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인라인을 함께 타고, 캠핑도 함께 다니는 등 아이들과의 추억거리를 제법 많이 만들어 왔던 것 같다. 힘들지만 아이들을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살아왔다. 돌이켜보니 나는 대다수의 부모들이 추구하는 양육관을 가지고 있진 않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일을 하셨고,
동생과 나는 방과 후 부모님이 퇴근하실 때까지
우리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공부는 아이들이 하는 거지 부모가 개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학교 생활 역시 부모의 개입 없이 아이들과 선생님이 소통을 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사교육에 몸담고 있었지만 내가 가르치는 친구들도 급하게 시험만을 위해서 공부하기보다는
시간이 걸려도 쌓여가는 공부를 하도록 이끌었고,
진정으로 읽고 경험하여 아이들이 배움 자체를 기뻐하길 바랬다.
아이들을 각박한 입시의 소용돌이 속으로 억지로 밀어 넣고 싶지 않았던 나의 교육관이 작용을 하였는지
아님 타고난 기질이 발휘가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쫓기는 공부를 거부했고
중학교 2학년 시점에 둘 모두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고
손을 놓았다. 아이들이랑 많이 씨름도 하고 달래도 봤지만, 그 어떤 것도 아이들의 공부에 동기를 부여하지 못했다.
우리 아이들은 친구들 그룹에 섞여 영어를 내게 배웠는데, 영어를 곧잘 하고, 친구들을 리드하는 친구들이었었기에 처음엔 학습 의욕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모습에 당황스럽고, 화도 나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우리 아들은 친구 관계로 인한 많은 방황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힘든 2년을 보냈다. 2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빠르게 지나갔다. 처음에 당황하고 슬펐던 나는 답답한 마음에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 있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도 못할
만큼 사회적인 압박을 느꼈다.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조차도 의논하기 힘든 문제들이 생기면서 난 세바시나 유튜브 강연, 그리고 청소년기를 다룬 책들을 읽어대기 시작했다.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렇게 공부하는 과정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세바시 강연에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청년 강사 블로그에
이웃 신청을 하고,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강사에게서 너무나 성의 있는 댓글 답변을 받으면서 감동했고, 그 강사의 강연이란 강연은 모두 찾아보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 강사가 진행하는 스터디 파이 '미라클모닝' 스터디에 참가하는 용기를 내었다. 그것이 나의 기적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 나는 많은 청
년들을 만날 수 있었고, 청소년기의 방황과 아픔이 그 이후에 스스로의 인생을 찾아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누구나 사랑해 주고, 믿어주고, 기다려 주면 스스로 자라날 힘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아들아, 방황해서 고마워!'라는 마음이 생기기까지
1년 반의 시간이 걸렸다. 이제 자녀의 방황으로 힘들어하는 많은 엄마들과 나누고 싶다. 아들이 방황해도 용기를 가지고 자녀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그리고 스스로 행복을 찾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함께 키워 나가고,
그 행복 찾기를 실천하는 방법들을 실질적으로 나누고 싶다.
다른 세계를 바라보다.
'아들아, 방황해서 고마워!'
너의 방황은 엄마에게 이 세상 더 많은 곳을 향해 바라볼 수 있는 넓은 시야를 선물해 주었고, 사회적 관념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찾을 수 있게 해 주었고,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