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돌아간다는 말은 참 이상합니다
나는 달리기가 굉장히 느린 편입니다. 주말마다 방에만 박혀 있는 생활 습관을 고려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도 나는 달렸습니다. 그렇게 뛰어본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귀에서는 삐 소리가 나며 주변의 소리들을 차단했습니다. 말하자면 나는 아예 다른 공간에 있는 것 같았어요. 세상의 찢어진 틈을 찾아내 비집고 들어가려는 사람처럼, 그 곳에 도달하면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계속해서 뛰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쫓는 두 명은 멀어지기만 했어요. 송주와 찬우 씨는 분명 걷고 있는데, 어째서 가까워지지 않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둘의 실루엣이 희미해질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왜 뛰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들을 마주치면 뭐라고 말해야 하죠? 둘 사이에 이런 어마어마한 비밀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그렇고 그런 사이라니, 축하합니다. 상상도 못한 커플이에요. 그치만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녜요? 둘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죠? 아니, 아니. 나는 당신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죠? 어쩌면 우리, 다들 목숨 건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볼품없고 안쓰러운 취조를 하고픈 건 분명 아닌데.
두 다리가 점점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이내 멈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뭐랄까, 분명 뛰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는 기분이었어요. 다리가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뒤에서는 이상하게 또다른 탁탁대는 발소리가 나를 쫓아오는 것만 같았어요. 그러다 짤랑 하는 소리가 나더니, 거리 오른쪽의 껍데기집 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문 안쪽 깊숙한 데서 나를 발견한 사람이 선고 같은 신음을 내질렀습니다.
“어어—!”
그 찰나는 분명 나에게 영겁처럼 천천히 지나갔어요. 주황빛 조명 가득한 가게로부터 분출되듯 먼저 튀어나온 깡마른 남자. 두툼한 회색 노스페이스 잠바를 걸치고 뒤에 있는 친구와 웃으며 대화하는 그 사람. 나를 가리키는 친구의 경고를 듣고 그 사람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우리의 눈이 마주치고, 서로가 숨을 헙— 하고 들이켰으며,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것을 들켜버리고, 나도 모르게 그 남자에게 도와달라고— 텅 빈 눈빛으로 애원한 영 점 일 초의 그 찰나. 나는 분명 모든 걸 들켰습니다. 아, 곤란해요. 나는 멈추는 법을 몰랐습니다. 그 마른 남자의 광대뼈에다가 그대로 정수리를 부딪혔어요. 뭔가 와르르 하는 느낌과 함께 우리는 모두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아야…….”
왼쪽 귀에서 크게 삐— 소리.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또 왼쪽 팔꿈치도, 이번엔 정말로 팔꿈치가 이상했어요. 손가락도 몇 개쯤 잘못된 것 같았습니다. 그 남자는 뒤로 넘어져 계단 위로 엉덩방아를 찧더니 데굴데굴 굴렀어요. 그러다가는 곧바로 상체를 들어올리더니 몇 초간 입을 벌리고 나를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그가 바닥에 쓰러져 버둥대는 내게 말을 건 것은 그로부터 삼십 초나 지난 뒤였습니다.
“저, 저기요.”
“으으으…….”
“저기요, 괜찮으세요?”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려 그 사람을 올려다봤어요. 남자는 코가 시뻘겋게 부어오르고 왼쪽 콧구멍에서 끈적한 피가 흘렀습니다. 이상해. 왜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지? 정작 자기는 피가 흐르고 있으면서. 내가 저렇게 만든 건가? 내가 남을 다치게 했어? 잘못한 건가? 그게 잘못된 거야?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들과 애를 쓰는 나의 모습만이 이리저리 포개졌습니다. 끙끙 앓던 나는 그 순간에 해야만 하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아, 앞을 보고 나와야지.”
“네?”
그 남자는 아마 놀랐을 겁니다. 원망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올 줄은 전혀 몰랐던 것 같아요. 그 뒤에 있던 검은 코트를 입은 친구가 천천히 걸어나왔습니다. 문 안쪽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던 키가 크고 건장한 사람. 그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저기요, 그 쪽이 부딪히셨는데요. 사과부터 하세요.”
