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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Apr 10. 2022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지난날,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지금은 어떤 어른이 된 걸까? 어떤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대기만성’의 언저리 어디쯤에 있다고 믿어도 되는 걸까? 몇 살을 더 먹어야 이 어려운 질문에 적당한 답을 내어놓을 수 있을는지.      



이 영화는 현실과 이상, 생존과 생활, 돈 되는 것과 아닌 것들 속에서 어떻게 삶을 잘 꾸려나갈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이야기다. ‘소설 쓰는 일에 도움이 된다.’고 애써 위안하며 흥신소 일로 연명하는 가난한 소설가인 이 남자는 이혼 이후 아내와 아이를 1달에 1번씩 겨우 만나며 지낸다. 그런데,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하다. 아내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겨버린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는지, 정말이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구질구질한 현실,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인 건지



숨 쉬며 살아간다는 것이 하루하루 돈을 쓴다는 말과 다르지 않고, 아무리 돈은 수단일 뿐이라며 정신승리를 하려 해도, 돈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수단이 되어주질 않는다. 생활을 하려니 생존을 해결하기 위해 파닥거려야 하고, 생존을 하면 생활 속에서 무엇을 채워 나갈까 고민하며 효율이 떨어지는 행위만 하며 살고 싶어 지니, 이 굴레는 참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성장 드라마만 보며 나의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건만. 요즘의 나는 되고 싶은 것, 꿈을 좇는 것만이 전부인 이야기들은 유치한 것이라고, 뭘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냉소하며 코웃음을 친다. 그런데, 효율이 떨어지는 일을 하고, 목적 없는 감상문을 내어놓는 지금의 내 모습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생존의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 말할 수 없음에도,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거듭 돌아보게 되는 것은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유치 찬란하게만 느껴지는 ‘꿈’이라는 단어가, ‘되고 싶은 것’이라는 주제가 왜 끝끝내 유치해지지 않는 것인지.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아빠는 아직 되지 못했어. 하지만 되고 안 되고는 문제가 아냐.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거지.     



경제적으로 무능한 무명의 소설가로 현실을 견디는 입장이므로,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변변치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며 아들이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생전 그의 아버지가 아들의 초판 소설을 마을 사람들에게 돌리며 언젠간 값이 나갈 것이라 남몰래 응원해주었던 것처럼.     



아버지가 갖고 오셔서 초판본이니 언젠간 값이 나갈 거라고 했지. 아주 기뻐하셨어. 이 근처 가게들에 공짜로 나눠주고 다녔어. 붓으로 싸인 부탁해도 될까?   



(좌) 명필이었던 아버지가 남긴 벼루, (우) 문학상을 탔던 소설의 초판
전당포에 내놓으려 했던 벼루, 싸인을 하기 위해 다시 사용하다



몇십 년이 지나도록 꽃도 열매도 생기지 않지만 나무를 키우고 있다는 남자의 어머니. 이것이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당첨이 되지 않아도 별 수 없는 복권을 사는 마음으로, 그렇게 물을 주며 지내다 보면 무엇이라도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이 어제의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온 것처럼, 내일의 내가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겠는가?     



주인공 남자가 고등학교 때 심은 귤나무를 가꾸는 어머니




꽃도 열매도 안 생기지만 너라고 생각하고 날마다 물 주고 있어.
말씀 얄밉게도 하시네.
그래도 애벌레가 이 잎 먹고 자랐단다. 나중엔 나비가 됐어. 꼬물꼬물 하더니 파란 문양의 나비가 됐지. 어쨌든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어.       


                             


태풍이 지나가고(After the Storm, 2016) / 영화 / 일본 / Hirokazu Kore-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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