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자신을 먼저 찾아 나서기 “엉 엉 엉~”
어린 아이가 우는 소리가 아니다. 나의 울음 소리이다.
일년 전까지 난 퇴근 길에 차를 몰고오면서 혼자서 차 안에서 목놓아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지만, 참 잘 했던것 같다. 나 스스로에게 만이라도 솔직한 시간이었으니까.
아침에 무거운 몸과 마음으로 일어나서 아이들 등교 시키고, 아들이 또 학교에서 뛰쳐 나올까 전전긍긍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 당시에도 내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아침마다 아이들 등교 후에는, 걸으러 집을 나섰다. 원래 난 걷기를 참 좋아한다. 뭔가 풀리지 않는 일이 있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걸으면서 마음을 정리하는 습관이 있었다. 몸과 마음은 역시 연결이 되어 있음을 느끼며 살아왔다. 아들이 방황하면서 난 무조건 하루에 한 시간은 걸었다. 늦게 출퇴근 하는 나의 일의 특성상 오전 시간이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남편도 몇 년 전 하던 사업을 접고 재택 근무를 하는 터라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함께 오전 산책을 즐기는 부부가 되었다. 그렇다고 시간적인 여유가 아주 많아 산책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전 몇 년간 고혈압과 목디스크로 심각한 건강 이상을 경험하고 아팠던 터라 운동은 이미 나에게는 생존을 위한 것이 되어 있었다.
오전 운동을 마치면 집안 일을 부리나케 하고 출근을 서둘렀고, 그렇게 시작한 나의 하루 일과는 10시에 끝났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은 매일 지치고 서글프기 그지 없었다. 가르치는 친구들과 학부모들에게는 끊임없는 긍정마인드를 심어주고자 노력하는 선생님이었지만, 정작 난 ‘내가 죽으면 이 고통이 멈출까?' 라는 생각을 해 볼 정도로 여러 면에서 내 삶은 한 동안 절벽에 매달린 느낌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현명한 아내이자, 엄마이기를 강요당하며 어려움을 버텨내야 한다는 책임과 부담감이 나를 하루하루 짓눌렀다. 퇴근길에 난 아무도 없는 차 안에서 엉엉 울며 혼자서 내 고통을 덜어내고는 집에서 가족들에게까지 그 감정을 전달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어느 순간 억울함이 가슴 밑바닥 깊은 곳에서 차 올라왔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왜?’
‘그 흔한 다른 아줌마들과의 식사나 티타임 한 번 마음 놓고 해 본적 없이 열심히 달려왔는데!’
‘출근하지 않는 여자들도 철되면 옷가게에서 새 옷을 사지만, 난 한 번도 마음 놓고 비싼 옷도 사본 적 없는데!’
‘아이들한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도 성실하게는 살것이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왜? 왜? 왜?’
억울함이 터져 나오는 그 순간이 아마도 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한 시점이었던 것 같다. 그 이전까지 난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내가 좀 힘들어도 가족을 위해서 참고 이겨내면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기대했던 그 해결책들을 생각해보면, 남편 일이 잘 될것이라는 것, 그리고 아이들이 제 역할을 하면서 잘 성장할 것이라는 것. 열심히 살아서 내게 생길 좋은 일들, 내 삶을 나아지게 해 줄 해결책들이 모두 가족들 하나하나가 잘 되어가는 것이었다. 나의 삶인데 나의 미래는 내 계획에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내 삶은 여전히 기나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이었지만, 더 이상 내 삶이 나 아닌 다른 사람들(비록 가족일지라도)과 환경에 의해 우울하고 슬프도록 내버려 두고싶지 않았다. 내 삶을 가족과 환경에 맡기지 않겠다는 결심과 동시에 가족들의 행복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았다. 가족이기에 엄마이기에 당연히 난 우리 아이들과 남편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란 이름으로 서로에게 기대를 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상처를 주기도 했다. 역할이나 책임을 강요를 하기도 하고,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지, 하고 싶어도 타고난 성향이나 성격 탓에 힘들어서 못하는 것인지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전통적인 관습에 의한 역할을 강요하고 있진 않았는지 나를 되돌아 보기도 했다.