나는 대답 없이 일어나 저 멀리 거리 끄트머리를 쳐다봤습니다. 송주와 찬우 씨의 뒷모습이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왼쪽 발을 내딛는데 무릎이 찌릿 하면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어요. 눈물이 나오려고 해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의 화난 목소리가 좀더 가까이 내게 다가와 속삭입니다.
“사과하시라고요.”
나는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코트 끝자락이 자기 목소리처럼 거칠게 떨리는 것도 봤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송주가 사라진 골목만을 고개를 들고 훑었습니다. 그러니까, 할 말이 있는데. 분명 나는 할 말이 있어요. 지금 꼭 모두에게 고백해야만 하는 게 있었는데.
“아, 별 미친 년이 다 있네.”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부딪혀 넘어진 친구를 바라봤어요. 웃음이 자그맣게 나왔습니다. 그 사람은 분명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어요. 그러니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중에도 나의 역할을 알아챘습니다. 그 남자가 못 참게 만드는 것.
“……짜증나게, 갑자기 튀어나오고.”
“…….”
“네 친구한테나 사과하라고 해.”
계속해서 삐— 소리. 물에 잠겨 있는 것처럼요. 솔직하게.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나도 알고 있어요. 내가 잘못했습니다. 좁은 길에서 다급하게 달리며 주위도 신경쓰지 않은 게 맞아요. 그치만 어쩌라구요? 이렇게 머리가 뜨거운데. 이렇게 화가 나는데요. 길에서 남을 한 번 신경쓰지 못했다고 그렇게까지 미안해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 정도의 실수들은 모두 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어차피 다들 뻔하고 답답하게 살고 있잖아. 가끔 이렇게 친구와 술 한 잔씩 기울이고. 다들 하루하루 공장에서 찍어내듯 살고 있는 거잖아. 그걸로 괜찮은 거란 말이 듣고 싶어 안달이 난 거잖아, 이 멍청하게 안전하려는 새끼들아. 내가 좀 부주의했어. 어쩌라는 거야?
“상황 파악이 안 되나본데, 경찰이라도 부르길 바라는거야?”
코트를 입은 남자는 점차 거칠고 사납게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 화난 남자에게 흥미가 없었습니다. 눈 앞에서 넘어진 남자. 그러니까 내가 넘어트리고 사과도 건네지 않은 그 남자가 미동도 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나는 불쌍한 게 아니에요. 그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어 천천히 말했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
“무슨 일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그 남자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동시에 오른쪽 관자놀이 쪽에서 실을 잡아당기는 듯한 통증, 그리고 달달대며 떨리는 턱.
“왜 안 되는데요?”
“…….”
“씨발, 왜 안 되는데.”
조소가 입에 붙어 달랑거렸습니다. 내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도 오른쪽 입꼬리가 내려갈 줄을 모르고, 나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그 남자를 똑바로 쳐다봤습니다. 아마 제대로 된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얼굴이 점점 더 빨개졌거든요. 주변에선 나를 가리키며 수군대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치만 이미 그런 소리는 먹먹하게 덮어버린 지 오래고, 그 남자가 당황하는 모습으로 마음 한 켠의 아찔한 욕망이 채워집니다. 그래, 화내야지. 기를 쓰고 말야. 네 얼굴 전체가 시뻘겋고 끈적일 때까지…….
“아 이런 씨발, 진짜.”
보다 못한 그의 친구가 내가 원하는 대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밀었습니다. 그야말로 종잇장처럼, 나는 또다시 바닥으로 널브러졌어요. 그 때 사람들 틈에서 모자를 덮어쓴 누군가가 튀어나오더니, 발로 그 남자의 배를 있는 힘껏 밀어 찼습니다. 그리고는 쓰러진 그 남자 위에 올라타 몇 번이고 얼굴에 박자를 타듯 주먹을 욱여넣으려 했어요.
“이 새끼, 뭐야?”
