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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 Jul 10. 2019

짝이 있다

내려놓고 잊어버린다

  난 물건을 잘 보관한다. 나름의 노하우가 있는 건 아니고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큰 호들갑을 떨지 않는 편이다. 물론 지난 시절, 특히 20대 때에는 잃어버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부모님한테 혼나기도 했고, 무엇보다 그 물건을 다시 살 수 있을 정도의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자주 사용하던 물건이 없어지면 마음이 불안했다. 기억을 더듬고 갔던 길도 다시 갔다. 친구에게 연락도 하고 혹시나 보게 되면 알려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결과는 깜깜무소식이었다.


  한 번은 휴대폰을 버스에 두고 내렸다. 대학원 시절, 버스의 맨 뒷 좌석 창가 자리에 앉아 책 읽는 게 일상이었다. 그 날은 유독 더위가 심했으며 창가 옆 자리는 한쪽 뺨이 벌게질 만큼 햇살이 강렬했다. 인상도 찡그러졌다.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버스도 평소보다 심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한 마디로 뭐 하나 만족스러운 상황이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하차벨도 늦게 눌러 원래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멀리 내려야 했다. 터벅터벅 학교로 가는 길. 깜빡깜빡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빨간 불로 바뀌기 직전 주머니 한쪽이 가벼운 걸 알아챘다. 가방을 뒤지고 양쪽 뒤쪽 주머니를 다 뒤져봐도 없었다. 내 휴대폰. 학교에 오자 마자 친구 휴대폰을 빌려 내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보통 버스에서 잃어버리면 못 찾는다. 벨이 두세 번 울리고 나고 다행히 어느 한 남자의 목소리와 선이 닿았다. 마침 자기도 휴대폰을 발견하고 언제 연락 올까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내가 내린 정거장에서 한 정거장 더 먼 거리에 계셨다. 시원한 음료수 한 병을 들고 그분께 감사하다고 하고 휴대폰을 돌려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만원 짜리 지폐 두어 장 드려야 했지만 난 학생이었고 돈이 없었다. 너무 고마웠다. 생각이 불편하면 중요한 것에 마음을 뺏긴다.


  서른이 되어 직장에 취업하고 어떤 물건을 잃어버리면 당황되지 않았다. 다시 사면되니까. 돈이 있으니까. '나와는 맞지 않는 물건이었나 보다'하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더 좋은 것으로 사라는 하늘의 뜻이겠지' 긍정의 역사를 창조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을 내려놓으면 언젠가 눈 앞에 나타난다.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도 의자 등받이 사이에서 발견했고, 카드를 잃어버렸을 때에도 가방 속 깊이에서 찾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어딘가에 있겠지, 내가 어디 쉽게 떨어뜨리고 다닐 사람은 아니잖아? 하는 생각을 한다. 나를 믿고 몰아세우지 않는다.


  양말을 잃어버렸다. 빨래를 정리하고 있는데 양말 한 짝이 없다. 분명 세탁기에 들어갔을 땐 두 짝 정상이었을 거다. 빨래를 바깥에 말리지 않았으니 누가 훔쳐갈 일도 없고(양말 한 짝 훔쳐가서 뭘 하겠냐만은) 집안 어딘가에 있을 거다. 양말 한 짝을 버리지 않고 고이 모셔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탁기 아래 청소를 하다가 누런 물 때 자국을 하고 있는 다른 쪽 양말을 찾았다. 기분이 좋았다. 쌍을 맞춰보려 전에 모셔놨던 양말을 찾으러 갔는데.. 아뿔싸.. 그 양말이 없다. 그래. 이거 또한 어딘가에 있겠지. 난 버리지 않았으니까. 결국엔 의자 쿠션 아래에서 발견했다. 그래서 최종 완전체 양말이 돌아왔다. 버리지 않으면 어딘가에 꼭 있다.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믿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근데 말이지... 내 짝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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