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토요일이지만 학원에 나갔다. 우리 초등 4학년들과 컵라면을 먹기로 2주 전부터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치킨과 피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간혹 싫어하는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컵라면을 싫어하는 친구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주로 저녁에 수업이 있어 배고파 하는 중딩들을 위해 준비해 둔 컵라면을 늘 탐내던 아이들 소원풀이 겸 아이들과 편안하게 시간을 한 번 보내고 싶은 마음에 토요일에 약속을 잡았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김치도 가져오라며 한껏 들떠 2주 전부터 오늘을 고대했다.
오늘 온 친구들 중 벤자민이라는 친구는 처음 우리 학원에 왔을때 아주 불안정하고 예민한 아이였다. 늘 엄마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잘 할 수 있는 것도 못할까 두려워하고 조금만 뜻대로 안되면 짜증내고 울어버리는 아이였다. 심지어 가방 끈이 꼬여도 꼬인 가방 끈을 붙들고 울던 아이였다. 늘 짜증내고 화내고 울어버리는 아이와 일 년 가까이 진심을 담아 소통하며 실수해도 괜찮음을 실수를 통해 우리는 배울 수 있음을 끊임없이 얘기해 주었다.
일년이 지난 지금 벤자민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줄어들고 자신의 얘기를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풀어내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
젊은 시절 아이들을 처음 가르치기 시작했던 나는 아이들이 버릇없이 굴거나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할 때 원칙만을 적용해 아이들을 혼내던 선생님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원칙적으로 아이들을 판단하고 지적하고 혼내기 보다는 아이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음을 깨달아 왔다.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가진 불안함을 하나씩 풀어나가면서 이젠 아이들을 엄하게 혼내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랑이 답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 좀 알것 같다고나 해야할까. 진심을 담아 주고 받는 아이들과의 대화는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말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건성으로 듣고 어른들이 하고싶은 말만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늘 가르치려고만 하며 정해진 답을 말하고 행동하기를 요구하기 쉽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말을 조심하고 줄여간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우리는 종종 잊고 지낸다.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귀를 기울여 보면 아이들 나름대로 저마다의 생각이 있고 소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든 일상의 장소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귀를 기울여 줄 수 있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컵라면을 먹으면서 아이들의 얘기를 듣다보니 아이들이 그렇게 많은 생각이 있음을 미처 몰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벤자민은 오늘 자기 집만의 특별한 오이 김치 레시피를 아주 논리적으로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아이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 오이 김치를 한 번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에 대해서 다양한 언어로 설명하는 벤자민에게 맛 칼럼리스트가 되어도 좋겠다고 했더니 자신의 직업리스트 중 하나라고 했다. 또 한 친구는 올해는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고 모든 과목을 백점을 맞고 싶다고 했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큰 친구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구체적인 소망과 생각이 있었다. 아이들의 얘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과 한층 더 가까워진 듯한 오늘이었다. 역시 아이들은 재잘거려야 한다. 아이들이 공부와 어른들이 정해 놓은 틀에서 기가 죽고 말 수가 줄어가기 보다는 맘껏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일상을 보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