쓰러진 남자는 손을 앞으로 내밀고 허우적거리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깡마른 친구가 달려와 그 모자 쓴 남자를 밀쳤어요. 그 남자는 왼쪽으로 픽 넘어가더니, 다시 일어나 그를 무시하고 쓰러진 남자를 계속해서 가격했습니다. 나도 일어나 그 찐득한 몸싸움에 가담하려 했으나 그들 사이의 밀치는 손길 한 번에 다시금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아, 좋아. 꼭 이래야만 했어요. 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웅성대며 이 쪽을 처단하듯 렌즈를 들이밀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덤벼든 남자는 곱슬대는 머리를 흔들며 깡마른 남자와 몸싸움을 하고 있었어요. 아, 이제 보니 누군지 알 것도 같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까지 뻗은 길을 바라봅니다. 이미 송주와 찬우 씨는 흔적도 없었습니다. 아랫배에서부터 웃음이 올라와 허탈하게 코를 타고 나갔습니다. 골목 안쪽에서 사람들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이 쪽을 쳐다보고 일렁거렸습니다.
*
“빠르게 조사하고 병원 가시는 게 낫겠어요.”
경찰의 말투는 무심했습니다. 파출소는 쥐죽은 듯 조용했고요. 그저 초저녁부터 붙잡혀 온 네 명의 한심한 인간들이 아야야… 하며 골골대는 소리만 울릴 뿐입니다. 나 또한 그랬어요. 팔꿈치며 손이며, 왼쪽에 붙은 모든 것들이 성치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내 신경은 그런 게 아니라, 옆에 앉아 고개를 숙인 이 허여멀건 남자에게 가 있었어요. 그 새하얀 피부가 발갛게 변했다는 사실이 어딘가 내 마음을 벅차오르게 했습니다.
“손은 좀 괜찮아요?”
다빈 씨는 말없이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말합니다.
“……부러진 것 같아요.”
“저런.”
나는 어떤 말을 했어야만 할까요. 왜 그랬냐고 나무라야 하는 건지, 미안하다 사죄를 하는 게 먼저인지.
“일단, 일단 고마워요.”
다빈 씨는 다시 말없이 나를 쳐다봅니다. 새빨간 입술. 피 때문일까요?
“우연히 봤어요. 뛰시는 걸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딱히 나를 미행했다거나 해도 별로 화가 나지는 않았어요. 다들 그것보다 더한 잘못들을 많이 저지르고 있을 겁니다. 나는 조용히 앉아 눈을 감았습니다. 팔꿈치에서 계속해서 통증이 느껴졌어요. 나는 다빈 씨를 툭툭 치고는, 은밀한 작전이라도 수행 중인 듯 말했습니다.
“……편지 있어요?”
말하다 보니 웃음이 나왔는데, 왜 웃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빈 씨는 같이 웃더니, 아— 하며 입술 끄트머리를 조심스레 만졌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뭐가 그리 즐거우세요? 자랑스러우실 거 하나도 없어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둘 다.”
경찰관 분은 우리를 나무랐지만, 다빈 씨는 여전히 킬킬대며 가죽으로 된 가방을 뒤적거렸습니다.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대는 걸 느꼈어요. 그는 종이봉투를 꺼네 건네면서, 내 눈을 똑바로 보고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정말 우연이에요, 오늘 만난 거.”
“…….”
“안 믿으시겠지만.”
평소와 달리 이리저리 쭈그러지고 접힌 봉투. 욱씬대는 몸뚱이로 집어드니 마음이 훨씬 편했어요. 이제야 나의 편지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봉투를 뜯어 안쪽의 낡은 종이를 꺼내며 조그맣게 중얼거렸습니다.
“……네, 안 믿어요.”
조사는 한 시간 반 가량 걸렸고, 다행히도 그 건장한 친구가 먼저 나를 밀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우리는 서로 반의사불벌로 합의하기로 결론지었습니다. 우스운 사실이 있다면 그쯤 되어서는 미안한 마음이 나를 압도했다는 겁니다. 내가 잘못한 게 분명 맞는 것 같은데. 나는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악의를 가지고 도발한 결과로 벌을 받지 않게 된 것만 같아 어쩐지 찝찝했어요.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다음부터 그러지 마세요.”
