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육아에 대한 편견과 오해

아들아 방황해서 고마워_02 나의 자유의지가 발현

by FriendlyAnnie

# 육아에 대한 편견과 오해



어느 누구도 완벽한 부모는 아니다

멀리서 보면 별일 없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도 가까이 클로즈업하면 갈등이 모두 있고 그 갈등의 요인은 너무나 다양하고 가족이기에 겪는 어려움들이 많다. 요인도 다양한 만큼 해결 방식들도 다양하고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들도 다양하다.


한 때는 아이 셋을 모두 명문대에 진학시키거나

아이비리그에 진학시키는 등 자녀 교육에 굉장히 성공했다는 부모들의 강연이나 책들이 인기가 많았다. 지금도 물론 많은 부모들은 자녀의 성공적인 진학이 곧 자녀교육의 성공이라고 믿고 그것을 모델 삼으려 한다. 하지만 디지털화로 인한 아이들의 교육 환경의 변화가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 현재는 부모들은 자녀

양육에 대한 가정과 부모의 역할에 대한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도 그러한 부모 중 한 명이다. 내가 겪은 경험들을 다른 많은 부모들도 겪어 나가고 있고 앞으로 겪어 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이 디지털 과도기의 부모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과정 중에 우리가 범할 수밖에 없는 오류들은 무엇인지! 다른 부모들과 공유하고 함께 공부하여 미래에는 부모들이 이 불안정하고 대비되지 않은 디지털 시대에서 겪은 어려움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바라는 선에서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 아이도 엄마도 모두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노력을 함께하길 바라본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것을 위한 실천을 해 나가고자한다.


아이들도 부모인 우리도 처음 접해본 이 디지털 시대에 부모로 살아가는 데는 정답도 없고, 아직 명확히 만들어진 기준도 없다. 이전의 그 어느 시대보다도 우린 부족한 부모로 살아가게 되기가 쉽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고, 좋은 직장에 취직 시켜야 자녀 양육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우리와 비슷하게 자녀가 학업에 충실하거나 뛰어나지 않으면 집안의 불명예로 생각하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변하고 있다. 아이들은 부모와 집안 환경에 의해서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많은 다른 환경과 다양한 삶의 방식에 노출이 되어 있고, 아이들은 세상을 탐색하고 싶다. 자신이 몰랐던 세상 너머를 탐색하며 나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한 아이들의 호기심이라는 그물에 좋은 것들만 걸려들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부모인 우리는 아이들에게 나쁜 것은 모두 걸러서 보여주고 싶다.

그렇지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모로서 어떻게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그러나 모두가 진정한 부모이다
진심이 아닌 부모는 없다.

우리가 좀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식이 엎어지는 것도 지켜봐 줄 용기가 있어야 한다. 엎어질까 두려워하는 것은 자식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자식이 더디 갈까 실패할까 낙오될까 걱정되어 자녀의 인생에 개입하는 오류를 범한다. 물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는 긍정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춘기를 맞이한 아이들에게는 우리의 개입을 점점 줄여 나가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과정을 겪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엎어져 본 아이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자녀가 엎어지고 넘어질 때 손을 잡아 끌지 말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믿어주고 기다려주자.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도록 사랑을 표현해주자.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우리가 좀 더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아이들이 될까 하는 것이다. 자녀가 혹시 지름길로 가지 않고 오래 돌아가고 있어서 불안할 수도 있다. 자녀가 심하게 흔들리고 엎어지고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고 있어서 안타까울 수 있다. 그런 때에도 타인들에게 부족한 부모로 비칠까 걱정하지 말자. 타인들의 생각과 판단은 잠시 접어두자. 어느 누구도 완벽한 부모는 될 수 없다. 지금까지 뜻하지 않게 길을 잘못 들어섰다면, 지금부터 제대로된 길을 찾아 나서면 된다. 진심을 담아서 아이를 사랑해주고, 믿어주고, 기다려 주자.


달리 생각하는 아이 의논하고 지지해주기

아이가 고등학교 미진학을 선택하는 것이 엄마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마시고 다른 이들의 질타에 속상해 하지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급변하는 세상 속에 아이들마다 아주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고 평범하게 조용히 다른 이들 가는 길로 가는 것만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방황하고 조금 더 늦게 돌아가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경험하고 느껴보고 또 다시 수정해가면서 진정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고
믿어 주시는 건 어떨까요? 엄마가 두려워하고 흔들리면 아이는 더 설 곳이 없을 거예요~~
파이팅입니다~^^

-세학자(세상이 학교인 자녀를 둔 부모의 모임) 어느 부모님의 글에 대한 나의 답


잘못 길렀다고 자책하지 말자.


