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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Jun 06. 2022

어버이날, 할아버지로부터 온 전화

그럴싸한 말들을 고르며




깜짝 놀라 마음이 철렁한다. 무슨 일이실까? 먼저 연락드리지 못한 불효 막심한 손녀로서 민망한 기색을 은근슬쩍 눌러 담으며 인사를 해본다. 그 언젠가 하시던 것처럼, 오랜만에 먼저 가족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건강하란 안부를 전하시려는 걸까. 아니면 지난 추석 때 조심스레 말씀하시다 말았던 맞선을 권유하시려는 걸까. 내심 긴장된 마음으로 수화기를 붙들고 식사는 하셨는지 여쭤보니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신다.      



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해결을 해주는 일을 하지 않느냐고. 그 비슷하긴 한데, 꼬마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것이 주된 업무라 답하니 나의 주 고객이 어른이 아니란 사실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한번 들어보라며, 당신이 몇 개월 전부터 변을 잘 못 본다고, 심지어 변을 잘 보고 나와서도 자꾸 변 생각이 난다고, 변을 못 보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하기 싫어도 자꾸 떠오른다는 것이다. 마음이 편해지도록 신경안정제도 먹고, 몸에도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연구를 좀 해보라고 하시는 거다. 변이 나오지 않아 불편한 건 말할 것도 없고, 답답한 위장을 억지로 비우는 것도 여간 수고로운 일이 아니기에 겪고 싶지 않은 심정이야 충분히 알 것 같았지만, 이렇게까지 일상생활을 침범하는 변 생각이라니. 얼마나 고되면 나에게까지 연락을 하셨을까 싶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문득 일전에 할머니와 엄마, 이모, 동생과 여행을 갔을 때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안전 또 안전을 강조하며 신신당부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할아버지와 삶을 함께 나누었던 이웃들이 모두 다 돌아가시고 이제 두 분 정도가 남았다고 귀띔을 해주신다. 1년에 두어 번 겨우 볼까 말까 한 손녀가 그 속내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만, 굳이 심리치료사가 아니어도 87해를 넘긴 할아버지의 삶 속에 어떤 것이 큰 주제로 다가오는지를 아주 조금은 눈치챌 수 있었다.      



생전 모르는 타인이라면, 침습적인 변 생각이 떠오를 때가 주로 언제인지, 그 전의 상황은 어떠한지, 어느 정도인지, 이를 어떻게 할지 대처방법을 만들어 그중 효과적인 것을 찾고, 생각 멈추기 버튼을 누르며 긍정적 경험을 늘려나가는 방법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이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인식하여 통찰할 수 있도록 작업하는 심리치료사나 상담센터를 찾아 정보 제공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가족들이 애정과 관심으로 긍정적 상호작용을 풍부하게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고, 삶에서 의미 있는 어떤 활동을 찾아 스스로의 존재감을 체감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라고 제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내가 심리를 조금 배웠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며 구구절절 내어놓을 수는 없었다.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이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고, 심지어 곁에서 꾸준히 챙겨드릴 수도 없는 게 현실이기에 그것들은 그저 ‘그럴싸한 좋은 말들’에 불과한 것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심리치료사라 하더라도, 결국 손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 별다른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 시절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받고 기뻐하던 그 마음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번 귀찮게 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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