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속도로

불안과 조급함을 버리고

by FriendlyAnnie

달리기 계획 전면 수정


2024년 여름, 아픈 기간 동안에도 목표를 가지고 잘 달리고 싶었기에 컨디션이 조금 좋아졌다고 욕심을 부렸다. 한 유명 달리기 프로그램의 마라톤 목표 기록 훈련 프로그램에 등록해서 따라가다 2주 만에 완전히 퍼져버렸다. 지금의 내 상태로는 그 훈련들을 소화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신속히 받아들였다. 다시 최대한 자연스러운 속도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기로 마음먹어 본다.


달리기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로 했다.


2025 동아마라톤을 출전하려면 풀코스 5시간 이내, 하프 2시간 11분 이내, 10km 한 시간 이내의 기록이 필요했다. 그 당시 나의 상태로는 그 기록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할 가능성이 더 컸다. 그러니 출전 가능한 기록을 달성하는 걸 목표로 하지만 실패한다 해도 나를 너무 들볶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갑상선 항진증과 부신 호르몬 이상이 있는 상태에서는 쉽게 피로감을 느끼니까 극도로 피곤함을 느낄 때는 무조건 쉬기로 했다. 안된다고 속상해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나아가기로 다짐을 했다.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실망하고 체념하고 그만 두는 것이 최악의 선택이라 생각하며 조급함을 버리기로 했다.


그 사이 호르몬 정밀 검사를 위해서 부신 동맥 채취술도 받고 이런저런 검사를 받느라 병원에 2번이나 입원했지만 나만의 속도로 가기로 결심하고 나니 한결 마음 푸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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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정밀한 훈련보다는 자주 달리고 점점 거리를 늘려가며 가능할 땐 5~6km를 1km 단위로 인터벌 훈련을 해보려고 시도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아픈 상태에서 달리다 보니 달리기의 또 다른 장점을 알게 되었다.


질병적인 측면에서

달리기는 질병의 조기 발견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

아픈 증상들이 달릴 때는 두드러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무릎이 안 좋을 때 달리면 무릎의 통증이 더욱 크게 느껴지고 고관절이 안 좋을 때 달리면 고관절이 더욱 아파진다. 위가 안 좋을 땐 배가 심하게 아프고, 목 디스크가 있을 땐 목과 어깨가 많이 아플 수 있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부신 종양이 등 쪽에 있어서 인지 달릴 때 등이 많이 아팠다.


그렇게 원인들을 알게 되고, 빠른 치료를 할 수 있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발목, 무릎, 고관절 등 관절 부위가 아플 땐 염증을 없앤 후 그 부위의 근력을 강화하는 운동을 점진적으로 해주면 된다.


달리지 않았더라면 통증에 둔한 나는 아픈 것을 잘 인식하지 못했을 테고 병의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달리면서 아픈 부위를 정확히 알게 되었고, 계속 달리고 싶어서 병의 원인을 빨리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달리기로 인해 더욱 부각된 나의 병을 고쳐 나가면서 꾸준히 나만의 속도로 80살까지 달리고 싶었다.



불안과 조급함을 버리고


나는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며, 늘 아이들만의 속도로 꾸준히 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자신의 속도로 갈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부모는 많지 않다. 그것은 불안과 조급함 때문이다. 무한 경쟁이 일상화된 우리의 사회적 환경 속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자신의 성장에 집중하기 전에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불안하고 좌절하고 마음이 병들기도 한다.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은 달리기 열풍 속에 있다. 연령대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에 빠져있다. 마라톤에서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서 선수들처럼 특별한 훈련을 받기도 한다. 6년 전 내가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산책로를 달리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었지만 요즘은 산책로에도 공원에도 트랙에도 달리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 이 열풍이 얼마나 지속될 지 모르겠지만, 꾸준히 달리는 사람이 많다는 건 좋은 현상이다. 달리기는 우리의 몸과 정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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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부신 종양 수술 후 첫 하프 마라톤에 참가했다. 회복이 빠르게 되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위장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탓에 아주 힘들게 완주했다. 완주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하고 달렸는데, 올해는 전체적으로 달리는 사람들의 실력이 좋아져서 완주에 의미를 둔 나 자신이 조금은 뒤처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 그렇게 아이들만의 속도로 비교하지 말고 꾸준히 나아갈 것을 강조하는 나인데, 나도 모르게 남과 비교하여 의기소침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조금은 놀랐다. 나도 모르게 순간 순간 타인과 나를 비교하여 판단하고 있다니.


그런 나 자신을 발견한 순간 생각을 빨리 고쳐보았다. 비록 기록이 좋지 않았지만 수술 후 회복 기간인데도 완주를 한 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리고 수술 후인데도 불구하고 6년 전의 나보다 잘 달렸다. 이렇게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건강해지고 있는 내가 좋다. 그리고 느리지만 나는 80살까지 달릴 거니까 불안해 하지도, 조급해 하지도 말고 천천히 한 걸음 씩 나아가도록 하자. 아픈 후 다시 달리기 시작했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또 한 해 즐겁게 달려보자. 생각을 고쳐보니 느리지만 결국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을 믿으며 일도 달리기도 가족과의 관계도 잘 꾸려나가는 한 해가 될 것 같은 기대감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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