경찰관은 우리를 보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뭐가 좋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우리는 경찰서에서 나와 근처 병원으로 가는 택시를 불렀습니다. 가로수에 왼팔을 대고 선 다빈 씨를 보며 나는 그의 곧은 콧대가 멀쩡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안해요, 다빈 씨. 저를 위해서 이렇게…….”
“뭐가요?”
“전부요. 전부.”
그는 말없이 웃었습니다. 달이 반으로 잘려 있고, 그 옆에는 점점이 별들이 희미하게 찍혀 있었어요. 서울에서, 서울에서…… 나는 이상한 기분이었습니다. 이상한 질문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나한테 뭘 원해요?”
다빈 씨는 그대로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일 분 넘게 그러고 있었어요. 나는 그와 눈을 맞추는 대신 옆의 벤치에 걸터앉았습니다.
“말하면 들어주실 수 있나요?”
“그거야 뭐—“
“아니, 이해해주실 수 있냐는 뜻이에요.”
“장담은 못 해요.”
그는 슬퍼 보였습니다. 이 사람도 나를 불쌍하게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건, 그건……. 위험합니다.
“저는 선생님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세상을 피부로 느끼던 몇 년 전과 비교했을 때요.”
“…….”
“아니, 아예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반짝이던 게— 그런 뜨거운 단어들을 생산하고 토해내던 사람에게서, 이제는 이런 눈매. 그게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들어요.”
다빈 씨의 주먹 앞쪽은 살이 다 까져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한 번 꽉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그걸 참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보고 있자니 그의 얼굴이 투명한 무언가로 범벅되고, 자그맣게 떨리고 있는 것을 나는 눈치챘습니다. 내 앞에서 울고 있었어요. 어린아이처럼. 끅끅 소리를 내면서 울었습니다. 심지어는 그 소리가 점점 커졌어요. 흑흑, 으우, 허어어…… 경찰서 안쪽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다시 나와 볼 지경이었습니다.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그 사람 어깨 위에서 피가 딱지진 손을 머뭇거릴 뿐이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울다 그는 깜깜한 데서 걷듯 한 마디씩 뱉었습니다.
“선생님.”
“네, 다빈 씨.”
“돌아와주시면 안 될까요?”
물방울 진 목소리로.
“어디로요?”
“열심히 헤엄쳐 간신히 뭍에 도착했는데, 그게 무인도인 것 같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었습니다. 다빈 씨가 내뱉는 모든 말이 죽기 싫다는 말처럼 들려서, 살고 싶다는 말처럼 들려서……. 생각해 보면 다빈 씨뿐 아니라 찬우 씨도 그렇고, 박 부장도 그렇습니다. 다들 그저 절박하게 헤엄치는 겁니다.
“그렇게까지 나에게 집착할 필요가 있어요? 나 같은 거 신경쓰지 말아요. 나도 삼십 년 넘게 날 몰라요. 이런 모습 좀 봐요, 그냥 볼품없고 위태로운 사람이에요.”
“가끔은,”
다빈 씨는 울먹이는 눈망울로 내 홍채를 꿰뚫을 듯이 쳐다봤습니다.
“가끔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을 나라고 소개하고 싶어요.지금 모습 말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요. 내가 바라보고 있는 곳들.”
왼쪽 팔이 저리고 손끝의 뼈마디가 욱신거렸습니다.
“지금 엉망진창인 건 괜찮아요. 내가 뭐라고요. 나도 매일같이 지저분하고 실망스러워요. 근데 우리 서로한테 묻고 싶은 건 그런게 아니잖아요. 내가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고……. 이제부터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자신을 통제하는 게 어려운 것쯤은 다들 알아요.”
그는 여전히 축축한 목소리로 흐느끼듯 한 글자씩 내려놓았습니다.
“뭐가……. 뭘 아름답다고 믿으시는 건데요.”
심장이 온 몸에서 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송주가 아닌 사람의 눈망울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소실되었지만, 나 또한 거기 담긴 무언가를 옛날에 분명 가지고 있었다고 확신했어요. 그러니 그저 이런 말만 튀어나왔습니다.
