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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구름 Jan 14. 2023

마음의 곳간에 무얼 넣어볼까

꼬마 내담자들을 만나는 기쁨과 슬픔에 대하여



이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는 걸까. 의식주를 제공하며 충분히 책임질 수 있을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가지며 따져본다. 부모가 자신의 문제를 다루는 것에 에너지를 쏟느라 아이를 미처 돌보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고,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일은 없다. 아이들의 환경은 곧 부모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나는 꼬마 내담자들을 만나는 상담자로서 늘 현실적인 고민에 직면하게 된다. 이 아이를 만나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부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나이를 더 먹은 나도 너무나 어려운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해를 주지만 사랑도 제공하는 유일한 애착대상이므로 도무지 쉽게 포기할 수 없다. 기대하지 않고, 가망이 없다며 포기하려 해도 끝끝내 뒤돌아보게 된다.      



영화 <해리포터>와 <마틸다>를 보았다며 해리와 마틸다가 가진 마술적 힘에 대해 신나게 말하던 아이가 떠오른다. 영화의 공통점은 학대적 양육환경에서 자라지만, 어른들의 태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힘으로 통쾌하게 세상을 잘 살아가는 것. 아이가 삶에서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이야기다. 나는 시끄럽고 뒤죽박죽인 가정에서 최대한 거리를 두게 하고, 가정 밖 일상에서 안정감을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목표’라는 미명하에 작업을 해도, 거대한 벽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현실에 아이는 한없이 작고 무력해진다. 부모와 심리적 거리를 두는 것은 아이의 몫이므로, 나는 아이가 겪게 되는 희망과 좌절의 반복을 지켜보는 것이 늘 어려웠던 것 같다. 이것은 과연 심리치료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인 걸까?      



“선생님은 집에 상담 선생님이 온 적 있어요?” 라며 그런 적 없었다던 나에게 자신의 젤리를 하사하던 아이, 생일을 축하해 주면 나의 생일은 언제냐고 묻는 아이, 우리들이 제공한 심리적 지원이 무엇인지도 가물가물한데 그 추억으로 잘 생활해 보겠다며 1년 뒤에 소식을 전해오는 아이. 여러 아이들과의 만남이 쌓여가며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도 같다. 예측불가하고 어찌할 수 없는 것들에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를. 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 해결해주지 못해 죄스러운 마음은 나의 과도한 오만이었을 따름이다.     



지금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아이들의 부모를 가망이 없다고 완전히 단념해야만 할까. 그 부모는 사랑이 없다고, 영영 책임을 질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오직 시간이 말해줄 수 있을 뿐. 지금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것과 알 수 없는 미래는 삶의 큰 흐름 속으로 미뤄두기로 한다.      



그러니, 부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다. 부정적 경험을 더 많이 겪어왔던 아이의 삶에 몇몇 긍정적 경험을 심어놓아 균형을 잡는 데 보탬이 될 수만 있다면. 아이가 이제껏 경험한 것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증거들을 찾을 수만 있다면. 삶의 조건과 환경을 직접 선택한 적 없으니 자신을 탓하지 않고 씩씩하게 나아갈 수만 있다면. 양질의 음식이될지, 소소한 과자가 될지, 아무것도 아닌 쓸모없는 기억이 될지는 결국 미래의 아이가 마음의 곳간을 열어보며 결정할 것이다.     



"여보! 태풍이 와요, 나오지 말고 있어요!" 남편 역할인 아이가 나에게 말한다. 텐트의 벌어진 틈새에 테이프를 붙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를 한다. 아이는 거센 태풍이 몰아칠 때마다 두려움에 떠는 역할을 나에게 요청한다. 나는 아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간다. 일상에서 아마도 듣고 싶었을, 혹은 하고 싶었을, 다루고 싶었을 이야기들을 말한다. "괜찮아! 이제 여긴 안전해요!" 태풍이 와도 이곳을 지켜낼 힘을 가졌노라고 자신하는 아이의 말에 나는 안도감이 들었다. 너도 지금 이 순간, 안심하고 있을까. 우리가 부디 같은 마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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