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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Sep 25. 2019

덜컹거림이 잠잠해지면 내려도 될까요

고속버스를 타다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탔다. 

내 차가 없던 시절엔 당연하다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추억이 되어버렸다


내가 지금 보다 좀 더 어렸을 때

덜컹이는 창밖을 바라보는 게 좋았다.


버스 운전기사님께서 틀어놓으신 라디오에

좋은 노래라도 나오면 기분도 좋아졌다.


가끔 웃긴 라디오 사연이 있을 때면

혼자 웃기 민망했던 적도 있었다.


어느 여학생은 자기가 내릴 정거장에 거의 다 와서

결국 참지 못하고 킥킥거리다 

문이 열리며 재빠르게 사라졌다.


웃음은 전염된다고 하던가.


부러웠다. 나도 시원하게 웃고 싶은데

눈치 때문에 애꿎은 무릎만 꼬집고 있었다.


옆을 둘러보니 모두들 웃음을 틀어막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부족했던 대학시절엔

위아래 좌우로 흔들리던 차 안에서 곧잘 책을 보곤 했었다.


그 생각이 나서 오래간만에 책을 펼쳤다.

곧 속이 울렁거리고

눈이 어지러워져 반 장도 못 읽고 덮어버렸다.


햇살이 따가워 닫아놨던 커튼을 펼치자

옆 자리 손님이 얼굴을 찌푸린다.


커튼을 닫았다. 

별 할 일이 없어 가방 속을 뒤적거리다 이어폰을 꺼낸다.

잠이라도 오면 좋겠지만

처음 타고난 후 30분을 내리 잔 상태라 눈이 말똥말똥하다


멍하니 앞자리를 응시한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다.


날 것과 같았던 머릿속 깊은 기억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멈추려 해도 제멋대로 여기저기 만난 사람들 생각뿐이다. 


생각을 멈추려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버스는 계속 달린다.


입사시험을 치르기 위해 간단한 1박 짐을 등에 매고 버스에 올라탄 기억.


매주 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생각에 설레던 기억.


함께를 약속했지만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고

덜컹거리는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눈물을 훔치던 기억.


좋았던 슬펐던 설레던 모든 추억들이 실타래 마냥 꼬여있었다. 

흔들어 풀려할 때마다 더욱 엉키는 실타래와 같이.

흔들림이 더 심해지고 난 또다시 잠에 들었다.


덜컹거림이 덜해지고 속도가 느려짐을 느낄 때 즈음 눈을 떴다.


창 밖 세상은 그대로였고 주변은 벌써 어둠이 지고 있었다.

어느덧 이어폰 속 음악은 멈춰있었고 소리도 나지 않았다.


흔들렸던 버스 안에서 난 무슨 꿈을 꾸고 있던 걸까?

버스와 달리 세상은 느리게 변하고 있었다.



하루에 딱 두 번뿐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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