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 싼 게 비지떡

가성비 세팅의 대가, 버그 처리

by 새턴 Saturn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위해 항공편을 예약할 때, 돈이 없었던 나는 가장 저렴한 티켓을 찾았다. 캐나다 캘거리 기반의 저가 항공사 웨스트젯에서 5월 8일 저녁 8시 45분 출발 편을 골랐다. 어버이날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가난했기 때문에 가장 저렴한 날짜를 선택한 것이다.


항공편 구매 당시 화면에는 분명히 23kg 이내의 위탁 수하물 1개, 기내 수하물 1개, 개인 소지품 1개가 포함된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캐리어를 구매하려고 마이페이지를 다시 확인해 보니 위탁 수하물 1개가 사라져 있었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문의해야 할지 이리저리 찾아보다가 웨스트젯 공식 홈페이지에서 실시간 상담 창을 발견했다. 캐나다 시간 기준으로 오전부터 영업한다고 해서 밤 11시까지 기다려 겨우 상담을 요청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상담원은 추가 요금을 지불하라고 했다. 이상했다. 웨스트젯 공식 홈페이지 규정을 확인했을 때 아시아-북미 구간은 위탁 수하물 1개가 무료라고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청구하는 금액도 2번째 위탁 수하물 요금이었다. 혹시 홈페이지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나 싶어 결제하려고 했지만, 하필 은행 점검 시간에 걸려 결제가 불가능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동안 상담원과의 연결이 끊어졌고, 다시 상담을 요청해야 했다.


두 번째 상담원은 완전히 다른 답변을 내놓았다. 해당 문제가 테크 이슈이며, 위탁 수하물 1개는 내가 구매한 항공편에 포함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테크 이슈가 언제 해결되는지 물었지만, 확답할 수 없으니 자신을 믿으라고 했다. 반신반의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위탁 수하물과 기내 수하물 규정에 대해서도 홈페이지와 상담원들의 말이 달라서 무엇이 맞는지 파악하는 데 정말 고생했다. 더 믿음직스러워 보인 두 번째 상담원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상담을 마치고 나니 첫 번째 상담원과의 대화에서 은행 점검 시간 때문에 결제하지 못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불 처리가 얼마나 복잡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글로 쓰면 간단해 보이지만 새벽 3시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말 고생했다.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서 항공편은 반드시 항공사 자체 홈페이지에서 구매하기를 권한다. 제삼자가 끼어있으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문제 해결이 더욱 복잡해진다고 들었다. 다행히 자사 홈페이지에서 구매했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해결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2025년 4월 22일, SKT 유심 정보 유출 사고가 터졌다. SKT 사용자였던 나에게는 큰 문제였다. 몇 주 후면 출국인데 정말 짜증이 났다. 한국 회선을 이심으로 유지하면서 캐나다 회선도 이심으로 활성화하려던 계획이 무산되었다. SKT 유심 정보 유출 사고 때문에 한국 유심도 강제로 교체해야 할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 화가 났지만 화만 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해외 거주 시 기존 통신망을 유지하는 방법은 보통 세 가지다. 첫째, 회선을 완전히 해지하는 방법. 둘째, 문자만 수신 가능하도록 변경하는 방법. 셋째, 전화와 문자 모두 송수신 가능하도록 유지하는 방법. 나는 세 번째를 선택했다. 한국 사이트 인증 시 문자 발신과 전화 발신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언니가 영국 유학 4년 동안 첫 번째 방법을 택했는데 한국 사이트 인증 시 매우 불편했다는 경험담을 들어서 그런 방법은 피하고 싶었다.


통신사 선택도 고민이었다. 대형 통신사를 쓸 것인지, 알뜰 통신사를 쓸 것인지. 알뜰 통신사라면 어디를 선택할 것인지. 종류가 워낙 다양했다. 나는 역시 저렴한 요금제를 원했기에 알뜰 통신사를 쓰기로 결심했다. SKT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져서 SKT망을 사용하는 알뜰 통신사는 아예 배제했다. 알아보니 LG U+ 망보다는 KT망이 더 신뢰할 만하다는 평가가 많아서 KT망을 사용하는 알뜰 통신사를 물색했고, 고민 끝에 스카이라이프 알뜰 통신사로 결정했다. 요금제는 1900원짜리 '초슬림 500M/60분'을 선택했다.


