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우리의 의지로 만들어 가는 기준 보다 이미 오랜 세월 먼저 살아온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져 우리가 지켜 나가야 한다고 믿는 기준들이 많이 있다. 그 기준의 제한에 걸려 우리들은 스스로를 속박하고, 괴로워하고, 때로는 자책하고 슬퍼하기도 한다.그 중 내가 떠올려본 몇 가지 예들은 남편과 아내의 역할, 교복, 학생의 화장과 염색, 학교 등이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
나는 20년 가까이 이 가정 내에서의 아빠와 엄마의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과 기준에 얽매여, 나 자신을 괴롭혀 왔다. 결혼을 하면서 내가 그렸던 결혼생활은 남편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고 아내는 자녀를 잘 길러야 하는 의무가 있기에 가사와 육아에 집중하면서 소득활동은 남편을조금 도울 수 있는 정도로 하는 것이었다.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정해진 가정의 모습이라고 여겨왔고 아직까지도 그 기준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하지만 지난 20년 간 세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다양하게 변화해왔고, 가정의 형태도 가족 구성원의 역할도 급속도로 변해왔다. 엄마가 소득활동을 하고 아빠가 가사를 담당하는 가정, 아빠가 1인 기업으로 재택 근무하는 가정, 주말부부 가정, 기러기 가정, 이혼 가정, 재혼 가정 등 달라진 가정의 형태 속에서 가족 구성원의 역할도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나의 생각의 기준은 수십 년 전에 형성된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에 머물러 있었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아빠의 역할만을 생각하니 가정의 경제를 온전히 책임지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끊이지 않았고, 떠밀리다시피 경제적인 가장 역할을 하다 보니, 또 전통적인 엄마의 역할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원망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등이 뒤범벅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많은 엄마들이 이러한 기준으로 인해 현명한 아내이자 어머니 역할을 강요받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제 변화하는 세상에 따라 우리는 스스로의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엄마 역할을 해 나가도 되리라 생각한다.
교복
여러분은 교복 세대인가? 1980년대에 잠깐 중고등학교 교복 자율화 시대가 있었고, 나는 중학교 시절은 교복을 입지 않았다. 그 당시 복장으로 문제가 있었던 기억은 없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교복 착용이 다시 시행이 되어 졸업할 때까지 2년 교복을 입었는데, 초반엔 안 입던교복을 입으니 정장을 입은 듯 멋지다는 생각을 했지만 학생 신분으로서 공부를 하거나 활동을 하는데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다. 나와 친구들은 늘 교복 안에 체육복을 접어서 입고, 등교 시에 교문만 통과하면 교내에서는 체육복으로 지냈다. 선생님들이 볼 때면 교복 안의 체육복을 접어 올려 숨기곤 했던 기억이 난다. 한 교실에 60명의 학생이 움직일 공간도 없이 앉아 수업을 듣던 시절이었고, 우리 스스로 결정하며 되고 싶은 대로 꿈을 가지던 시절이 아니었다. 무엇을 하고싶은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기에 교복 착용 여부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 같은 것은 묻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정해진 규칙을 우린 열심히 지켰었고, 단 한 번의 의문도 갖지 않은 채, 교복의 불편함을 감내했다.
우리 아이들은 중학교를 가고 한 학기가 지나고부터 교복에 대한 불편함을 얘기했다. 딸은 여학생용 셔츠와 치마에 대한 불편함과 겨울의 추위, 스타킹 착용의 불편함을 얘기했고, 아들은 셔츠, 넥타이, 조끼, 자켓 모두 불편해서 가능하면 하나씩 이라도 빠뜨리고 입으려고 했다. 그리고 교복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서 학교에서 매일 선생님들과 갈등이 생기고, 교복 미착용이여러 번 걸리면 선도위원회에 넘겨 지기도 했다. 이전에 나는 교복을 안 입어서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동안 학교에 관한 많은
다큐멘터리와 책을 읽고 나서 나의 신념이 바뀌었다.
교복 착용 제도는 중고등학교에서 빨리 없어져야 하는 제도라 생각하게 되었다. 불편한 디자인과 옷감으로 제작된 교복은 아이들의 활동권과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비용면에서도 부담이 크고(비록 지자체마다 지원이 있긴 하지만 번갈아 가며 입히려면 추가구매는 개인의
부담이다) 매일 매일의 등교시 교사와 학생 간의 갈등 요소이다. 이것은 꽤 심각한 상황이라 생각한다. 하루를 교사와 학생이 갈등으로 시작하니 당연히 원활한 하루가 되기는 힘들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이우 중고등학교에서는 교복을 입지 않는다. 이우학교의 한
교사는 다큐멘터리 인터뷰에서 교복을 안 입으니 아침 등교 시 아이들과의 갈등이 없어서 좋다고 얘기를 하기도 했다. 현재 교복 자율화 문제가 공론화되고 있으니 빠른 시일내에 학생 통제와 관리의 미명 하에 시행되고 있는 교복 착용 제도가 사라지길 바래 본다.
학생의 화장과 염색
요즘은 여자 아이들은 초등학교 5~6학년만 되어도 간단한 화장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교복에 이어서 중학교에서는 등교시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화장여부 가리기 시비가 벌어진다. 한 번은 우리 딸은 노메이크업 등교를 하는데 얼굴이 너무 하얗다며 물티슈로 화장을 했는지 확인을 했다고 한다. 아이는 하지 않았다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선생님에게 실망을한 눈치였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화장은 단속의 기준이 애매하고일일이 가려내기 어려운 면이 있다며 학교에서도 단속의 정도가 많이 약해진 듯 하다. 나도 딸래
미가 화장을 처음 시작할 때는 많은 고민을 했다. 명절에 고향에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갈 때지우고 가자는 말을 따라주지 않는 딸 때문에 갈등이 있었던 적도 있다. 그렇지만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고 발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아이는 어쩌면 더욱 건강한 아이일지도 모른다.화장도 해보면 자신한테 맞는 방법과 정도를 알아갈 것이다.