“미안해요.”
“저도 미안한 고백 하나 드리자면,”
다빈 씨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모릅니다.”
“그게 미안해요?”
“아까 고맙다고 하셨죠. 진실을 말씀드리자면,”
“…….”
“저는 선생님을 위해 행동한 적 한 번도 없어요. 전부 나를 위한 일입니다. 나를 다정한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게 섭섭한 마음이 올라왔다고 해서 그게 이상한 일은 분명 아닐 겁니다. 그는 다치지 않은 왼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눈물을 닦아냈어요.
“나는 원하는 걸 얻어내고 있다구요. 이 이야기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와 선생님께 개입하고 있잖아요.”
“지금 고작 나랑 얘기 좀 하려고 경찰서까지 끌려왔다는 거예요?”
“선생님.”
다빈 씨는 달달 떨리는 오른손마저 올려 얼굴을 덮은 뒤 웅크렸습니다. 손바닥 아래쪽에서 위태로운 목소리가 새어나왔어요.
“인간이 제일 못 견디는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대화는 그 뒤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의사는 며칠 더 입원해 지낼 것을 권유했습니다. 나의 가족들, 그러니까 부모님이나 송주도 입원하는 게 좋겠다며 걱정하는 모습을 내비쳤어요. 하지만 왠지 나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딸. 왜 입원을 안 하겠다는 거야?”
“크게 다친 데가 없다니깐. 그냥 가끔 욱신대는 정도야. 그리고 돈도 아깝고.”
“괜찮은 것 같아도 그게 충분히 쉬어주지 않으면 어느 날 다시 아프다니깐. 그냥 입원해라.”
아버지는 전화 너머로 우악스레 외쳤습니다. 딸, 돈 때문에 그래? 아빠가 내 줄게. 그냥 입원해라—
“아유, 가만히 좀 있어봐요. 돈을 왜 내줘? 자기가 쌈박질했는데 자기 돈으로 입원해야지.”
새롭게 안 사실인데, 넘어지며 다친 부위는 웃을 때마다 숨이 통과하는 것처럼 지끈거립니다. 주말 낮, 대전의 낡은 아파트 칠 층 소파에 앉아 티격태격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어요. 철부지 같은 아버지와 나를 강하게 만드는 어머니. 나는 그 옆에 누워 아프다고 엄살을 피며 엉엉 울고 싶었습니다. 팔에 얼굴을 부비적거리면서요. 옆에서는 송주가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그래요, 아부지 돈도 받지 말고, 그냥 언니 돈으로 입원해요.”
“말투는 누가 보면 너가 돈 내주는 줄 알겠다.”
“벌을 받으란 말예요. 거리에서 쌈박질 하고 못되게 욕까지 했다면서. 벌을 받아야 또 안 그러지.”
휴대폰에서는 어머니가 퉁명스럼을 뚝뚝 흘리며 거듭니다.
“그래, 송주 말 잘한다. 너라도 집에 들어왔대서 내가 얼마나 안심인지 몰라. 내 새끼, 아니 네 새끼 네가 관리 좀 잘 해라.”
송주는 교태를 부리며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나를 혼자 두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게 뭐가 되었든간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아무튼 어머니가 두 명이면 좋습니다. 나쁠 것 없지요. 이럴 때 다빈 씨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넘어갈 수 없는 벽이…….’
잘 모르겠어요. 부모님의 걱정어린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이런 통화를 나눈다는 것만으로 미안함을 느껴도 되는 것인지. 아프지 않아서 미안해요. 내게 아픔이 없어 미안해. 그런 말을 건네는 거야말로 미안한 일이 아닐까요.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이 왜 가끔 이를 악물고 슬프려고 하는지를 얼추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못 이기는 척 나는 병실에 누웠습니다. 일 주일간 병원에서 지낼 예정이었어요. 이상하게 눕고 나니 머리가 더욱 세게 지끈거렸습니다. 병실이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건지, 피로감이 넘실대며 밀려왔습니다.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서리라도 낀 것처럼 시야가 흐릿해지며 멀어지고, 눈을 뜨니 어느새 창 밖은 깜깜했습니다. 어디 보자, 잔디에 눕고 사람에게 박치기한 게 토요일이었으니……. 어느새 월요일로 넘어가는 밤입니다. 월요일.
