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파트의 죽음
나보다 빨리 태어난 주공아파트는
비가 오면 꼭 귀신이 나올 것만 같다
놀이터는 이미 주차장 신세
동네 목욕탕도, 상가도, 보도블록도, 담장도
조금씩 부서져 아픈데도
병원을 가지 않고 꾹 참고 버티고만 있다
우람한 늙은 나무들은
속도 없이 울창하고
무심하게 한결같다
모두가 소멸을 고하고 있다
천천히
이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삐뚤빼뚤 열린 창문, 오밀조밀 모인 장독대, 향긋한 장미 덤불, 까진 무릎으로 씩씩하게 자전거를 굴리는 세살배기 아이의 웃음이 이미 소멸되어버린 안쓰러운 우리 아파트를 가만히 안아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