그렇다. 우린 가족이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개별적인 인격체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제 독립된 인격체로 서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남편도 나와 부부이기 이전에 별개의 독립체이다. 서로 조화를 이루어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 하지만, 그 누구의 역할이나 삶도 가족이라 해서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서로를 존중하면서 의논하고 함께 노력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들과 남편에게도 역할과 책임을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서로 의논하는 과정과 스스로 마음을 움직이는 과정을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기로 했다. 내가 정말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 나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아들이 방황하고 있어도, 힘든 상태에 있어도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사랑으로 기다려 주는 일 밖에 없었다. 아들의 마음이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믿고 기다려 주고 아들이 보내고 있는 혼란의 시간들도 미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직접 표현해 주기 시작했다. 나 자신의 우울감과 슬픔을 조금씩 걷어내면서 아들이 지금 방황하고 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긍정적인 얘기들을 해 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비난보다는 위로와 긍정적인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엄마, 아빠와 조금씩 더 소통하기 시작했다. 학교 공부를 정상적으로 하고 있진 않지만, 아직 미래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진 않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 조차도, 아이가 스스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시간들이라 믿는다. 인간의 본성은 행복하게 잘 살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모습과 위치를 보는 순간 아이는 움직이게 될 것이라 믿는다.
자, 아이가 자기 길을 찾아가는 것을 기다려 줄 용기가 생겼으니, 이제는 나 자신을 한 번 찾아볼까? 나는 나 스스로에게 끊이지 않는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난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난 어떨 때 스스로 행복함을 느끼는가? 나는 내일 죽어도 삶에 후회가 없는가? 가장 먼저 후회없는 삶을 살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다른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 때와 자신이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갈 때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매일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럼 하루하루 나는 내 생애 최고의 나로 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늘 얘기한다. 다른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자신이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를 보라고.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행복한 삶이 된다. 다른이보다 못 할 거라는 두려움도, 빨리가야 한다는 조급함도, 남이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한 염려도 훨씬 줄어든다. 나는 20년 이상 아이들을 가르쳐오면서 서툴지만 조금씩 발전해 온 선생님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즐거움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 그것을 내 삶에도 적용시켜 보려한다.
매일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하면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달리기와 사람들에게 더 따뜻한 말을 건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우선 달리기로 나의 건강이 조금씩 더 나아지고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조금씩 넘어서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이 찾아오면 조금씩 더 따뜻한 마음으로 말을 건내기 시작하니 그들의 웃는 모습과 서로 감사하는 마음이 나에게 더 큰 행복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외적인 환경이 별로 달라지지 않아도 내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이라 여겨져 난 매일매일 마음이 새롭고 설레었다. 또 오늘은 어떤 기쁜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하루하루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다.
그리고 짧지 않은 우리의 인생에서 내가 타인과 세상에 조금이나마 이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또 얼마나 의미가 있고 마음 따뜻한 삶일까? 사람은 ‘마음’이 있는 따뜻한 존재이므로 서로 따뜻한 눈빛과 손길을 나눌 때 한없이 행복하다. 나는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어떤 이들은 뭐 굳이 그렇게 억지로 행복해야될 이유가 있나? 그냥 내가 편하면 되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삶은 다른 이들과 마음을 나눌 때 행복하기에 그런 길을 찾기로 했다.
아들을 통해 본 다른 세상
아들의 방황이 절정으로 치달은 후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은 우리에게는 잠깐의 휴지기랄까? 학교를 가지 않으면 아들은 비교적 평온하게 잘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이 집에 들어오는 길이라며 전화가 왔다. 한 살 어린 동생들이 자기랑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다며, 며칠 째 집에 못 들어가서 밖에서 지내고 있는데, 하루만 우리집에서 재우자는 것이었다. 집에 들어가지 않는 아이들의 엄마들이 얼마나 애가 탈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였기에 우선은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연락처를 받고 재운 후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부모님들께 문자를 보냈다. 한 부모님은 연락이 끝내 없었다. 다른 한 아이의 엄마는 데리러 오겠다고 하셨다. 아이의 갑작스런 방황에 고민하다가 환경을 바꿔주기 위해서 이사를 가기로 했는데, 이사하기로 한 날이 바로 다음 날이라고 했다. 아이의 엄마는 감사를 표현했고, 그 후로 우린 몇 차례 연락을 더 나누기도 했다.
아들이 방황을 하다보니 방황을 하는 친구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이 모두 특별하거나 나쁜 아이들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현재의 상황에서 혼란이 오고 방황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다른이들의 관심과 따뜻한 말 한 마디에 변화할 수도 있는 그런 아이들이었다. 아들이 방황하면서 아들에게 절망의 말을 주는 어른들을 많이 보아왔다. ‘으이그 꼴통…’ ‘너만 잘하면 우리 학교엔 아무도 문제 없어.’ ‘니가 그렇지 뭐…’ 심지어 아들이 보는 앞에서 친구들 부모님과 통화를 하면서 ‘이 아이랑 놀지 못하게 하세요’
라고 말하는 교감 선생님까지 계셨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만큼 나쁜 아이들은 없다. 모두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혼란을 겪고 방황을 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 아들은 친구들, 형들, 동생들은 종종 집에 데리고 왔고, 아이들에게 최대한 따뜻함을 보여주려 애를 써왔다. 그리고 잔뜩이나 주눅이 들어있는 방황하는 아이들의 엄마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다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분들인데 그들에게서 아이들의 방황으로 한없이 떨어진 자존감을 발견했다. 나 역시 한 때 그랬다. 모든 것이 엄마인 내가 일을 해서 그렇다고 생각이 들었고, 모두가 내 잘못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이 자연스런 대화와 의사소통을 할 사람이 줄어들고 입을 다물게 된 이 상황과, 가족들 사이의 따뜻한 대화가 줄어들고 서로 마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아진 오늘 날의 상황들을 그냥 한 개인과 한 가정의 문제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 배경이 되는 서로에 대한 가치 평가와 판단이 난무하는 경쟁사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필요성을 느낀다.