염색
염색 얘기를 꺼내자면 웃음이 난다.
방학 때 염색을 하고 개학을 하면 다시 흑발로 염색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왜 그런 쓸데 없는 짓을 하냐고 얘기를 했지만, 결국은 방학 때마다 아이들은 염색을 하고 학기가 되면 다시 흑발로 염색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딸래미는 고등학교 입학 전 겨울에는 탈색을 하고 빨강 반 파랑 반으로 염색을 하고서는 묶을 때는 태극마크라며 자기의 염색
실력을 뿌듯해 했다. 3년쯤 지나면서 나도 적응이 되어 파랑머리 딸이 그렇게 불편하진 않았다. 올 해 고등학교 가는
아들도 누나의 뒤를 이어 이번 방학은 탈색한 노랑머리 총각이다.
3년 전만해도 나는 다른 이들의 기준과 시선에 민감했고, 그들이 우리 아이들을 편견으로 대할까 걱정이 되어 전전긍긍하며 아이들을 말렸다. 이젠 파랑머리 노랑머리도 예뻐 보인다.서울 지역의 58.3%의 중고등학교가 올해부터 염색 허용을 하기로 했다고 하니 이제 염색으로 인한 아이들과의 갈등은 점점 줄어들 듯하다.
학교
이제 학교 얘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초중고 다니는 동안 연탄가스를 마셔서 병원에 실려가서 죽을 뻔했던 날 하루 빼고는 결석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것을 무척이나 뿌듯해하며살아왔다. 나의 성실함과 건강함의 상징인 것처럼. 그래서 학교를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것은 아주큰 일이 나는 것처럼 생각했다. 학교에 관한 나의 기준은 그러했다. 꼭 다녀야 하는 곳이며, 지각이나 결석을 해서는 안되는 곳. 그런데 아이들이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학교를 지각하기도 하고 딸래미는 생리통으로 인한 결석이나 조퇴가 가능한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어 했다.
그런딸에게 원칙이 중요했던 무지막지한 엄마는 어떻게 했겠는가? 우리가 학교 다닐 땐 아파도 참고 학교 가서 양호실 갔다. 엄마는 한 번도 그걸 핑계로 학교나 직장을 빠져본 적 없다. 그렇게 성실해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등 우리 세대의 기준으로 아이를 훈육하였다. 이미 이 아이들은 우리랑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지나고 나서 나는 그 시기의 딸의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하게 될 학교에 관한 내용에 다시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환경의 변화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시험 중심의 특수한 공부에 대한인식으로 인해 학교의 역할이 많이 변화하였다. 공교육에서 벗어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우리세대이지만 이러한 교육 환경의 변화로 공교육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대체 방법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수많은 대안학교들이 등장했고,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학교를 벗어나는 아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딸도 음악을 한다고 고등학교 1학년 한 학기를 다니고 학교를 그만 다니게
되었다. 딸에게 목표가 있기에, 그리고 그 간 딸이 음악을 하기 위해서 해 온 노력을 알기에, 큰고민 없이 지지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시선은 그리 좋지가 않다. 그것 또한 딸과 우리가 목표를 향해 가기 위해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학교를 안 다니면 큰 일나는 줄 알았던 꽉 막힌 엄마가 그 기준에 의문을 갖고 변화하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지만후회를 하지는 않는다. 인생을 한 방향으로만 가란 법은 없다. 아이가 좀 더 어려운 길로 가더라도 자신을 믿고 나아갈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우리들은 기존의 관념적 기준들에 의해 제한적인 사고를 가져왔다. 우리가 정한기준도 아니고 왜 그런 기준이 생겼는지도 모른 채 아무런 의문 없이 그 기준을 따라가는 것은 우리 삶을 버겁게 만들 뿐이다. 수십 년, 수백 년 계속되어온 기준들에 대해
“이 기준은 왜 생겼는가?”
“이 기준이 아직도 괜찮은 것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도록 하자.
지금 우리에게 괜찮지 않은 기준이고, 변화되어야 하는 기준이라는 생각이 우리 안에 있다면, 적극적으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기준을 바꿔보자. 세상에 영원한 기준은 없다. 모두가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기준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의 눈, 나의 마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은 남이 아닌바로 자기 자신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남들은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다. 남의 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나 자신의 ‘철학’과 ‘삶의 가치’를 만들어 간다면 남의 눈과
평가는 나를 많이 힘들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늘 자식들을 볼 때 마다,
“제발, 평범하게만 살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 걱정 한 번 안 끼치고 열심히공부하여 최고의 대학에서 입학을 한 동생이 대학 시절 학생 운동을 하느라 수배 당하고, 몇 년을 쫒기어 살기도 하고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었으니, 그 어려운 시절을 지낸 부모님들은 이제자녀들이 남의 눈에 띄어 고생하는 것 보다는 조용히 평범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시는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다. 사실, 나도 그랬다. 40년 이상을 난 남들이 보기에 평범한 삶을 살
것이라 꿈꾸었고, 그렇게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래서 부모님들께 잘하고, 좋은 아내가 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남편과 아들의 방황으로 깨달았다.
열심히만 살면 안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남이 보기에 좋은 모습의 나로 살아오다 상황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내 마음은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진다. 뒤늦게 다른 이들을 탓해 보아도 그 누구도 내 마음을 돌아봐 주지 않는다. 이제부터 라도 우리는 내 마음이 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삶의 철학과 가치, 즉 물질과 명성이 내게 왔다가 가더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철옹성,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