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독립운동물 || 장편소설『 별이 그리 정했다 』
사흘은 하릴없이 흘러갔다. 작전 직전에는 괜히 힘을 빼는 것보다는 자연스럽게 주변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경식의 말에 따라 안경원은 평소처럼 장사를 했다. 정작 경식은 작전에 참여하는 조직이 절대적으로 적어 정보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아침 일찍 안경원을 나서 달이 중천에 뜰 때쯤에 피곤한 얼굴로 들어오고는 했다. 영원은 저번 작전 때 미약하게 다친 다리를 회복하기 위해 종일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날 그 난리통 속에서도 아픈 기색 한 번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아 무엇이든 잘 참는 쪽에 속하리라 윤새는 말 한 마디 섞지 못해 짐작만 했다.
그에게 처음으로 아침상을 내어주는 날에는 사과로 대화를 터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날 쳐서 미안했습니다’로 시작하는 대화는 순조롭게 흘러갈 리가 없을 뿐더러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늘 무엇에 대해 사과할지가 명확하지 않아 결국 빈 껍데기뿐인 사과는 담아두기로 결정했다. 대신 마음 한 구석에 남은 불편함은 작은 그릇 위에 자신의 몫이었던 약과를 올려주는 것으로 지우기로 했다.
그리고 윤새는 영원이 자신이 그려온 모습과는 딴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두 손으로는 상을 들고 있어 발로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오는 윤새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올려다보는 눈빛 속에는 의심이나 질색 같은 불편한 감정이 아니라 순수한 놀라움 뿐이었다. 천천히 깜박이는 눈과 시선을 맞추며 윤새는 천천히 상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명원이랑은 눈이 닮았네요.”
그 말에 영원이 눈을 다시 감았다 떴다. 뜨거운 물을 부어 놓은 누룽지에서 구수하고 눅눅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윤새는 손에 쥐고 있던 수저를 정갈하게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영원은 감사하다는 말을 달싹이며 누룽지를 떠먹었다. 그는 성분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알아내려는 사람처럼 꼼꼼하게 음식을 씹었다. 이따금씩 김치도 올려먹어 아삭거리는 소리가 이따금씩 방을 채우기도 했다.
윤새는 영원을 마주보고 앉아 그가 느리지만 완벽하게 그릇을 비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영원은 마지막으로 그릇을 들어 남은 국물을 한번에 마시더니 헛기침을 했다.
“제가 명치를 쳤던 것 같은데.”
갑작스럽게 상기된 기억에 윤새의 괜찮던 명치가 욱신거렸다. 민망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영원의 눈썹이 미세하게 팔자로 구부러졌다.
“아프라고 친 건 아니에요. 미안했어요.”
“아니에요,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안 될 상황이었으니까. 현명했어요.”
영원은 국물도 남지 않은 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는 약과 두 개가 놓인 그릇을 한 번, 그 앞에 앉은 윤새를 한 번 쳐다보더니 옅게 웃었다.
“미래를 본다는 말이 정말이에요?”
“들리는 것처럼 그리 대단한 능력은 아니에요. 10초 뒤 미래를 볼 수 있어요.”
“10초면 운명이 좌우되는 시간이죠.”
영원은 그 말을 하며 약과 하나를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입 안이 차서 조금 뭉개진 발음으로 말했다.
“이름이 좋아요, 성윤새. 흔하지 않은 성씨잖아요. 본관은 창녕인 건가요?”
“아뇨, 본관이 따로 없어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성이에요.”
“어머니에게서?”
영원이 남은 약과 하나를 집다 말고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제 어머니는 성씨가 없으셨거든요. 별을 따서 지은 성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성씨는 별에서 줍고 저는 산에서 주우셨지요.”
“어머니에게서…….”
영원이 약과를 그릇 위에 툭 떨구며 중얼거렸다. 끝이 흐려지는 목소리가 꼭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우리 눈은 어머니를 닮았어요.”
영원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윤새는 다시 영원의 눈동자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짙고 검은 눈동자.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먹을 가져다 여러번 덧칠한 것 같은 색. 처음 만났던 순간에는 올곧게 나아갈 지점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조한 눈동자.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짙고 검은 것은 여전하지만 시선 끝에 있는 것은 과거의 어딘가. 윤새는 무슨 말이라도 꺼내보려 작게 입을 열었다 다시 다물었다. 그 미세한 소리라도 들은 것인지 가물거리던 영원의 시선이 다시 윤새에게 돌아왔다. 잠시 윤새와 눈을 맞춘 영원은 약과를 다시 집더니 윤새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옅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