아이의 영혼은 하늘과 직거래를 하는 것이라는 김미경 강사의 말에 위로를 받아본다. 범죄자의 아들도 그 환경을 극복할 깨끗하고 착한 영혼을 가지고 태어날 수도 있고 정말 착하고 정직한 엄마에게서도 많이 방황하는 영혼이 태어날 수도 있다는...


열심히 살아온 엄마들은 아이를 잘못 길렀다 자책 말자. 착실하게 공부를 잘하고 보편적인 기준 안에서 성공하는 아이들을 잘 길렀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방황하는 우리 아이가 바닥을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더 잘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방황하는 정도가 강해지고 비정상적인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은 호르몬의 변화와 뇌의 발달 상태가 크게 영향을 미친 탓이다. 우울증이 청소년기에는 성인과 다르게 나타난다고 한다. 어른은 슬프고 기운이 없어 보이는 반면 십대(특히 남자아이들)는 방에 틀어박히고 짜증을 잘 내고 자기비판, 좌절, 분노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더 어린 아이들의 우울증은 보통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 징징거림, 수면장애, 매달리는 성향 등의 증상으로 나타난다. 청소년기 우울증 증상은 이들이 겪는 다른 발달과 행동상 변화에 가려져서 진단이 늦어지기도 쉽다. 수면과 식성 변화도 우울증의 일부일 수 있다고 한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십대의 다수가 친구, 가족과 관계가 힘들어지고 학업도 어려워지고 범죄나 자살의 위험이 급격히 높아지는데도 불구하고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다. 나도 아들의 방황을 겪기 전에는 내가 이런 청소년의 방황은 남의 얘기로 평생을 살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어느 부모나 겪을 수 있고, 부모라면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문제의 늪에 빠지지 말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키워야 한다.


아들의 방황으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싶었던 나는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부를 했다. 그 중 가장 많이 의존했던 것이 독서이다. 처음에 사춘기와 학교를 주제로 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지만, 읽을수록 사춘기의 문제는 오로지 사춘기 한 시기의 문제만이
아님을 느꼈고, 읽는 책들의 영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영역을 넓혀가던 중 읽었던 책 중 한 권이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이었다. 사실 아들의 선도위원회와 학교폭력위원회에 불려가게 된 나는 아이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고 폭력이라는 단어를 너무나 가혹하게 적용시키는 학교의 시스템에 회의를 느끼고,
도대체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서 학교폭력, 가해자, 피해자 등을 키워드로 도서를 검색하던 중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청소년기의 방황과 뇌의 관련성에 대해서 처음 깊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의 두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인 수 클리볼드가 자신의 고통을 동력으로 삼아 세상에서 그녀 자신이나 그녀의 아들, 그리고 그 아들이 죽인 희생자들이 겪은 고통을 줄어들게 하려는 기록, 즉 수용의 이야기이자 투쟁의 이야기로써
쓴 글이라 하는데 읽는 내내 마치 내가 이 엄마가 된 듯 한 슬픔 마음으로 읽어내려 갔다. 수 클리볼드는 모든 이에게 더 안전한 세상을 원했다. 아이들의 우울증과 뇌건강에 관련하여 우리가 미리 불행을 예방할 수 있기를 원했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는 늘 우리의 양육 태도를 되돌아보고 고민한다. 육아 전문가들은 자신 있게 아이에 대해 설명을 하고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조언을 해주고, 온갖 육아서에서 자녀교육에 성공한

엄마들이 자신들의 양육 방식을 정답인 것처럼 피력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다르고, 내 아이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히 얘기하는 ‘보통아이’의 틀에 맞추어 우리 아이를 바라보고 잘 크고 있는지 판단한다. 보통이라고 간주되는 ‘트랙’ 위에 있다면 아이에게 어떤 문제도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딜런과 그의 엄마 수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우리의 아이들과 엄마들의 양육방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책은 모든 부모들이 운명공동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내가 아이를 어떻게 잘 키워가고 만들어 갈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한지 안녕한지에 나의 존재가 위태로이 직결되어 있음을 일깨워 준다. 아이
를 ‘이상적인’ 모습과 비교하며 그렇게 되기를 소원해 왔던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었다. 사랑스러웠던 아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을 받아들이고 피해자들에게 참회를 하면서 남아있는 끔찍한 현실을 십자가를 지고 걷는 듯 뼈를 깎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어 사회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육아의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돌리는 문화 속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불안하고 답답한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아이가 잘못을 하면, 부모가 죄인이 되는 풍토 속에서 죄인처럼 살아가는 부모들이 많을 것이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의 ‘양육 가설(The Nurture Assumption: Why Children Turn Out the Way They Do)’이라는 책에서는 부모는 아이의 성격이 결정되는 데 (유전적인 영향을 제외하면)

