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전직을 위한 선택, 밴쿠버

나의 다음 스테이지가 시작된 서버

by 새턴 Saturn

한국에서 게임 기획자로 일한 지 1년이 넘어갈 즈음에 나는 더 이상 한국에서 별로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나는 원래도 한국에서 딱히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관심 있는 게임 장르는 '기능성 게임 (Serious Game)'인데, 해당 장르가 한국에서 그다지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능성 게임이란, 순수한 오락 이외의 주된 목적을 위해 설계된 게임이다. 즉, 유명한 것들을 예시로 들자면 포켓몬고, 피크민, 링피트, 듀오링고 같은 게임들이다.


이러한 게임을 주로 만드는 곳은 닌텐도밖에 없었기 때문에 학부를 막 졸업할 당시의 나는 일본으로 취업해서 경력을 쌓고 이직해서 어떻게든 나중에 닌텐도에 입사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처음에 일본의 게임 회사들에 문을 두드렸었고, 대기업 한 곳에서 면접까지 갔었던 것을 제외하면 전부 낙방하였다. 그렇지만 도전해 보았기에 후회는 없었다.


전부 탈락한 후에 다른 나라들의 게임 회사를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 보았으나, 한국에서의 경력 없이는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고 들어서 어떻게든 한국에서의 경력을 만들어서 해외로 나가보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국에서 운이 좋게 정말 좋은 대표님과 사수 분과 동료들을 만나 1년 정도 행복하고 값진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회사가 좋았던 것과는 별개로 내가 생각했던 도전적이고 창의적이고 선례가 없는 게임들은 현실적인 제약들에 가로막혀서 만들어질 수 없었다. 업계를 바꾸는 것도 잠시 고려해 봤으나, 난 게임이 아니면 도저히 뭘 하면 좋을지도 잘 모르겠기도 했었고, 다른 업계 현직자들이랑 대화를 나눠보아도 자신의 업계도 그런 문제가 있는 건 매한가지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쌓은 경력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서 더 많은 기회와 닿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정말로 어느 나라로 떠날 것인지 결정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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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들

나는 2024년 6월 - 7월에 애인과 스위스에 여행을 갔었다. 자연이 엄청나게 아름답다는 평가를 많이 듣는 곳이었기에 꼭 한번 스위스에 가보고 싶었다. 솔직히 가기 전에는 아름답다고 해봤자 '한국이나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느낌이랑 비슷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스위스의 대자연을 마주한 후, 나의 생각은 180° 바뀌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공기도 정말 청량하고 맑았다. 에덴동산이 실제로 있다면 분명 이런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스위스에서 머물렀던 숙소 뷰

나는 자연이 내게 주는 영향이 이렇게 큰 줄 전혀 모르고 살았다. 스위스 여행을 다녀오고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풍경들을 쳐다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고, 매 순간 들이쉬고 내쉬는 공기가 깨끗할 때 그것이 가져다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 지 느꼈다. 이런 부분들로 인해서 나의 전반적인 삶의 질 자체가 차이가 난다고 느꼈다.


개방적이고 퀴어 프렌들리한 환경과 문화도 내게 크게 작용했다. 감사하게도 한국에서 지낼 때도 주변에 좋으신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개방적이고 퀴어 프렌들리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에서는 내 정체성이나 가치관에 대해서 숨기고 살아야만 했던 순간들이 꽤나 있었다. 이로 인하여 받는 스트레스도 적다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보다 나에게 크게 영향을 주고 있었음을 실감했다.


그래서 해외에 나간다면 꼭 자연이 멋지고 퀴어 프렌들리한 나라로 가보고 싶었다. 그런 곳에서 오랜 기간 살아보고 싶었다. 규모 있는 게임 회사들도 있으면서 내가 원하는 대자연과 퀴어 프렌들리한 환경이 있는 곳이 어디가 있을까 열심히 자료 조사해 봤을 때, 캐나다 밴쿠버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리고 추가적인 조그마한 이유도 있다. 사실 나는 사주를 공부하는데, 사주적으로 나와 가장 잘 맞는 곳이 캐나다 밴쿠버이기도 했다. 사주부터 보고 골랐던 도시가 아니었는데 참으로 신기했다. 운명적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떠나왔다. 캐나다 밴쿠버로.




Photographed & Written by Sa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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