나는 창 밖을 보러 무거운 몸을 일으킵니다. 월요일이란 단어가 풍기는 완고함은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절망적일 거예요. 나 또한 그렇습니다. 어딘가 마음 한 곳을 침으로 찌르는 듯 쿰쿰하고 피로한 겁니다. 나는 오른손을 들어 차가운 유리창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밖에는 듬성듬성 켜진 가로등과 관리가 잘 된 잔디, 그리고 어쩐지 텅 빈 공기. 왜 아무도 지나가지 않지. 일요일 밤은 왜 아무도. 평소 아침처럼 분주하게 지나들 다녀야지. 나는 중얼거리며 다시 자리에 누웠습니다.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어요. 아무래도 환자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밤에 혼자 두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글쎄, 입원이란 건 생각보다 훨씬 덜 고통스런 일이었습니다. 아, 물론 원래 목적도 그게 맞지만요. 아무튼 내가 입원하지 않겠다 고집을 피운 이유 중에는 그 지독한 시간을 버틸 자신이 없어서도 있거든요. 일주일을 그저 누워서 보낸다, 그것뿐. 일어날 필요도 없고, 그저 침대에서요. 생각만 해도 무거운 돌이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답답하기는커녕 시간이 너무나도 쏜살같이 지나가 어쩐지 섭섭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아침에 분주하게 오가는 간호사와 병문안객들, 부스럭대는 소리에 눈을 뜹니다. 그리고는 아침식사. 미역국과 장조림, 그리고 무김치. 다음은 눈을 꿈뻑이며 휴대폰을 붙잡구요. 사람들의 삶이란 걸 가만히 쳐다봅니다. 대학 친구는 점심시간에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했구요, 김 대리님은 어제 남자친구와 소고기를 먹었네요. 표현을 안 한다며 늘 툴툴대도 사이가 좋은 커플입니다. 또 이런저런 영상들을 넘겨가며 시간을 죽이면 점심이 옵니다. 닭갈비와 소고기뭇국, 시금치무침. 적당히 짭쪼름한 게 맛이 좋아요. 먹고 나서는 옆 자리 아주머니와 수다를 떱니다.
“돈은 좀 모았어?”
“아뇨, 뭐…….”
“아이구, 괜찮아. 결혼 생각도 딱히 없담서. 다 아이 때문에 돈 나가는 거지, 나 하나 먹고 사는 데 문제 없으면 그렇게 필요하지도 않아. 문제될 거 없어, 하던 대로 하면 돼.”
감자탕 가게를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결혼한 지 이십 년이 넘게 지났고, 고등학교 일 학년 딸과 중학교 이 학년 아들이 있습니다. 남편은 매일 저녁마다 퇴근길에 병원에 들러 과일 봉투를 놓고 가구요. 그냥 놓고 가는 게 아니고, 매일같이 나를 보며 이런 말도 합니다.
“연정 씨라고 했나요?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철은 아니라도, 딸기가 참 달아요.”
나는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잘 모르겠는 것뿐입니다. 그뿐이에요. 그렇게 아주머니와 웃다 보면 잠이 쏟아집니다. 한 줌의 낮잠을 자고 나면, 저녁이 올 겁니다. 오늘도 적당히 보내 주는 거예요. 나는 스르르 눈을 감습니다…….
“환자 분, 문안객 오셨네요.”
얼마쯤 잤을까, 키가 작은 간호사가 나를 조심스레 툭툭 치며 말했습니다. 눈을 비비적거리고 보니 바깥은 어느새 시커멓게 변해 있었어요. 병문안? 올 사람이 없는데. 송주는 오늘 분명 여행을 간다고 말했고, 가족이 올라왔다면 말을 했을 테니. 그럼 누가……. 아, 그밖에 떠올릴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건 참 슬픈 일입니다. 정말이지 예상이 가지 않아요. 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어쩐지 익숙한 실루엣이 드러나고,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좀 괜찮아?”
