 진운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옷자락은커녕 머리카락 한 올조차 보이지 않았다. 지금 쫓아가는 건 의미가 없었다. 10초 뒤의 미래에 진운은 없었다.
윤새는 땀에 폭삭 젖은 채 사진관 대문을 열었다. 깨진 약물 병들 사이에서 그나마 멀쩡한 병을 골라내고 있는 사장의 모습이 보였다. 윤새는 말없이 그를 지나쳐 사진관에 들어가 빗자루와 부직포를 꺼내왔다. 옆에서 아무 말도 없이 깨진 유리조각들을 부직포 위에 쓸어담고 있으니 사장이 답답했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돌아오면 둘 다 자르려고 했는데 한 놈만 돌아왔네.”
“죄송합니다, 사장님.”
“어떻게 된 건지나 설명해.”
“김진운 씨가 오늘 낮에 찍은 유리건판을 훔쳐갔습니다. 사진기랑 암실 걷어찬 것도 그 사람이고요. 저는 유리판이라도 받아내려고 쫓아 나가다가 이렇게 된 겁니다.”
“윤새야.”
“저는 봐주세요, 사장님. 저는 아무 잘못 없는 거 아시잖아요.”
“아까 긴히 할 말 있지 않았냐고 물었지. 내가 입이 안 떨어져서 말을 못 꺼냈다.”
“사장님.”
“너 처음 왔을 때 겨울이었지. 어려서 쫓아낼 수도 없고, 일이라도 시켜 볼까 했는데 쓸 만했다. 어린 놈이 빠릿하고, 일머리도 좋고.”
사장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빳빳하고 누런 봉투를 꺼냈다. 윤새는 눈앞으로 들이밀어진 봉투를 받아들었다. 사장이 윤새가 들고 있는 부직포를 가져갔다. 까끌한 표면 위에 유리조각이 쓸려 사각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윤새는 염치도 없이 뒤돌아 봉투 안에 든 돈의 액수를 세었다. 5원권 지폐가 무려 네 장. 이러면 따질 수도 없다.
“사진 대금 많이 떼인 것도 맞다, 이놈아. 눈치도 빠른 거 보면 걱정은 없다.”
윤새는 대답 없이 빗자루로 나머지 유리조각들을 쓸어담았다. 사장도 계속해서 할 말을 이어나갔다.
“꼭 이 일 때문만은 아냐. 네가 저기 때문 앞에 쓰러져 있었을 때 열아홉이었지, 아마?”
“열일곱이요.”
“예끼, 그게 중요하냐. 네가 지금 스물여섯이다, 이놈아. 앞가림 하고도 남을 나이다. 그 돈 받고 썩 나가.”
“여기가 제 앞가림이었어요. 저는 사진관이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언젠가 저도.......”
“못 하는 말이 없다, 이놈. 내가 해도 망하는 판국에 네가 어떻게 해? 서로 앞길 찾자는 거야. 애초에 나 하나 먹여 살리기에도 간당간당한 사진관이었어.”
“그렇게 간당간당해서 저 다음에도 한 명을 더 들이셔서 뒤통수 맞으셨어요?”
“뭐야?”
사장은 윤새가 쥐고 있는 봉투를 툭 쳤다.
“돈이 부족하다 이거냐?”
“차라리 부족했으면 했지요. 이 돈 가지고는 뱃가죽 갈비뼈에 붙는다고 울며불며 빌려고 했지요.”
“봐라, 너는 그렇게 독한 게 앞가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장님 마음이야 편하겠네요.”
사장은 말문이 막힌 건지 포기한 건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윤새는 그 낯선 모습조차 달갑지 않아 봉투를 만지작거리며 뒤돌아섰다. 이기겠다고 시작한 말싸움이 아니었다. 이런 분위기일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시원하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나갈걸 그랬다. 손에 쥔 봉투는 얇았으나 든 액수는 두둑했으니까. 윤새는 너무 흘려 말해서 형체조차 남지 않은 ‘감사했습니다’라는 문장을 중얼거리고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윤새는 대문까지 걸어가는 동안 무심하게 청명한 하늘을 보았다. 오후 다섯 시가 되어도 대낮처럼 밝은 여름날의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맑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심술을 부려 대문 앞에서 멈추고 문턱을 지그시 밟았다. 처음 사진관에 들어왔을 때 문턱이 있는 집에 살아 본 적이 없었던 윤새는 실수로 문턱을 밟거나 걸려 나동그라지는 일이 파다했다. 그럴 때마다 사장은 그에게 복 나갈 일 있냐며 타박을 하고는 했다. 그러나 지금 사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새가 사진관 바깥을 나와 아까 진운을 놓쳤던 모퉁이를 돌 때까지도. 한숨조차 쉬지 않았다.
이렇게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날 수가 있나. 이제 윤새는 화조차 나지 않았다. 참 쉽게들 왔다가 어렵게 마음 주고 나면 쉽게들 간다. 햇빛은 한순간에 직장도 연도 끊긴 그를 놀리듯 밝기만 했다. 얇은 봉투를 들어 태양을 가리니 안에 든 5원권이 비쳐 보였다. 윤새는 봉투에 투박하게 적힌 성윤새 석 자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윤새에게는 아버지라 부를 만한 이가 따로 없었다. 흐릿한 기억 속 저를 어딘가 차가운 곳에 앉혀 두고 떠나가던 그 뒷모습을 어찌 아버지라 부르겠는가. 조금만 노력하면 옆모습이 기억 날 듯도 했으나 윤새는 구름 속에 기억을 영영 가두기로 했다.
그러니 그의 이름 앞 성씨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었다. 성천이라는 여자가 주었다. 그는 윤새의 손을 잡고 한자를 천천히 한 획씩 그어 주며 느낌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보통의 성씨들이 사용하는 이룰 성 자가 아니라 별 성 자였다. 별이라는 뜻의 성씨는 이 세상에 성천 한 명만 가지고 있다가, 성천과 성윤새 두 명만 가지고 있다가, 14년 전 결국 성윤새 한 명만 가지게 되었다. 윤새는 자신이 늘 홀로 남겨진 꼴이 되는 것이 혼자 동떨어진 성씨 때문이 아닐까 가끔 고민했다. 그러나 성천을 만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되리라 알고 있었다. 윤새는 10초 뒤 자신의 세상을 볼 수 있었으니까.
다행히 해는 서서히 지고 있었지만 아무리 밤이라도 이 무더위에 종일 밖을 돌아다녔다가는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윤새는 잠시 쭈그리고 앉아 미래를 보았다. 머리가 어지러워질 때까지 내다보았으나 10초 뒤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지기만 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암담했다. 그러나 일어나서 걸어야 한다. 그래야 10초 뒤의 미래에 갈피가 잡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