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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Jan 30. 2021

한국 아이 미국 아이

아이답다는 것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미국에서 살면서 놀라웠던 것 중의 하나는 바로 “꼬맹이”가 없다는 점이다. 꼬맹이가 없다니 다소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정말 그랬다.


농구를 좋아하는 나는 미국에서도 자주 집 근처에 있는 체육관에 가곤 했다. 그곳에서도 코트에서 몸을 풀다가 자유롭게 팀을 구성해서 3:3이나 5:5 시합을 하는 이른바 픽업 게임을 하고는 했는데, NBA의 나라답게 농구를 잘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도 참 많았다. 처음 미국의 농구 코트에서 놀랐던 점은 바로 “체급” 구분이 없었다는 점이다. 초등학생과 20대, 그리고 나 같은 40대 이상의 중년 아저씨들이 다 같이 한 코트에서 뛰고 있었다. 사실 농구는 체급이 따로 없는 종목이지만, 한국에서는 성인들이 농구를 할 때 어린아이가 근처에 있으면 "다치니까 저쪽 가서 놀아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 광경이 참 낯설고 신기했다.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어울리는 미국의 농구 코트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코트에서 얼굴을 익힌 사람들과 친해졌고, 그들과 함께 종종 픽업 게임을 하곤 했다. 그날도 이제 갓 열 살이 넘었을까 싶은 아이들이 두 세명, 한창 날아다니는 근육질의 20대 청년들, 그리고 내 또래의 한물 간(?) 아저씨들 몇 명이 적당히 뒤섞여 팀을 이뤘다. 나는 속으로 “애들은 좀 적당히 봐주면서 해야겠네” 생각했고, 다른 청년들도 한참 어린 동생 또래의 아이들은 배려할 거라고 믿었다. 어찌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청년들은 오로지 자기 플레이를 하는 데 정신이 없었고, 아이들은 그런 청년들에게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들의 밥이었다. 그렇다. 배려심 많고 무릎도 안 좋은 나라는 아저씨는 툭하면 아이들에게 공을 빼앗기고, 아이들과 몸 부딪히길 망설이다 연달아 득점을 실패했다. 그날 코트에서 나는 가장 게임에 집중하지 못한 선수였다. (다른 어떤 날은 키가 내 가슴팍 정도밖에 되지 않는 중학생이 “아저씨 나랑 1:1 할래?” 하기도 했다)




나는 미국에서 만난 아이들에게서 “아이답다 느낌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어른들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악수를 청하는 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심지어는 어른들 일에 참견도 잘한다. 어른들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도 사뭇 다르다. 아이의 면전에서 “예쁘다, 귀엽다, 착하다같은 소위 꼬맹이 전용 칭찬(?) 하는 장면을  번도 보지 못했다. (“good boy” 보통 키우는 개한테나 하는 말인  싶었다.)  미국인 회사 동료가 자기 딸을 칭찬할  “I’m very proud of you”라고 하거나, 아이에게 예절을 가르칠 때도 "~ 해야지" 아닌 "~  있겠니?"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어떤지 미루어 짐작할  있었다. (표현 방식이나 대하는 태도가 이렇다는 것이지, 미국의 부모가 아이들을 마냥 자유롭게 키운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만난 많은 미국 가정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상당히 엄격하게 키우는 편이었다.)


독립기념일에 함께 모여 불꽃놀이를 즐기는 어른과 아이들


내가 관찰한 일련의 장면들을 퍼즐 조각 맞추듯 조합해 보면 이랬다. 내가 만난 미국 아이들은 어린 나이임에도 집에서 “꼬맹이” 취급을 받지 않았다. 이는 아직 어린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어른의 세계와 명확하게 구분을 짓는) 우리나라 가정의 양육 문화와 차이가 있어 보였다. 어느 쪽이 더 좋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차이가 아이들의 자아 형성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4년을 미국에서 살았지만, 나의 사고나 행동은 전혀 미국식으로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생각할 때면 종종 떠오른다. 처음 미국 아이를 만났을 때의 당혹스러움, 그리고 어른들 앞에 서면 수줍고 겸손한, 예의 바른 "꼬맹이"였던 나. 우리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적잖이 그들의 자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지금의 우리 아이들도 나에게는 그야말로 "very proud"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에게 “아이고 우리 귀염둥이” 하는 푼수 짓은 좀 자제해볼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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