“예, 예. 그럼요.”
“그렇게 습관처럼 얘기하지 말고. 정말 괜찮은 거야? 생활하는 데 지장은 없어?”
“네, 정말이에요. 저는 괜찮다고 했는데, 병원에서 입원을 꼭 권해서…….”
또 변명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됩니다. 그녀는 나를 쪼아대고, 나는 움츠러든 채로 대답합니다. 몇 년째 우리의 대화는 이런 식이에요.
“다음 주부터는 꼭 출근할 수 있도록 할게요.”
박 부장은 그렇게 말하는 나를 가만히 서서 내려다봤습니다. 그러다가는 고개를 숙이고 침대 앞쪽을 왼쪽 오른쪽으로 계속해서 오갔어요.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낀 왼손은 그녀의 검은색 치마 위쪽을 툭툭 쳤습니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데도 나는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드는 것만 같았습니다.
“왜 그렇게 된 거야?”
“그게, 어떤 남자 두 명이랑 부딪혔거든요. 그런데,”
“아니, 그거 말고.”
“예?”
박 부장은 한숨을 한 번 크게 내쉬더니 동그란 갈색 의자를 끌어당겼습니다. 그러고는 걸터앉아 다리를 의자 아래쪽 받침대에 올리고는 말했어요.
“왜 그렇게 겁쟁이가 된 거냐고.”
나는 고개를 올려 박 부장의 눈동자를 훑었습니다. 한심하게 보는 것도 같고, 불쌍하게 보는 것도 같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원래 이러지 않았잖아. 이렇게 회사 같은 걸 무서워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그녀는 잠깐 눈에 띄게 멈칫하더니 목을 뒤로 한 번 꺾었습니다.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하지도 않았잖아.”
“……제가요?”
“나는 우리 사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어.”
이거야말로 정말 내가 이번 달 들은 모든 말 중 가장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아, 특별하다면야 특별한 게 맞죠. 박 부장의 경우 회사 사람 중 유일하게 그 목소리가 나의 집까지 따라오고, 가끔은 꿈까지도 침범하는 사람입니다. 송주까지 그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면 특별한 게 맞아요. 그치만 그녀의 표정은 어쩐지 그런 섭섭함이 아니었어요.
“음, 감사합니다.”
“감사하다고? 정말로?”
“예, 감사해요…….”
“뭐가 감사한데?”
“예? 그게,”
이게 뭘까요? 무슨 연인 간 다툼도 아니고. 나는 박 부장을 똑바로 쳐다봤습니다. 20도 정도 기울어져 꿈틀대는 눈썹. 화가 난 것도 같아요.
“저를 특별하게 생각해주셔서요. 덕분에 일하면서 많이 도움받고 있습니다.”
“나 처음 봤을 때 기억나?”
“예? 처음이요?”
“내가 면접관으로 들어갔는데. 기억 안 나지?”
나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였지만 아무런 기억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 면접관들 질문에는 대답 하나도 못 해놓고, 당당하게 따졌잖아. 대체 왜 이런 분위기에서 면접을 진행하는 거냐고. 평소에 일할 때도 이렇게 직원들을 긴장시키는 게 아니고서야, 이런 게 의미가 있냐고 말야.”
“제가 그랬나요?”
다들 본인의 건방진 기억 같은 건 쉽게 잊습니다. 그 편이 편하니까.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지 않아도 되니까.
“그 때, 김 부장님이 얼굴 시뻘개져서 너 계속 욕했어. 뭐 저런 게 다 있냐고. 살다살다 면접 보면서 이렇게 건방진 애는 처음 본다고.”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오만했네요.”
“그치. 오만했지.”
또 변명하는 모양새.
“그래서 내가 우겼어, 뽑자고. 나 믿고 한 번만 이 친구로 가 보자고.”
“예?”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리다 다시 붙잡았습니다. 어쩐지 박 부장의 눈을 마주볼 자신이 없었어요. 시야가 멈춘 곳엔 의자를 붙잡은 그녀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고 있었습니다.