별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아이들은 집 밖에서 또래들과 함께하는 환경 속에서 사회화되고 성격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육아의 책임은 더 이상 가정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와 사회가 함께 다같이 아이들을 키운다고 생각하고 내 아이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육아에서 벗어나고 서로의 고통과 상처를 함께 수용하고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다면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그리고 공동체가 더욱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부모들은 이제 더 이상 오래된 과거의 교육에서 얻어진 자신들의 기준으로 아이들을 판단해선 안된다. 그리고 그 오래된 기준을 가지고 가축몰이 하는 듯 아이들을 몰고가서는 안된다.


아이들이 사춘기가 오고 1~2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리 딸, 아들은 개성이 강한 것 같다. 교복을 입기 싫어 매일 아침 씨름하고, 수학 공부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오랫동안 우리 아이들의 영어를 가르쳐 온 나는 아이들이 학습 능력이 없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데, 중학교에 들어간 지 1년이 지나고 난 후 두 아이는 모두 수학을 포기했다. 수학을 포기한 두 아이는 현저하게 학습에 대한 의욕을 상실하였다. 영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에 흥미를 잃었고, 간혹 관심과 용기를 주시는 선생님들의 과목에서는 약간의 의욕을 보였다. 첫 째인 딸도 사춘기를 겪으면서 온몸으로 자신을 표현하였고, 둘째인 아들은 친구들과의 관계에 집착하면서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결국 아들은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치르는 무렵부터 무단 외박을 하기 시작하고, 여름방학 동안 폭풍처럼 방황을 시작하더니 2학기를 시작하고 2달 동안은 집을 며칠씩 안 들어오고 학교를 이탈하고 칠 수 있는 사고는 다 치고 다니게 되었다. 그 모든 일이 너무나 순식간에 시작되고 진행이 되었다.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 까지는 그렇게 극단적인 일들이 일어날 것을 상상하지 못했었다. 난 아이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는 엄마는 아니었지만, 내심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처음 공부에 손을 놓기 시작할 땐 많이 놀라고 실망하고 화나고 슬펐던 것 같다. 그 당시 내 잠재의식 속에는 아이들의 방황과 학업부진이 일하는 엄마인 나의 탓으로 돌아올 것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질수록 실망을 했고, 딸래미가 화장을 짙게 할수록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를 신경 썼고, 아들의 방황을 가족들에게 보이는 것이 두려웠다.


매일 밤 퇴근해 돌아오면,
나는 정말 복도 없지…
부모님 덕도 못 보더니
남편도 나를 힘들게 하고
이젠 아이들까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운이 없고, 가장 불쌍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아들의 방황이 계속되면서 그런 생각 조차도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아이가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아들의 방황은 어쩜 나를 부모로서 성장시켜 주기 위해서 시작이 된 것이
아닐까 한다. 난 스스로를 반성하기 시작했고, 아이에게 엄마로서 부족했던 지난날의 나에 대해 사과를 했고, 솔직하게 인정을 하고 나니, 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었고, 더 이상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일은 아들의 방황으로 서로를 원망하며 자주 다투던 우리 부부가 서로에게 양보를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남편을 원망하기 보다는 아들이 자신의 삶을 되찾도록 돕기 위해 우린 더욱 사이 좋은 부부가 되기로 했다. 방황하는 아이도 분명 변화하는 날이 온다. 사람은 누구나 잘 살고 싶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아이의 방황은 엄마만의 잘못은 아니다. 자책하느라 앞으로 행복할 수 있는 우리 아이와 나, 우리 가족의 삶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 모두 변화할 수 있다.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한 세상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많은 사람들을 위한 선을 함께 실천한다면,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다.


이상주의처럼 들리겠지만, 그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람과 어우러져 울고, 웃고, 싸우고 토닥여 주고, 돕고…그렇게 살아야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가진 존재이다. 아이가 지금까지 온 길을 보며 자책하는 엄마는 되지 말자. 지금 부터라도 아이가 엄마에게서 사
랑을 보고 느낄 수 있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자. 아이가 지금까지 온 길은 모두 괜찮다고 위로해 주자. 원래 나쁜 아이는 없고, 모든 아이들은 변화할 수 있고 꽃 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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