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마음, 그래도 닿기를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출국 며칠 전, 친언니와 함께 부모님을 위해 요리를 준비했다. 메뉴는 감자 뇨끼, 라따뚜이, 루꼴라 샐러드. 요리를 할 때까지만 해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갈등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실망하신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셨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아버지는 이미 집을 나가신 후였다.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들은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출국하는 날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한강까지 혼자 산책하러 나가셨다고 했다.
그때 정말 속상했다. 이제 곧 떠나는데, 적어도 2년에서 4년은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출국 당일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으시겠다니. 그 순간에는 아버지가 정말 아이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전해 들은 바로는, 내가 부모님께 그동안 키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을 명확히 전하지 않은 것에 아버지가 크게 실망하셨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의 학력과 커리어를 뒤로한 채 해외로 도전하러 떠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 세상 누구라도 뭐라고 하더라도, 우리 부모님만은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셨으면 했다. 그런데 돌아온 건 두 분의 걱정뿐이었다. 계속 내가 힘들 거라는 말씀만 하셨다.
나도 내가 힘들 거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런 말보다는 응원이 되는 말을 해주셨으면 했는데, 그런 식으로밖에 표현을 못 하시는 것에 참 속상했다. 나는 원래 걱정이 많은 편인데, 그것을 덜어내주지는 못할망정 부정적인 말만 하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물론 두 분의 마음은 안다. 나를 걱정하고 사랑해서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 것을. 그래서 그런 서운함을 식사 자리에서 표현한 것도 아버지께는 많이 속상하셨을 것이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나서 생각을 많이 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참 속상하실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다지 살가운 딸은 아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거나 하는 방식으로 연락을 드리지는 않았고, 출국하는 5월 8일 어버이날에 카네이션과 편지를 써두고 떠나려고 했다.
출국일 아침까지 짐을 열심히 쌌다. 2시간도 자지 못해서 정말 피곤했다. 어차피 비행시간도 기니까 잠은 비행기에서 자자고 생각했다. 저녁 8시 45분 비행기여서 오전에 카네이션을 구매하기 위해 꽃집에 갔다.
빨간색과 핑크색 카네이션이 있었다. 두 개 중 어떤 게 더 잘 나가냐고 물어보니 꽃집 주인은 빨간색 카네이션이 잘 나가긴 하는데 핑크색 카네이션이 키우기는 훨씬 더 쉬울 거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전에 빨간색 카네이션을 금방 죽여버렸다고 하셨던 게 문득 생각나서 핑크색 카네이션을 구매하기로 했다.
카네이션을 들고 와서 편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빠께
아빠, 평생 아빠가 지켜주신 소중한 울타리 안에서 크다가 무섭지만, 세상 밖으로 나갈 시기가 제 앞에 다가왔어요. 그동안 따뜻한 품 안에서 저를 사랑으로 지켜주시고 베풀어주시던 부분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감사함을 많이 표현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할 뿐입니다.
떠나는 시기에 아빠에게 좋은 모습만 남겨드려야 했는데 서운함만 안겨드린 것 같아 슬프네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아빠를 더 이해할 수 있고, 세상에 인정받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도록 할게요.
카네이션이랑 베고니아가 참 예쁘던데 물 주시면서 제 생각해 주실 거죠? 카네이션은 햇빛 좋은 곳에서 2~3일에 한 번씩 물을 주면 된대요. 저번에 빨간 카네이션 죽였다고 하셔서 더 키우기 쉽다는 핑크색 카네이션으로 샀어요. 오래 보시라고.
제가 아빠를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것을 꼭 알아주세요.
제가 만든 게임 엽서에 사랑과 존경을 담아, (COY는 일본어로 사랑이라는 뜻이에요)
새턴 올림.
편지를 쓰고 있던 그때, 돌아오실 줄 몰랐던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셨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공항까지 태워다 주시기 위해 밖에 차를 대기시켜 놓으려고 주차장으로 말없이 내려가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참 죄송하고 감사했다. 아버지는 며칠간 집을 떠나 계시면서 나에 대해서 무엇을 생각하셨을까, 무슨 생각으로 돌아오셨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아버지께 왜 더 따뜻하게 행동하고 다가가지 못했을까 하며 마음이 아려왔다.
아버지는 내가 떠나는 것을 기념하여 베고니아를 구매하셨다고 한다. 분명 내가 캐나다에서도 잘 지내기를 소망하시는 마음으로 데려오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이런 걸 직접적으로 표현해 주시면 참 좋을 텐데. 왜 이렇게 항상 간접적으로, 알아차리기 어렵게 표현하시는 건지 모르겠다. 나의 아버지니까 내가 이해해야겠지만 말이다. 내가 집을 나서고 나서 아버지가 나를 생각하시며 매일 베고니아에게 물을 주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시큰거렸다.
아버지가 주차장으로 내려가시고 나서 나도 따라 내려가기 전에, 조용히 식탁 위에 편지와 카네이션을 올려두고 갔다. 아버지와 화해한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두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직접 건네드리지는 않았지만 내 진심이 닿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도하고 집을 나섰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물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있었지만. 창밖을 내다보며 이 지겹고 보기 싫던 한국의 풍경도 그리울까 싶었다. 출국일에도 내가 끔찍하게 싫어하던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이 나를 반겼다.
공항에 도착해서 무거운 수하물을 하나둘 내리고 카트에 실었다. 아버지가 나를 어색하게 대하실 줄 알았는데 마치 싸우지 않은 것처럼 나를 대하셨다. 나와 떨어져 있는 동안 어떤 생각을 하셨던 걸까.
가족들은 내게 한동안 한국의 진짜 한식이 그리울 것이라며 한식당에서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식당으로 향했고 나는 육개장을 시켰다. 맛있었다. 한동안 정말로 이게 그립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식뿐만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친언니, 나 이렇게 넷이서 함께하는 식사 시간이 말이다.
이제는 정말로 가족들과 작별할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다 같이 가족사진을 찍자고 하셨고, 그렇게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버지, 어머니, 친언니와 차례대로 포옹을 나누었다.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정말 혼자서 다 해야겠네."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한국에서도 혼자 자취한 적도 없고 혼자 해외여행을 가본 적도 없었다. 이런 내가 타지에서 혼자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무서움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제는 나를 보호해 주실 부모님이 내 곁에 없다. 나 혼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밴쿠버의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해야만 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짐을 끌고 게이트로 향했다. 뒤를 돌아보니 가족들이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이제는 정말 혼자 헤쳐나가야 했다.
저녁 8시 45분 출국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아버지께 답장이 왔다.
편지 고맙게 잘 읽었어. 지금까지 대학 생활, 직장 생활 잘한 것 같이 거기서도 잘하리라 믿는다. 혼자서 헤쳐나가기 힘들겠지만 가족 모두 응원한다는 것 잊지 말고 용기 내서 침착하게 잘 이겨내자! 파이팅!
눈물이 흘렀다.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다.
언제나 그렇듯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말로 표현하는 것에 서툴다. 하지만 그 서투름 속에서도 진심은 언제나 전해진다. 아버지의 베고니아, 나의 편지, 그리고 아버지의 문자 한 통까지. 결국 사랑은 이런 것인 것 같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계속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
Written by Sat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