“내가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구. 나는 정말로 좋은 팀을 만들고 싶었으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 남들처럼 하려고 기를 쓰는 거야, 연정아. 물론 왜인지는 알지만, 그치만 나는 네가 필요했는데. 그냥 그 때처럼 나를 대해주길 바랬어.”
뭐라도 말하고 싶었는데, 고마움과 죄송함 중 어떤 게 좀더 알맞은 감정인지 결정할 수가 없었어요. 아니, 생각해 보면 둘 모두 느끼고 있지 않았습니다.
“푹 쉬고 돌아와. 아니, 사실 푹 쉬든 말든 그건 알아서 해. 그치만 꼭 돌아와야 해. 뭐가 널 그렇게 만들었는지 아예 모르는 건 아냐. 그래도 돌아와.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나는 여전히 그녀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돌아와도 괜찮아.”
“네…….네.”
“사회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 그게 무슨 지극히 수학적인 기계인 양. 그냥 다들 좀 나아지자는 약속 같은 거잖아.”
그 말을 끝으로 박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나는 그럼 네 빈 자리 지키러 가 볼게. 누가 없어서 그런지 다시 좀 바빠졌네.”
생긋 웃는 표정만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내 주변을 한 바퀴씩 맴돌았어요.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박혀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박 부장에게서 튀어나온 그 악랄한 사회라는 단어가 보드라운 식감으로 입 안을 굴러다닐 뿐이었습니다.
그 뒤로 내 병실의 시간은 좀처럼 흐르지 못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누워 새하얀 천장을 보고만 있는데도 자꾸만 울컥대며 올라오는 이름모를 덩어리들을 눌러내야만 했습니다. 아, 이대로는 안 된다. 멀어지고 싶지 않아. 그게 무슨 내 모든 문제의 근원인 양 말했던 술자리들이 있었는데, 나는 알고보면 사회 없인 아무것도 아니에요. 일하고 싶지 않으면 일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치만 그걸 제외하고 나면 나는 대체 뭐가 되는 건지…….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복도로 나와 의자에 앉았습니다.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가는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간호사들. 심각한 표정으로 화장실에서 나오는 의사도 있습니다. 나는 다시 병실 안쪽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창 가까이 섰습니다. 사람들은 가로등 아래서 이리저리 오갔어요. 이상하게 웃음이 났습니다. 사실 방금 눈 앞에 노트북과 업무가 쿵 하고 떨어지길 간절히 바랐거든요. 일을 하고 싶다……. 아니, 일로부터 멀어지고 싶지 않다. 격리되고 싶지 않아.
결국 그런 거였습니다. 입원하면 안 된다고 마음 어딘가에서 소리쳤던 이유, 왼쪽 손에 깁스를 하고 달랑거리더라도 책상 앞에 앉고 싶었던 이유도요. 나는 사회의 품에 안기려는 겁니다. 사회로부터 멀어지지 말 것. 중독될 것. 사회에 중독될 것……. 인간이란 그저 선택권이 없는 거예요. 나는 몇 분간을 더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리에 누워 잠에 들었습니다.
꿈에서 나는 다빈 씨를 면회하러 갔습니다. 다빈 씨는 진한 먹색으로 지어진 구치소 안에 있었는데, 아주 작은 일인용 구치소였습니다. 나와 부딪힌 남자들이 많이 다친 탓이라고 했어요. 나는 그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조잘대며 털어놓았습니다. 자꾸만 투정을 부리고, 깔깔대며 웃다가는 또 엉엉 울며 이야기를 계속했어요.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런 나를 지켜봤습니다. 잠시 뒤 면회 시간이 끝나고, 두꺼운 철문이 열렸습니다. 경비는 나를 내려보며 그만 갈 시간이라고 근엄하게 외쳤습니다. 나는 미련없이 뒤를 돌아 햇살이 비치는 바깥으로 걸어나갔습니다. 다빈 씨는 철창 안에서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나를 지켜보더니,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만 말했습니다.
‘잘 가요.’
생각해 보면 돌아간다는 말은 참 이상합니다. 그건 아무튼 있어야 할 곳으로 이동하는 느낌이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