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딸 이야기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나는 힘이 있다

by FriendlyAnnie

오늘은 주말이지만 나머지 일이 있어서 출근을 하였다. 출근하는 길에 운전을 하면서 딸이 작곡한 곡을 계속 들었다. 딸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아픈 사춘기를 지나온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아파왔다. 이제 다 지난 일이라고 웃으며 얘기 나누지만, 우리 가족의 마음 한 구석엔 그 시절에 대한 아픔이 있다.


우리 딸과 아들은 정확하게 12개월 연년생이다. 그래서 마치 쌍둥이처럼 지내왔다. 일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은 서로를 많이 의지하고 챙기면서 자라왔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은 한 살 아래의 동생을 챙기고 때론 힘들다는 응석에 비슷한 덩치의 남동생을 업어주기도 하며 누나 역할을 했다. 아들은 폭풍 같은 사춘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 아마도 중학교 1학년 초반 무렵까지 - 누나에 대한 의존도가 아주 높았다. 동생과 같은 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딸은 동생이 한참 방황하던 시간 동안 그 여파를 고스란히 떠 안았다. 학교에서 동생의 누나라는 이유 만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았고, 집에서는 동생의 문제에 정신이 없었던 부모들의 상태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이는 힘겨운 사춘기 시절을 보내기 시작했고, 상처로 가득한 마음을 안고 공부와도 점점 멀어져 갔었다. 음악을 하겠다고 학교 내에서 밴드를 만들어 음악 활동을 시작하더니, 수학을 포기하겠다 선언했다. 진로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니 기본적인 공부만 하자고 설득을 했지만, 아이의 마음을 완고했고 나는 아이의 의견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딸은 음악에 의지하기 시작했지만, 늦게 준비한 예술 고등학교 입시에 모두 실패한 딸은 더 절망적인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 당시 다행히 친구들과의 관계에 많은 위로를 받았던 딸은 친구들이 많이 가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우린 잠시 다행이라 생각했다. 학기 초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모든 것에 의욕을 되찾는 듯했던 딸은 친구들을 따라 갔던 고등학교가 수능대비 위주의 공부를 하는 자신에게는 벅찬 학교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딸은 다시 의욕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학교를 겨우 다녀오면 몸도 마음도 지쳐 침대에서 하루 종일 나오지 않았다.


예민해져 있는 딸에게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할지 막막해 하며, 한 학기를 보낸 어느 날,


'엄마, 오늘 데이트 할까?'


문자를 받았다.

오랫만에 딸이 먼저 건네온 제안이 반갑기도 했지만, 무슨 할 얘기가 있을 거란 예감을 했다.

역시 그랬다. 딸은 그간의 어려웠던 얘기와 더 이상 음악을 하는 자신이 그 학교를 다니기는 힘들 것 같다는 얘기를 어렵게 꺼냈다. 약간의 예감을 했던 상황이라, 그리고 그 동안 아들의 방황과 어려움에 조금은 단련(?)이 되어있었던 터라 나는 덤덤하게 얘기했다.


"그래, 엄마가 생각해도 우리 딸과 학교 상황이 맞지 않아 힘들 것 같았어. 엄마가 알아보니 검정고시를 내년 4월에 볼 수 있으려면, 7월 말까지는 자퇴 신청이 마무리 되어야 하는 것 같더라. 다음 주에 엄마랑 같이 자퇴서 내러 가자."


딸은 그 동안 말 못하고 혼자 고민해오던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으며,

나는 그 동안 혼자 힘들었을 딸의 마음을 생각하며,

둘이서 한 동안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마주 앉아 있었다.


자퇴를 하던 날, 날씨가 참 무더웠지만,

우리 모녀는 그 동안의 짐을 내려 놓고 새로운 시작을 할 생각에

무덥다는 생각보다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렇게 학교를 그만 둔 후,

지역 학교 밖 청소년 센터인 꿈드림도 찾아 보았지만,

활용을 하진 못했고,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딸은 오전에는 검정고시 학원을, 오후에는 실용 음악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난 2년 반이라는 시간은 딸에게는 편견과 맞서야만 하고, 함께하던 친구들도 각자의 생활이 있다 보니 혼자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 만으로 문제가 있을 거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친했던 친구들도 각자 입시 준비에 바빴기에 초기에 딸을 많이 외로워 하고 힘들어 했다.


사춘기 시절의 뇌는 어린이의 뇌와도 다르고, 성인의 뇌와도 다르다. 평생을 걸쳐 가장 불안정한 뇌를 가지는 시기가 사춘기라고 볼 수 있는데, 반면 뇌가 가장 많이 변화할 수 있는 시기가 이 시기이기도 한 것 같다. 방황하는 아들과 힘들어 하는 딸의 사춘기 시기를 잘 보내기 위해서, 나는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 힘들지만, 앞으로 조금씩 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찾아야만 했다.


먼저 경험한 엄마들, 특별한 사춘기 시기를 잘 이겨내고 잘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 그리고 많은 사춘기에 대한 강연과 책들을 통해서 나의 태도를 바꾸어 가기 시작했다. 특히 청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많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 동안 내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리의 사회 시스템, 교육 시스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고정관념들을 하나씩 버리고 우리 아이들과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겠다 결심했다. 그리고 하나씩 실천해 나가기 시작했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인 관념 때문에 아이들을 일반적이고 평균적이라 여겨지는 상황의 틀에 억지로 매어 놓지 않겠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이 실수하고 엎어지고 돌아가는 것을 꿋꿋이 지켜봐 주겠다. 내가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길로 아이들을 몰아가려는 욕심을 버리자.


아이가 선택하는 길은 무조건 지지해 주자. 비록 실패하더라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기다려 주자.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표현해 주자.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방황하던 아들도 스스로 결정하여 검정고시를 보고 합격을 하였고, 다음 걸음을 떼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힘든 시기를 잘 견뎌준 딸은 더욱 단단해 지고, 원하던 첫 번째 소망을 이루었다. 실용 음악을 하면서 대학 진학은 필수는 아니지 않냐는 나의 의견에 딸은 고등학교 생활을 못해 아쉬움이 있다며 대학을 가고 싶다고 했고, 스스로 노력하여 첫 소망을 이룬 딸은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아무리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그래도 아이들은 미숙하니 가이드를 해주어야 한다.'


는 것이었다.


이제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나는 힘이 있다는 믿음이 더욱 확고해져 가고 있다.

아들이 방황하고 사고를 치고, 실수를 해도 변화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면서 아들의 선택과 책임의 시간을 지켜봐 주었다. 아들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딸의 낮아진 자존감에 마음 아팠지만 결국 그 자존감을 되찾는 것도 자신이 스스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생각하며, 그 아픈 시간들에 사랑하는 마음만 주었다. 아이들은 결국 스스로 조금씩 자라나고 있고, 단단해져 가고 있다. 일반적인 성공의 기준을 가져오지 않고 아이들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니 이제 가족 모두가 평온하고 행복함을 느낀다.

그 평온함과 행복 속에서 아이들은 한 걸음 씩 더 나아갈 용기를 가지게 되리라 믿는다.


https://youtu.be/x5KG4mKAM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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