이렇게 우리 아들을 통해서 마주하게 된 상황들과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따뜻한 눈빛과 마음을 나누어야 할지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오랜 기간을 교육 프랜차이즈와 가맹을 하지 않고 내 이름을 걸고 교습소를 운영해 왔다. 내가 다른이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기로 결심을 한 그 시기쯤, 아는 원장님의 소개로 한 영어교육 프랜차이즈의 오픈 설명회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운명처럼 그 교육과정 내에 ‘마인드터치’라는 아이들의 마음도 돌봐준다는 개념의 과정이 포함이 되어 있지 않은가? ‘마인드터치’과정으로 인해 나는 별 주저 없이 그 프랜차이즈에 가맹을 하기에 이르렀고, 지금까지 8개월 이상 그 심리상담 과정 수업을 들고 있고 미술심리 수업도 듣기 시작하였다. 우선 내가 가르치는 친구들에게도 늘 안정감 있게 긍정정인 마인드셋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힘을 줄 수 있어 좋았고, 앞으로 많은 아이들과 그 부모들과 따뜻한 마음을 나누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내 삶을 또한 가득 채워가고 있다.
이렇게 시작한 심리수업은 아직 8개월 째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배우느라 심리코칭법을 아직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발견하고 위로해주고, 인정해주고, 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하나씩 덜어내면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여유롭게 따뜻함을 유지하고 보여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직도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은 많이 남아있지만, 이젠 더 이상 나 자신의 무의식과 나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지만은 않다. 그만큼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인간이란 참 신기한 존재이다. 인간에 대해서 계속 알아가고 싶은 호기심이 생기는 지점이다.
심리 수업을 들으면서, 심리학과 심리 상담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많이 생겼다.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와 소통이 점점 사라지고, 인위적인 상담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많이 고민해 볼 문제이다. 많은 것이 상품화 되는 이 사회에 인간의 마음까지 상품화가 되어야 하는지도 의문이 들고 온통 의문 투성이다. 마음의 문제는 일상 속에서 서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너무나 바삐 돌아가는 세상을 탓하며, 지친 몸과 마음을 좀 더 손 쉬운 상담과 치료법으로 떠 넘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본에서 40년 정도를 심리학계에 몸담아 온 심리전문가 오자와 마키코씨는 상담이란 자기 결정을 가장한 지배의 한 형태라고 얘기한다. 상담자는 상담을 받으러 온 내담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자신의 의견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기에 부드러워 보이지만, 그것은 부드러운 권력관계의 구도 자체가 내담자에게서 ‘상담사가 원하는 자기결정’을 이끌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몇 번의 상담 경험이 있는 나와 우리 아이들은 참 많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심리상담과 자기 치유에 관한 생각이 정리가 되면 훨씬 더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매일 책을 읽고 상담 수업도 열심히 듣고 있다. 좀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많은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아들과의 등산
얼마 전에, 아들과 등산을 함께 갔다. 그리고 아들의 친구 둘도 우리와 함께 했다. 코로나로 활동을 못해 몸이 근질근질한 지 어른 놀이에 빠져 있던 아이들이 등산을 따라 나섰다. 중학교 시절을 많이 방황하던 아이들이지만, 그리고 그 방황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는 아들과 친구들에게 성장의 과정 중에 있고 자신들이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존재이며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주려 노력한다.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가 되리라 믿는다. 평가하고 판단하는 어른의 모습이 아니라, 너희가 방황하고 있는 이 순간 마저도 너희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변화하여 꽃 피울 수 있는 아이들이라 믿어주는 따뜻한 눈길과 말 한마디를 줄 수 있는 어른이고자 한다. 우리가 마음의 치유를 위해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부드러운 권위자인 상담사를 찾지 않아도, 삶에서 마주하는 이들에게 한 마디의 따뜻한 말과 서로 사는 얘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우리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