캐나다 통신사는 슈퍼셀을 통해 Bell사의 이심을 구매해 둔 상태였다.


처음에는 스카이라이프를 이심으로 가입했는데, 혹시 몰라서 개통 상담원에게 이심 2개 동시 사용이 가능한지 물어봤다. 그런데 상담원이 자기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당신이 모르면 도대체 누가 알겠는가. 상담원은 다른 상담원에게 물어보라며 번호를 알려줬다. 그 번호로 전화했더니 스카이라이프 통신망을 이심으로 사용할 경우 해외에서 이심 사용이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틀 동안 전전긍긍하며 겨우 스카이라이프 이심을 개통한 상태였는데 이심을 쓰면 해외에서 이심 사용이 불가능하다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SKT 유심 정보 유출 사고도 있었고, 스카이라이프를 유심으로 재개통하기로 했다. 이심으로 오늘 개통했는데 유심으로 바꿀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가능하다고 했다. 그럼 이심 가입비 환불이 가능한지 물었더니 가능하다고 해서 유심은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는지 물었다. 대리점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KT 바로유심을 구매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느 편의점에서 파는지 물어봤더니 자기들도 모른다고 했다.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테크 이슈로 개통이 계속 지연되고 연휴 기간까지 겹쳐서 개통 일정이 계속 밀리는 상황이었다. 당장 내일 출국해야 하는데 말이다. 게다가 SKT 유심 사태 때문에 편의점 유심 재고도 바닥난 상황이었다. 상황은 절망적이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이미 기존 SKT 요금제는 해지하고 스카이라이프 이심으로 개통해서 데이터를 차단해 둔 상태라 밖에서 데이터도 쓸 수 없었다.


다행히 언니가 편의점을 찾아다니며 함께 돌아다녀주겠다고 했다. 정말 고마운 순간이었다. 몇 시간 고생할 것을 각오하고 집을 나섰는데 놀랍게도 집 앞 편의점에서 KT 알뜰 통신사 유심을 구매할 수 있었다. 운이 정말 좋았다. 집에 돌아와서 또 고생하며 알아보면서 혼자 유심 개통을 시도했고 끝내 성공했다.


그런데 혼자 개통하는 방법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KT 알뜰 통신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어느 편의점에서 유심을 파는지 실시간 재고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스카이라이프 직원은 모른다고 했는데 말이다. 정말 체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렴하게 이용하는 입장에서 뭘 더 바라겠는가 싶었다.


KT 바로 유심 편의점 구매처


앞서 연결되었던 스카이라이프 상담원이 이심 개통비를 환불해 준다고 했기 때문에 다시 상담원과 연결을 시도했다. 그런데 이번 상담원은 환불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자신들끼리도 전혀 통일된 매뉴얼이 없는 것 같았다. 저렴하게 요금제를 이용하는 입장에서 또 뭘 더 바라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참았다. 이심 개통비가 4천 원 정도였는데 그냥 더럽고 치사해서 4천 원을 기부한다는 생각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무사히 알뜰 통신사에서 한국 유심을 개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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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젯 비행기 안에서

다행히 출국일에 위탁 수하물 관련하여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웨스트젯이 테크 이슈로 내 속을 썩였기 때문에 비행 경험에 대해서도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정말 쾌적하고 좋았다. 스위스 항공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퀄리티가 훌륭했다. 저가 항공사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음악,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기능이 충실하게 있었고 기내식도 맛있었다. 심지어 센스 있게 웨스트젯의 상징색인 민트색의 이어폰도 제공해 줬다. 밴쿠버로 오는 길에 뭘 볼까 고민하다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The Parent Trap"을 발견해서 재미나게 시청했다.


이렇게 고생하며 저렴한 항공편과 알뜰 요금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고생했지만 배운 것도 많았고, 지금까지 저렴하게 요금제를 잘 이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 자신이 대견하다.


정말로 싼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저렴한 상품을 구매할 것이다.




Written by Sa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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