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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해진 Oct 03. 2021

공무원 권태기

현실과 이상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의원면직을 생각해봤을 것이다. 특히, 갓 임용된 신규일 때 이 일을 30년 넘게 해야 하나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무원의 현실과 이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임용 첫날, 그만둬야 하나 면직을 고민했다. 차라리 다른 직렬을 다시 준비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했다. '공무원'하면 흔히 그려지던 이미자와 너무나 달랐다. 공무원을 준비하기 전까지, 공무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관심도 없을뿐더러 제대로 알지 못했다. 시청이나 동사무소를 방문한 적도 손에 꼽힌다. 그저 동사무소에서 등초본 같은 서류나 발급해주는 줄 알았다. 9 to 6 칼 같은 근무시간, 빨간 날이면 무조건 휴일, 정년 보장되는 철밥통 등 사회가 가진 전형적인 공무원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현실은 참혹하게 달랐다. 부푼 마음을 안고 동사무소로 출근한 첫날,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한순간 마음이 푹 가라앉았다. 일목요연 정리된 인수인계서를 바탕으로 1:1 사수의 가르침을 받으며 업무를 배우리라 상상했다. 하나 현실은 상상과 달리 끊임없이 이어지는 민원에 치이는 사수를 바라보며 나 홀로 덩그러니 의자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충격적이었다. 동사무소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방문한다는 것과 공무원이 이렇게나 다양한 일을 한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아무런 교육 없이 바로 실전에 투입된다는 것. 이 점이 가장 충격적이고 경악스러웠다.


등본과 초본의 차이도 모르던 내가 하루아침에 담당자가 되어 발급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사수가 발급하는 모습을 눈으로 익히고 바로 실전에 투입. '이 버튼 누르시고 이거 이거 누르시면 돼요.' 인수인계 끝이었다. 뒤이어 각종 신청서에 싸인, 시스템 이용에 필요한 회원가입, 아이디 비밀번호 만들기 등등 가장 기본적인 업무를 끝으로 나는 공무원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담당자가 된 나는 어버버 거리기 일쑤. 사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업무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것을 토대로 눈치껏 행동해야 했다. 인사이동이 있을 때면 매번 이런 식인수인계가 진행되었다. 주먹구구로 이루어지는 인수인계가 너무 벅찼다.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루하루 갱신되는 민원 스트레스와 업무에 대한 중압감을 견디다 보면 한 달에 한번 찾아오는 월급. 첫 월급을 받았을 때가 생생하다. 너무 적어서. 돈 벌 생각으로 공무원을 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말 쥐꼬리만 해서 놀랐다. 그나마 민원대 근무로 민원 수당과 가족 수당으로 다른 동기들보다 조금 더 나았다. 기여금은 어찌나 많이 떼 가는지. 수당을 받은 만큼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9급 1호봉이라 그럴 수도 있지, 애써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호봉이 오르고 진급을 한다 해도 그럭저럭 생활할 수준이라는 걸 알고 있다. 첫 월급을 수령하고 나처럼 놀란 신규 공무원들이 있을 것이다. 업무에 비해 월급이 적은 것처럼 느껴져 허탈하다. 여기서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현저히 느낄 것이다.


합격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막상 겪고 나면 상상과 다른 현실에 이질감을 느끼고 실망한다. 기대하면 실망한다고 했다. 어렵게 공부해서 합격한 공무원이 생각보다 멋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린 고생한 만큼 보상을 받기 위해 기대 이상의 환상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공무원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그저 그런 직장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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