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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해진 Oct 07. 2021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행정직 공무원

인사발령이 있을 때쯤, 모든 공무원들이 긴장할 것이다. 과연 어느 부서 어느 과로 발령이 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긴장하는 직렬이 바로 행정직 공무원일 것이다. 사회복지직, 환경직, 보건직 등 전문 직렬의 경우 전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련 부서로 인사 발령이 날 확률이 높다. 이에 비해 행정직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동안 일했던 업무와 전혀 상반된 업무를 하루아침에 담당할 수도 있다. 민원대에서 등초본 서류를 발급하다 하루아침에 허가과로 발령이 나 인허가 업무를 담당할 수도 있다.


행정직의 장점은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업무 속에 주요 업무들이 포함되어있다. 예산, 회계, 기획, 인사 등 주요 업무를 행정직이 주로 담당한다. 행정직을 가장 많이 채용하는 이유도 행정이라는 범위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어 여러 업무를 경험해 봐야 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행정직으로 간단한 서류 발급, 민원 건의사항 처리, 각종 대민업무부터 한 부서의 집안 살림이라 할 수 있는 예산, 회계업무까지 한 부서의 업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작게는 읍면동사무소에서 팀, 과를 넘어 크게는 국, 지자체 단위로 이어진다.


물론 행정직이 주요직을 담당할 확률이 크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에 비례하는 단점도 있다. 전문성을 기를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 직렬의 경우, 공무원 필기시험에서도 전문 과목을 시험 치기 때문에 임용 후에도 전문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업무를 담당할 확률이 높다.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분야의 업무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부하여 전문 지식을 쌓고 후에도 활용할 수 있다. 업무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어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더라고 기초 지식이 수반되어 빠르게 업무를 숙지할 수 있다. 이렇듯 전문 직렬은 전문 분야에서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고 지식을 쌓아가며 전문가로 성장한다.


하지만 행정직은 전문성을 가질 수 없다. 한 자리에서 대부분 짧게는 몇 개월, 길어야 2년 안팎으로 근무한다. 일에 익숙해질 때쯤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난다. 초짜라기도 애매한, 전문 가라기도 부족한 어중간한 지식을 갖게 된다. 이런 지식이 쌓이고 쌓여 훗날 비슷한 업무를 맡게 될 수도 있다. 그 사이에 업무 지침이나 법령이 바뀌지 않는다면 다행히 쓸모 있는 지식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안 가지느니만 못한 애물단지일 뿐이다. 오히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 방해만 될 뿐이다.


전문성 없는 행정직 공무원의 경력은 그나마 공무원일 때 가치가 있는 법이다. 혹여, 의원면직을 할 경우 공무원 경력은 흔히 말하는 물 경력이다. 행정사 준비를 하는 게 아니라면 과연 쓸모 있는 경력일까. 등초본 발급 지식이 사기업에서 활용이 될까? 사기업에서 공무원 경력을 살릴 기회는 드물다. 경력 있는 신입인 셈이다.  


공무원은 공시생 때부터 차이를 가진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 포기하게 되면 사기업 취업 준비와 달리 남는 게 없다. 그나마 한국사 능력 검정시험에서 유리한 정도일 것이다. 그 외에 사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자격증과는 너무 동떨어진 시험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준비해야 한다. 몇 년을 이 악물고 준비하고 버텨왔던 일이 물거품이 된다는 건 정말 허탈하다. 내 손안에 남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동안의 노력과 시간들이 한순간에 가차 없이 버려지는 것 같고 헛된 것 같다.


흔히 어른들은 말한다. 기술을 배워야 먹고살 수 있다고. 어른들 말씀 중에 틀린 말이 없다는 걸 살아가면서 점점 깨닫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전문 기술 없는 행정직 공무원으로 살아남으려면 카멜레온 같은 적응 능력이 필요하다. 모든 부서로 발령날 수 있는 만큼 때때로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어느 자리이든 금세 적응하며 담담히 본인의 처지를 받아들여야 오랫동안 공직 생활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살아남을 수 없다면  공무원 신분을 벗어던지고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기술 없는 행정직은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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