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홀로 태어난 얼룩말 루카
안녕? 난 용인에 살고 있는 루카라고 해. 집을 뚫고 낯선 곳을 달렸다던 너의 소식을 듣고 아기 시절의 내 모습이 생각났어.
태어난 지 2주쯤 되었나. 나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깜짝 놀라곤 했어. 당연했지. 모든 것이 처음이니 두려웠거든. 우리 엄마는 몸이 아파서 나를 돌보지 못했어. 그래서 엄마와 나는 영영 헤어지게 되었지. 아, 돌아가신 건 아니고. 엄마는 옆 동네에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해. 왜냐면 같이 있었던 시간이 없거든.
우리들이 태어나자마자 걷고 달릴 수 있다지만, 그래도 아기니까 누군가 필요하잖아. 그래서였는지, 이곳에서 엄마 대신에 사람들이 날 돌봐주곤 했어. 그들은 바쁘니까 종종 자리를 비우곤 했는데, 그럴 때 나는 무척 외로워지고 불안했지.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야 하는 말인데. 돌이켜보면, 나는 홀로 태어났다고 생각해. 물론, 엄마랑 아빠가 날 낳았지만, 내 앞에 한 번도 없었는걸. 그러니 홀로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때때로 나를 보살펴주는 사람들, 바퀴 달린 인형의 감촉, 인형에게 달린 우유병의 온기 같은 것들이 내 엄마였어. 꼬마 때 만난 내 친구 ‘포롱이’라고 있거든.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건초 먹는 방법을 알지 못했을 거야. 생각해 봐, 인형엄마가 건초 먹는 법까지 가르치지는 못하잖아. 그래서 포롱이를 만나고 건초를 제대로 알게 되었어. 아, 이건 밟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구나.
내 이야기가 너에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네가 나처럼 홀로 살아가고 있다고 들었어. 아마 앞으로도 매 순간 좌절이 있겠지. 캥거루 가족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에게 깊은 박탈감이 느껴지겠지. 누군가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너에겐 쟁취해야만 얻어지는 것이 될지도 몰라. 누군가는 쉽게 넘어가는 돌부리 하나도 너에겐 큰 위험으로 여겨질 수 있을 거야. 스스로가 눈물겹고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있겠지. 그런데 그건 결코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냥 이곳에서 이렇게 태어났을 뿐. 그래. 우리의 잘못이 아니고, 운이 없을 뿐이지. 그렇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어? 팍팍한 현실은 그대로인걸.
있지. 나는 그럴 때마다 기억하려고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안아준 존재들의 온기를 말이야. 엄마가 되어주지 못하지만, 나를 걱정하고 쓰다듬던 손길을. 내가 처한 현실의 한계를 함께 견뎌준 이들의 시간을. 엄마라는 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내 곁에 있었더라고. 그 사실이, 흔들리는 나를 꼭 붙들어주는 것만 같아.
세로야. 너의 가족사진을 봤어. 좋아 보이더라. 그 순간들이 너에게 고통이 아닌 살아갈 힘으로 작동하는 그날까지. 내가 받았던 사랑을 너에게 한가득 보낸다. 홀로 태어난 나와 홀로 된 네가 이렇게 연결된다면, 조금은 더 지낼 만하겠지. 내 친구 포롱이도 소개해주고 싶다. 그럼,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하며 이만 줄일게.
*TV동물농장 900회(19.1.13. '엄마는 인형!!?- 새끼 얼룩말 인공포육 프로젝트') & ‘어린이대공원에서 나왔던 얼룩말 세로(23.3.23.)’의 기사들을 심리동화로 재구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