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이초 선생님의 49제 추모일이자 교권 회복을 위한 선생님들의 대규모 집회가 있었던 날이다. 나도 아이 둘을 기르면서 공교육 현장을 경험했던 학부모로서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이들이 고1 1학기를 마치고 둘 다 자퇴를 하게되었던 부모로서의 생각, 학교밖 청소년 연구소에서 많은 은둔 청년들의 멘토로서 활동하며 들었던 생각, 그리고 지금 추락한 교권을 되돌리기 위한 선생님들의 처절한 절규를 보면서 드는 생각들이 뒤범벅이 되어 머리도 마음도 어지럽기만 하다.
도대체 우리의 학교 현장은 왜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렸을까? 아이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더 이상 안전하고 행복한 가르침과 배움의 터전이 아닌 학교.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라는 기본적인 질문이 던져지는 순간이다.
사교육 현장에서 25년 이상을 일하면서
공교육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를 간절히 바랬고 내가 사교육에 몸담고 있음이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 최대한 공교육과 상충되는 교육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는 고민을 해왔다. 사교육 때문에 공교육이 더욱 어려운 면이 있기도 하고 공교육만을 의지하면 아이들이 뒤처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우리의 교육 현실. 어디서 부터 잘못된것일까? 늘 고민하는 25년이었다.
25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참 많은것이 변해왔다. 학교시스템도 선생님도 학생들도 학부모도 모두 너무 많이 변했다. 학생도 학부모도 선생님도 많이 변했지만 그 모두가 변해온 데는 학교시스템과 제도의 변화가 큰 역할을 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학생 인권조례와 학교폭력위원회의 운영이었다. 학생인권조례로 선생님들은 학생의 훈계가 힘들어졌고 학생들과의 진심어린 소통에 벽이 형성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학교폭력위윈회의 운영이 시작된 후로 아이들 사이의 문제는 소통으로 해결될 기회가 사라지고 가해자와 피해자로 아이들을 분류하고 법적 대응을 하고 처벌만이 난무하는 상황이 전개가 되었고 그것을 악용하는 아이들, 학부모들, 심지어 선생님들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런 시스템 속에서 입시와 관련된 생기부에 불이익을 보지 않으려는 학부모와 생기부 작성을 학생들 지도에 이용하는 상황들도 생겼다.
사실 우리 세대만 해도 선생님을 존경하고 어려워하는 부모들이 많았던것 같은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선생님의 조치에 학교로 달려가서 항의하는 부모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직도 선생님을 어려워하고 존중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자신의 아이들이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의견을 내는 부모도 적지 않다.
때로는 아이들이 선생님께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은 실제로 선생님들이 지도하기에 더욱 어려워 진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학교를 벗어나는 아이들도 학교를 벗어나는 선생님들도 더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학교 안에 있는 모두가 힘들다. 과연 어떻게 우리는 학교에 산재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학생도 선생님도 행복한 학교를 이루어 낼 수 있을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제도나 규범이 아무리 강화가 된다고 그 문제들이 해결되진 않을거라고 본다. 인권조례나 학폭법 강화보다는 진정으로 학생과 부모, 그리고 선생님이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시스템 마련과 그러한 시스템의 보장 속에서 벽을 허물고 소통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학부모도 선생님을 존중하여 소통하고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생각을 나누고 선생님들도 조금 힘든 아이들에 대해서 사랑이 어린 소통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상태에서는 소통하는것 자체가 두렵고 무섭다. 의도하지 않게 제도와 규칙만이 강조되어 열려있는 소통이 힘드니 우리 모두에게 적극적인 소통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다.
학생과 선생님을 편가르기 하고 서로를 경계하게 만드는 인권조례나 학폭법이 아닌 소통을 통해 문제해결을 할 수 있는 제도개선이 시급하고 우리 모두의 마음에 인간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스며들어야 지금의 사태는 해결이 되고 공교육이 되살아 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